[신현호의 법과 삶] 의료소송, 공정이 우선이다
헌법 제27조는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의 생명은 공정성이다. 신임 조희대 대법원장이 취임사에서 “균형있는 판단을 기준으로 공정하고 신속하게 분쟁을 해결해야 한다. 재판이 공정하다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재판의 전 과정에 걸쳐 공평한 기회가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재판과정에서 누구에게나 동등한 발언의 기회를 주어야 함은 물론이다. 자칫 외면당하기 쉬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목소리가 법원에 잘 전달될 수 있게 하겠다”고 하여 신속, 공정한 재판을 주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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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 세분화로 감정 불신 높아
환자 측의 입증 책임 덜어줘야
부족한 판사 정원도 해결해야
」
먼저 공정성이다. 법관은 법률전문가일 뿐 다른 전문분야에는 문외한이다. 법관은 공정한 판단능력을 보충하기 위해 관련 전문가에게 감정촉탁을 한다. 그러나 촉탁받은 전문가는 전문성 부족, 소속 집단의 이익옹호 등으로 공정성과 객관성이 의심되는 감정을 하고, 심지어는 “법적으로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다”며 규범적 판단까지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럼에도 법관은 그 감정결과를 그대로 원용하여 판단하는 경향이 있어 당사자로서는 법관에 의한 재판인지, 감정인에 의한 재판인지 의문을 가지게 하곤 한다.
이 때문에 어느 법관은 ‘감정인이 법원의 보조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법원이 감정인의 보조자가 되었다는 두려움마저 든다’고 토로한다. 국회는 2007년 민사소송법을 개정하여 전문가를 법원 상임전문심리위원으로 고용하여 재판에 관여시키고, 대법원은 사법행정자문위원 산하에 재판제도분과위원회를 설치하여 공정하고, 신속한 감정제도확립을 위하여 감정인 풀의 확대, 감정료 인상, 감정기관과의 간담회개최 등 다양한 논의를 하고 있다.
소송에서 감정이 큰 영향을 미치는 분야는 의료소송이다. 대법원은 2017년부터 내과, 산부인과, 신경외과, 흉부외과 등 7명의 전문의를 상임전문심리위원으로 고용하여 의료소송절차에서 감정의견서를 제출하거나 직접 출석하여 의견을 진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의도와는 달리 실적이 미미하다. 고액 연봉을 받는 상임전문심리위원이 3년간 참여한 의료소송은 126건, 의견서를 제출한 건수는 55건으로 연평균 6건 참여, 2~3건 의견서 제출에 그치고 있다.
그 이유는 소송 당사자들이 꺼리기 때문이다. 100개가 넘게 세분되는 전문분야에 대해 상임전문심리위원이 의견을 내기에는 전문지식과 경험이 부족하다. 더 큰 이유는 환자 입장에서는 의사가 의사를 재판단한다는 공정성 불신을 갖는 데 있다. 또한 상임전문심리위원이 당사자주의를 위반한다는 점이다. 민사소송의 대원칙은 당사자가 주장 입증을 주도하고 법관은 그 범위 내에서만 재판하여야 하는 당사자주의이다.
법원은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데도 직권으로 상임전문심리위원에게 감정 의견을 묻거나 조정에 회부하기도 한다. 상임전문심리위원은 당사자가 주장하는 범위를 벗어나거나 객관적 근거 제시 없이 개인적인 경험을 의견 제시하여 불신을 높이는 경우가 있다. 의료소송에서 사회적 약자인 환자의 목소리가 법원에 잘 전달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의 자기책임 하에 감정기관의 다양화, 복수 감정, 적극적 증인신문 및 검증을 통한 입증기회를 충분히 보장해주어야 공정성에 대한 불만을 최소화할 수 있다.
다음으로 신속성이다. 감정절차가 신속히 진행되지 않아 재판이 지연되는 것은 분명하나, 신속한 재판을 지향하려다가 공정성을 놓쳐 불신만 키울 수 있다. 대법원장의 한마디에 일선 법원은 당사자에게 귀책사유가 없이 감정 지연사건에 대해 회신도 받아보지 못한 상태에서 재판이 장기화하였다는 이유로 재판을 서둘러 끝낼까 노심초사한다. 영국 첫 여성대법원장을 지낸 브렌다 헤일이 “아무리 잘한 판결이라도 국민을 납득시키지 못하면 옳은 판결이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아쉽게도 의료판결은 전체 민사소송 중 항소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이 이뤄지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판사수 부족에 있다. 우리나라는 대법관정원 14명, 판사정원 3200명으로 판사 1인당 연간 약 500건 전후 사건배당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보다 5배, 일본보다 3배가량 많다. 국민적 합의를 받아 판사 정원 증대가 병행되어야 한다.
의료소송에서 어떤 제도를 도입해도 감정인인 전문의가 의료사고를 일으킨 다른 전문의에 대해 공정하고 신속하게 감정하기는 쉽지 않다. 감정료를 많이 지불하면 신속하게 회신할지는 모르나 공정성까지 담보하지 못한다. 민법과 민사소송법을 개정하여 의료사고에 대하여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이나 제조물책임법과 같이 피해자인 환자 측의 입증책임을 경감하고, 대신 손해배상비용은 사회가 부담하는 방향으로의 입법이 필요하다.
신현호 법률사무소 해울 대표변호사·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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