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현의 과학 산책] 왜 내가 할 수 있는가
얼마 전 나는 ‘좋은 연구’란 주제의 강연을 하였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부담감이 점점 커졌다. 좋은 연구란 개념이 파고들면 들수록 까다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누구나 하고 싶지만, 누구도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는 것. 그렇지만 무시하고 살 수도 없는 개념. 수학의 체계 안에서는 견해나 가치판단이 배제된다.
하지만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수학자는 다르다. 좋든 싫든 연구의 사회적 가치를 판단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승진, 채용, 연구비 선정, 국가적 로드맵 작성 같은 것이 그 범주에 들어간다. 재미있는 것은, 평생 수학에만 빠져있었을 것 같았던 대가들이 좋은 연구라는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는 사실이다.
“아름다움과 진리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나는 대개 아름다움을 선택한다”. 상대성이론의 수학적 기틀을 마련한 허먼 바일(1885~1955)의 말이다. 현대수학은 쓸모보다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으로 발전해 왔다. 미국의 천재 수학자 테렌스 타오가 강조한 가치는 서사다. 줄 위의 구슬처럼, 나의 발견과 그 배경을 하나의 이야기로 꿰어낼 수 있는가. 이 밖에도 좋은 연구를 판단하는 기준은 여럿이 있다.
그렇다면 좋은 연구로 연결될 수 있는, 좋은 문제는 어떻게 찾아야 할까. 발표 후 받은 질문이다. 이때 연구 목표의 가치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 “왜 내가 이 문제를 풀 수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평생의 꿈이었다든지, 누구보다 열심히 하겠다는 것은 바른 답이 아니다.
준비 없는 열정은 연구자의 독이다. 이 문제에 앞서나갔던 천재들의 실패를 먼저 이해하고, 그들에게 없었던 새로운 생각의 도구가 과연 나에게 있는지 물어야 한다. 우리는 종종 몰아치는 바쁨 속에 빠져 살게 된다. 그럼에도, 잠깐씩 멈춰가며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는 것이 좋다. 잘 준비된 자의 모습이 보이는지.
김상현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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