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컷칼럼] 일본보다 심각한 한국 은둔 청년…부모도 함께 치유해야
한·일 은둔 청년 지원 활동가 오오쿠사 미노루 씨
우리나라의 고립·은둔 청년이 54만명에 이른다고 정부가 지난 13일 발표했다. 이에 따른 사회적 손실이 연간 약 7조원이며 은둔 청년 4명 중 3명이 자살을 생각해봤다는 내용이 충격을 던졌다. 사단법인 ‘씨즈(Seeds)’의 오오쿠사 미노루(47) 팀장은 2012년부터 일본과 한국의 은둔 청년을 돕는 활동을 해왔다. 지난 20일 오후 그를 만나 은둔 청년의 실태를 들었다. 인터뷰는 씨즈가 운영하는 서울 은평구 소재 은둔 청년 활동 공간 ‘두더집’에서 진행했다.
능력주의와 강박감이 은둔 배경
Q : 54만명이면 엄청난 숫자 아닌가.
A : “그렇다. 일본의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수와 별 차이가 없다. 올해 일본 정부 조사에서 파악한 15~39세 히키코모리가 67만명이다. 일본 인구(약 1억 2329만 명)가 한국의 두 배가 넘으니 한국이 훨씬 높은 비율이다.”
Q : 현장에서도 이런 수치가 체감되나.
A : “일본과 한국의 은둔에는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가 꽤 크다. 은둔의 배경이 되는 능력주의와 강박감 같은 건 비슷하다. 그런데 한국은 경쟁에 대한 압박이 더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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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은둔 청년 54만 명, 인구 2배인 일본의 67만 명보다 심각
일본은 남 의식한 ‘동조압력’ 세지만 경쟁 압박은 한국이 극심
은둔 당사자가 도움 요청하는 경우 한국이 훨씬 많아 긍정적
문제 사례 살펴보면 부모 책임이 절대적…부모가 교육 받아야
」
Q : 왜 그런가.
A : “가령 일본에선 자식이 라멘집을 연다든가 미용사가 되거나 농업을 시작하면 많은 부모는 기꺼이 응원한다. 반면 한국은 대학을 나와서 몸을 쓰는 일을 한다면 싫어하는 분위기다. 직업 선택권이 제한되고 화이트칼라 지향적이다. 이런 시선 때문에 압박을 느낀다. 학업에 대한 욕구도 한국이 더 강한 거 같다.”
Q : 일본 은둔 청년의 문제는 무엇인가.
A : “일본은 자기표현을 어려워하고 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에게 맞춰야 한다는 ‘동조압력(同調壓力)’이 심하다. 자신의 감정을 무시하는 원인이 된다.” “원래 사람 싫어하니까” 위험한 오해
Q : 또 어떤 차이가 있나.
A : “은둔 당사자를 만나면 일본 사람은 한국 사람보다 조용하다.”
Q : 은둔하는 사람은 조용한 거 아닌가.
A :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을 뿐 누군가 귀를 열면 열변을 쏟아내는 사람이 많다. 듣는 귀가 없었을 뿐이다. 한국 청년들은 더 말을 많이 하고 자기표현도 잘하는 편이다.”
Q : 이런 특성이 치유에 도움이 되나.
A : “그렇다. 한국은 당사자가 스스로 많이 나오려 하고 도움을 요청한다. 일본은 당사자가 도움을 청하는 경우가 10% 정도인데 한국인은 내 경험상 40% 정도는 된다.”
Q : 당사자의 도움 요청이 많다니 의외다.
A : “은둔은 취향이 아니다. 사회가 나한테 보내는 시선이 공격적이라 사람을 피하는 거다. 선택도 아니다. ‘원래 사람을 싫어하니 그냥 놔두자’라는 생각은 매우 잘못됐다.”
Q : 흔한 오해를 더 소개한다면.
A : “몸이 진짜로 안 움직여진다. 씻고 싶은데 몸이 너무 무거워 세수를 못 한다. 밖에 나가고 싶은데 현관까지 가면 눈물이 쏟아진다. 부모는 ‘너 또 꾀병이야’라고 한다. ‘게으르다, 의지가 부족하다’고 하는데 실은 의지의 힘을 빼앗긴 상태다. 느리다는 문제도 많다.”
Q : 느리다?
A : “행동이나 말이 느리고 머리가 빨리빨리 안 돌아가는 상황이 있다. 가령 설거지를 해도 느리고 심부름을 시키면 대응이 느린 사람이 있다. 그러면 부모는 빨리하라고 말하는데 그게 아이들에게 굉장한 상처를 준다. ‘빨리빨리’는 자녀의 속도를 무시하는 말이다. 이런 조건들이 갖춰진 상태에서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고 단 한 명의 연결된 사람이 없고 사회에 내 자리가 없으면 은둔을 하게 된다. 나도 느림 때문에 한때 아주 힘들었다.”
은둔 젊은이와 범죄 연결은 편견
Q : 은둔 경험이 있나.
A : “기질은 있는 것 같다. 다만 조건이 맞아야 은둔을 한다. 우선 은둔 공간이 필요하고 나를 맞아주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나에겐 평가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그냥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은둔을 안 했다. 친구 만들기가 어렵고 내성적이었다. 내 얘기를 하는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Q : 지금 얘기를 너무 잘하는 것 같은데.
A : “이건 내 생각을 얘기한다기보다 그동안 겪었던 경험들이 그냥 입으로 나오는 거다. 내 생각을 표현 못 하고 스스로 자신이 없었다. 느리기도 했다. 부모님이 ‘빨리빨리’ 라고 할 때마다 힘들었다. 취업 노력도 하지 않는 ‘니트(NEET)’ 생활을 6개월 정도 했다. 당시 무대에서 일하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그게 도움이 됐다. 은둔하는 사람의 특징 중 하나가 희망이 없는 ‘무망감’이다.” (NEET는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를 뜻하는 조어.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줄임말)
Q : 요즘 묻지 마 범죄의 요주의자로 은둔형 외톨이를 떠올리는데.
A : “은둔 청년에 다양한 유형이 있지만 대부분 밖으로 나가는 걸 무서워한다. 사람을 해치는 행동을 상상도 못 한다. 통계에 따르면 일반인의 중범죄 비율이 은둔형 외톨이의 3배 이상이다. 굉장히 잘못된 생각이다. 간혹 심한 폭력이 발생하는데 대부분 피해자는 부모 등 가족이다. 사실 은둔의 원인은 부모가 많이 제공한다.”
Q : 부모에게 문제 있는 비율이 어느 정도인가.
A : “내 경험으로는 부모에게 아무 문제가 없는 경우는 10%가 안 된다. 부모도 치유해야 한다. 부모가 제대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힌 경우가 많다. 일본에선 ‘옳음 중독(正義中毒·정의중독)’이라고 한다. 이 중독이 자녀에게도 가는 거다. 부모가 너무 눈부셔도 자신과 비교해 압박을 느낀다.” 부모와 비교로 압박감 느껴
Q : 부모의 영향이 그 정도로 큰가.
A : “청년에겐 가족이 첫 번째 사회이고 부모가 1차 방어망이자 안전망이 돼야 하는데 그 역할을 못 할 때가 많다, 청년의 감정을 무시하고 자신의 신념을 자녀에게 강요한다.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계속 준다.”
Q : 부모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A : “부모를 탓하기도 어려운 이유가 부모 역시 힘들기 때문이다. 은둔형 외톨이의 가족 간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보면 부모 역시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참으며 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부모의 치유가 필요하다. 자녀는 ‘이게 다 부모님 탓이다’라고 원망하는 동시에 ‘부모님이 나를 정성껏 키워주셨는데 이에 보답하는 나로 자라지 못해 부끄럽다’는 양가 감정이 있다.”
Q : 부모 치유는 어떻게 하나.
A : “상담을 받는 게 좋다. 부모가 있는 그대로를 누군가에게 말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부모 역시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부모에게 감정의 억압을 경험했기 때문에 아이한테도 비슷한 요구를 한다. 부모님이 ‘사실 나도 힘들었어’라고 말을 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취미 생활을 하는 것도 좋다. 자녀가 5년 정도 은둔한 어머니가 상담을 받고 평소 하고 싶었던 그림을 시작했다. 부모님 모임에도 계속 나오면서 굉장히 좋아졌다.”
Q : 은둔 청년 지원을 하게 된 계기는.
A : “대학을 마치고 연극 무대 일을 했다. 2004년에 워킹 홀리데이로 서울과 대구에서 일본어 강사를 했다. 한국의 사회적 기업 활동에 참여해 학교 밖 청소년 도왔다. 일본에 돌아갔다가 은둔 청년을 돕는 일본의 K2 인터내셔널에 참여해 2012년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Q : 일본 청년 지원 업무였나.
A : “처음엔 은둔 청년 당사자가 일본인 한 명이었다. 일본에서 더 많은 사람이 오고 한국의 은둔 청년도 동참하게 됐다.”
Q : 일본인에게 효과가 있었나.
A : “많이 좋아졌다. 한국어를 배운 게 큰 도움이 됐다. 일본에서 모국어로 소통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한 경험이 있는데 외국서 외국어로 대화하고 친구도 생기니 소중한 경험이 되어 변화를 이끌었다. 2년 정도 다녀간 친구는 얼마 전 결혼해서 아이도 낳았다.”
Q : 일본 청년이 한국에서 어떤 활동을 했나.
A : “K2가 서울 합정동에서 음식점을 운영했다. 청년들은 톤부리 같은 음식을 만드는 일을 했다. 생산 활동에 참여하는 경험이 정말 중요하다.”
Q : 지금도 운영하나.
A : “코로나19 사태로 2021년 말에 문을 닫았다. 당시 일본인 3, 4명에 한국인이 10명 정도 있었다. 일본 사람들은 비자가 안 나와 돌아가야 했다. 한국 청년 중 일부는 집으로 돌아갔고 일부는 셰어하우스에서 지낸다.”
Q : K2는 한국에만 왔나.
A : “호주와 뉴질랜드에도 갔다. 거기선 일본인만 생활했다. 그 나라들은 은둔 청년이 거의 없어서 개념을 이해하지도 못한다고 한다.”
Q : 한국서 계속 활동하나.
A : “실은 내년 여름에 다른 나라로 가야 할 것 같다. 가족의 건강 문제로 따뜻한 데서 살아야 하는 데 참고 지내 왔지만, 너무 추워서 올겨울이 마지막이 될 듯하다.” 좋은 부모가 되는 교육 받아야
Q :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원책을 발표했는데 앞으로 은둔 청년 상황이 나아질까.
A : “사회적으로 무관심하다는 자체가 청년들에게 부정적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 최근 사회에서 고립 청년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특히 지자체나 정부에서 지원에 나서 예전과 다른 메시지가 청년들에게 다가가는 것 같다. 긍정적인 변화가 기대된다.”
Q : 한국 사회에 조언을 해준다면.
A : “제일 중요한 게 예방이다. 코로나19로 치자면 마스크를 쓰고 손을 씻어야 하는데 그런 건 안 하면서 쓰러진 사람에게 약 주고 검사하는 식이다. 한국은 학교에서 경쟁이 너무 심하다. 상대평가보다 절대평가를 늘리면 좋겠다.”
Q : 좀 더 쉬운 주문은 없나.
A : “부모 교육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사실 누구도 좋은 부모가 되는 교육은 안 받는다. 부모를 만나면 ‘아이가 말을 안 들어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한다. 그런데 자녀도 똑같다. ‘부모님이 내 말을 안 들어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한다. 여기서 문제가 시작한다. 부모 교육과 치유가 은둔 청년을 예방한다.”
글=강주안 논설위원 그림=윤지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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