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 수천t 길이 수백m도 ‘거뜬’… K 프로젝트 물류 뜬다
자재·설비 운송부터 통관까지 책임
‘네옴시티 프로젝트’ 등 국내 기업 호재
항만을 건설하고, 발전소를 짓고, 유전·가스 시추단지를 세우는 데에는 대규모 자재와 설비들이 필요하다. 대형 플랜트에는 무겁고, 길고, 부피가 큰 자재들이 들어간다. 무겁게는 수천톤에 이르고 길게는 수백미터에 달하는 압도적인 규모의 자재가 투입되는 것이다. 대규모 공사설비와 자재는 누가, 어떻게 공사현장으로 옮기는 것일까.
대규모 산업개발에 투입되는 설비와 자재를 옮기는 시장을 ‘프로젝트 물류’라 부른다. CJ대한통운, LX판토스, 팬오션, HMM, 한진물류, 한익스프레스, 동방, 세방 등이 프로젝트 물류 시장에 뛰어든 국내 기업들이다. 최근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시티’ 프로젝트가 국내 프로젝트 물류기업에 호재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상황이다. 초대형 프로젝트 공사현장에는 프로젝트 물류기업도 함께하는 것이다.
프로젝트 물류가 주목받게 된 것은 해외 플랜트 사업 수주를 통해서였다. 단순 시공에서 설계와 구매, 시공까지 전반에 걸쳐 사업 영역이 확장되면서 ‘운송’이 중요해졌다. 적기에 공사를 끝마치려면 설비와 기자재들의 각 공정에 맞게 운송돼야만 한다.
해외 건설과 플랜트 수주는 프로젝트 물류 시장 성장의 핵심 요인이다. 국내 기업들이 프로젝트 물류 시장에서 급성장했던 시기는 2015년이다. 당시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등 국내 건설사의 해외 플랜트 수주가 늘면서 프로젝트 물류시장도 커졌다. 해외 플랜트 수주액 654억 달러(약 83조6887억원)에서 약 5%가 운송비로 들어갔다. 5%에 불과해도 4조1844억원이나 됐다. 2014년 CJ대한통운의 매출 4조5600억원에 맞먹는다.
프로젝트 물류 시장은 당분간 계속 성장할 전망이다. 올해 글로벌 프로젝트 물류시장 규모는 4118억4000만 달러(약 533조7446억원)로 추산되고, 2028년까지 5499억7000만 달러(약 712조7611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서 프로젝트 물류라는 개념은 1990년대 만들어졌다. 국내 건설사들이 해외에서 공사를 시작하면서다. 2010년 전후 중동 발전소 등 대형 해외 플랜트들의 연이은 수주로 시장이 확대됐다.
프로젝트 물류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운송될까. 일단 기자재를 발주하고 제작업체에 물류 관련 설명서를 물류업체에 전달하는 ‘서류 작업’에서 시작한다. 프로젝트 물류를 담당하는 물류업체는 설명서를 토대로 운송에 필요한 서류와 도면을 준비한다. 여기서 물류를 운송할 때 어떤 길을 통할 것인지 선정하는 일도 중요하다. 화물이 만들어지고 검사가 끝나면 각국에 전략물자 신고와 수출 관련 업무 절차를 진행하고 운송수단에 화물을 올린다.
이렇게 준비가 되면 이동이 시작된다. 하늘, 땅, 바다 모두 길이 될 수 있다. 업계에서는 ‘포트 투 포트(Port to Port·P2P)’,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D2D)’ 서비스로 나뉜다. P2P는 항만까지 운송하는 서비스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통관이다. 물류를 항만까지만 운송하는 것 뿐 아니라 운송될 기자재가 면세인지, 관세가 붙는지 등에 대해 통관 시 발주처부터 현지 은행과 관공서 관계자들의 협업이 필요하다. D2D는 건설현장까지 기자재를 조달해주는 것을 뜻한다. 바닷길뿐 아니라 내륙 수송까지 물류회사가 책임진다.
프로젝트 물류에는 다양한 장비들이 동원된다. 바닷길에는 ‘자항선’이 이용된다. 떠다니는 인공섬이라고도 불리는 이 배는 거대한 화물을 해상으로 실어나를 때 사용된다. 동력이 없는 바지선과 달리 스스로 운항이 가능하고 화물적재 능력도 훨씬 뛰어나다. 2년 전 롯데글로벌로지스는 울산항에서 인도네시아 발릭파판 지역까지 총 3400t에 이르는 초중량물을 이송했는데 이때 쓰인 것이 자항선이다.
배 한 척을 육지에 들어 나를 수 있는 ‘멀티 모듈 트레일러(SPMT)’도 쓰인다. 지네를 연상시키는 바퀴들로 이뤄진 이것은 최대 약 4500t의 무게를 운반할 수 있다. 바퀴 한 축 단위로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어 필요한 만큼 앞뒤 양옆으로 연결 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프로젝트 물류기업을 통해 역사 유적을 통째로 들어 옮기기도 한다. 2019년 12월에는 CJ대한통운의 중동지역 패밀리사인 CJ ICM이 튀르키예 남동부 바트만주에서 고대 도시 하산케이프의 고대 유적 23개를 안전한 장소로 이전하는 ‘하산케이프 프로젝트(Hasankeyf Project)’에 성공했다. 총 무게는 1만2063t에 달했다.
CJ ICM이 고대 역사 유적을 옮기게 된 까닭은 수몰 위기 때문이었다. 하산케이프는 1만2000년의 역사를 가진 마을로 수메르 문명과 로마·오스만제국의 유적이 가득하다. 그러나 튀르키예 정부가 추진해 온 일리수(Ilisu) 댐 건설로 인해 수몰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CJ ICM은 2017년 5월부터 수몰 예정지 문화 유적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프로젝트를 맡았다.
이 운송 프로젝트에서는 무게 1150t의 500년 이상 된 고대 무덤 ‘제낼 베이 툼(Zeynel Bey Tomb)’, 800년 전 튀르키예에서 사용됐던 무게 1500t의 튀르키예 목욕탕 ‘아르투클루 베스(Artuklu Bath)’ 등이 포함됐다. 해당 지역에 산재한 인류 역사의 초기부터 이슬람 왕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기, 다양한 모양, 다양한 용도의 건축물들이다.
고대 유적을 안전하게 옮기기 위해 CJ ICM의 전문 인력과 엔지니어들의 기술과 경험이 총동원됐다. 최대한 유적을 분해하지 않고 원형을 유지한 상태에서, 안전하게 운송을 진행하기 위해 중량물 운송에 쓰이는 특수 장비인 모듈 트랜스포터(SPMT) 88대 이상이 사용됐다. 분해가 불가피한 일부 모스크를 제외한 유적 대부분을 원형 그대로 들어 특수 제작 도로를 통해 옮겼다. 이때 ‘초저속 운송’ 기법을 사용했는데 목욕탕 유적의 경우 3㎞를 움직이는 데 9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프로젝트 물류기업 한 관계자는 “가끔 해외에서 도로에 풍력발전기 날개를 운송하는 차량을 보면 ‘탄도미사일’을 싣고 가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며 “흔히 알려지지 않은 분야지만 흥미로운 영역”이라고 말했다.
한명오 기자 myung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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