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도, 박정희도 다 만났다…하늘로 떠난 미국 공동대통령 [올해 진 별 10인 ②]
2023년 하반기엔 유독 외교 관련 인물이 유명을 달리했다. 중국의 마지막 '미스터 쓴소리'부터 헨리 키신저까지, 하반기에 타계한 인물 다섯의 이야기를 2회로 전한다.
불운의 2인자, 리커창 전 중국 총리 "하늘이 보고 있다"
지난 10월 27일은 시진핑(習近平) 주석 1인 체제가 명실상부 굳건해진 날이다. 2인자이면서 시 주석에 고분고분하지 않았던 존재, 리커창(李克强) 전 총리가 사망하면서다. 1955년생인 리 전 총리는 이날 심장마비로 돌연사했다. 68세. 리 전 총리는 지난 3월 퇴임하면서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며 "인민을 품어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남겼다. 시 주석을 향한 언중유골이라는 해석이 나왔고, 리 전 총리도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한때 시 주석과 라이벌이었다. 중국 정치 엘리트의 3대 파벌 중 하나인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소속으로 후진타오 전 주석을 잇는 후계자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시 주석이 1인 독주 체제를 굳히면서 밀려났다. 권력의 핵심에선 멀어졌지만 기개만큼은 꺾이지 않았다. 시 주석이 샤오캉(小康), 즉 모든 국민이 의식주 걱정없이 평안한 사회를 강조하던 2020년, 기자회견에서 "(중국 국민 중) 6억명의 현재 월수입은 겨우 1000위안(당시 환율로 약 18만원)에 불과하다"고 말한 게 대표적이다. 그러나 그는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지 못했다. 시 주석은 전례없는 3연임 시대를 시작했고, 그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사망 당시 기사는 괄호 안 링크에서 볼 수 있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2816).
"유명해지는 거, 정답 아니더라" 매튜 페리
그와 챈들러는 애증의 관계다. 챈들러를 연기하며 갈망하던 인기와 부를 거머쥔 그는, 챈들러라는 역이 주는 부담감에 약물에 손을 댔고 중독과 금단, 재활의 악순환에 시달렸다. 자서전에서 "중독 증상 극복을 위해 쓴 돈이 900만 달러(약 122억원)"이라고 털어놨을 정도다. 그는 "사람들이 나만 보면 '챈들러'라고 부른다"며 "난 챈들러가 아니라고 소리 지르고 싶다"라고도 썼다.
어린 시절 그는 유명해지고 싶어 배우를 꿈꿨다. 그러나 자서전에 그는 "유명해지는 게 인생의 정답은 아니었다"고 적었다. 중독의 사이클을 겨우 끊고 자서전을 낸 뒤, 그는 "이젠 조심스럽지만, 아빠가 되어보고 싶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말했지만, 그 꿈을 이루기 전에 유명을 달리했다.
사망 당시 기사는 괄호 안 링크에서 볼 수 있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3028).
'공동 대통령' 퍼스트레이디, 로잘린 카터
지난 11월 19일, 미국 워싱턴DC의 백악관과 국무부 등 정부 부처엔 일제히 조기가 게양됐다. 1977~1981년 사이 백악관 안주인이었던 로잘린 카터 전 퍼스트레이디가 숙환으로 사망하면서다. 카터 여사는 남편의 집권 당시 '공동 대통령(co-President)'으로 불렸다. 백악관에서 열리는 각료 회의에도 거의 참석했다고 한다. 카터 당시 대통령은 "내가 원하는 바"라며 반대 목소리를 일축했다. 카터 대통령은 외교 행사에도 부인을 항상 대동했는데, 방한해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영애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에도 함께했다. 로잘린 여사는 청와대에 딸 에이미도 동행시켰다. 단임으로 퇴임한 뒤, 1994년 북핵 위기 고조 해결을 위해 김일성 주석을 만나러 평양을 방문할 때도, 카터 전 대통령과 로잘린 여사는 함께였다.
로잘린 여사는 "대통령은 자칫하면 고립되기 쉬운 자리"라며 "내 역할은 대통령에게 때론 비판을 하고, 더 깊고 넓게 생각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주장하곤 했다. 내조뿐 아니라 독자적 정책 활동 분야도 개척했는데, 고령자 정신건강 문제 해결이 대표적이었다.
사망 당시 기사는 괄호 안 링크에서 볼 수 있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2816).
"모른다는 걸 알아야 한다" 가치투자의 달인, 찰스 멍거
워렌 버핏을 잘 안다면 이 사람을 모를 수 없다. 찰스 멍거. 애칭 '찰리'로 더 잘 알려진 멍거는 평생 버핏의 절친한 친구이자 가치 투자 전도사였다. 그런 그가 지난 11월 28일 사망했다. 99세. 주식투자로 억만장자 반열에 오르며 일명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버핏은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의 대표인데, 멍거는 이 회사의 2인자다.
멍거가 처음부터 투자 외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일하다, 어린 시절 고향 동생인 버핏을 만난다. 버핏은 멍거에 이렇게 도발했다. "변호사는 취미로 해도 되잖아요? 부자가 되려면 나처럼 투자를 하세요." 멍거는 이혼 후 위자료 지급으로 빈털터리가 되고, 아들을 백혈병으로 잃는 등 인생의 아픔을 겪었고, 곧 버핏과 한솥밥을 먹게 된다.
멍거는 투자 분야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했다. 특히 대차대조표를 분석해 저평가된 기업을 골라내고, 이 회사의 주식을 장기 보유하는 방식에 강했다. 그가 남긴 명언 중엔 "반드시 똑똑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 지를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다"거나, "투자에 성공하는 사람들은 머리가 좋다기보단 인내심을 가진 이들이다" 등이 있다. 멍거는 버핏의 투자 전략도 바꾼 것으로 평가된다. 버핏은 젊은 시절 주가가 기대 수준으로 올라오면 매각하는 전략을 취했지만, 멍거와 손을 잡은 뒤엔 장기 보유로 바꿨다.
실익 외교의 제왕, 헨리 키신저
"외교란 가능성의 예술이다." 전 세계 외교관들이 가슴속에 새기는 명언 중 하나다. 이 말을 남긴 실익 외교의 대가, 헨리 키신저가 지난 11월 29일 별세했다. 100세. 존 F 케네디부터 조 바이든까지 전·현직 미국 대통령 12명뿐 아니라 전 세계 주요국 지도자들이 그에게 외교 조언을 청했다. 1969년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기용된 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국무장관으로도 일하며 미국 외교의 기틀을 짰다.
그의 외교는 철저히 미국의 국익을 중심에 놓는다. 미국을 핵심으로 한 국제 질서를 디자인하고, 그 안의 세력 균형을 우선시했다. 이 틀 안에서 그는 중국과의 대화 역시 중시했다. 닉슨의 '핑퐁 외교'의 막을 열며 72년 2월 미·중 수교를 이끌어낸 인물 역시, 키신저였다. 그의 타계 소식에 시 주석이 "그는 중국의 라오펑유(老朋友)"라는 조전을 보내기도 했다.
그늘도 있다. 69~73년 캄보디아 폭격을 주도한 의혹으로 전범 취급을 받은 적이 있으며, 70~80년대엔 남미 반체제 인사를 탄압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정작 그는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았으며, 미국 국익을 중심으로 합리화하는 반응을 내놓곤 했다. 그가 남긴 또 다른 명언 중엔 "외교정책에서 완벽한 수준의 도덕성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가 있다.
사망 당시 기사는 괄호 안 링크에서 볼 수 있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1494).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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