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거롭게 굳이 손글씨 수첩 쓰는 이유, 딱 알려드립니다

강상도 2023. 12. 27.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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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간 매일 끼고 산 손때 묻은 다이어리... 펼치면 그날 그때의 상황이 바로 눈 앞에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강상도 기자]

 2023년 일상을 기록했던 수첩
ⓒ 강상도
 
얼마 남지 않은 2023년 계묘년의 한해를 들여다보았다. 많은 일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늘 그래왔듯이 좋았던 일보다 평범한 일들이 더 많았다.

주중에는 학교에 출퇴근하고 일하고, 주말에는 등산을 하거나 시민기자로 인터뷰를 떠나기도 했다. 학교의 사서로, 책모임지기로, 의무적인 독서를 하거나 글쓰기 콘텐츠 브런치에 글을 올렸다. 종종 금요일에는 공연, 뮤지컬, 영화를 즐겼다. 동네 도서관에서 미뤄두었던 시사 간행물을 보았고 신간코너에서 요즘 잘 나가는 책을 빌렸다. 여름과 가을 사이에 일주일 2~3번 퇴근 후 동네 한 바퀴를 걸었다. 쉴 때가 더 많았지만. 생활의 루틴화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올해는 더 충실히 기록하는 습관을 가져 보고자 수첩을 구입했었다. 생각날 때마다 수첩에 옮겨 적었다. 펼쳐서 빼곡히 정리된 글들을 보면, 그 당시 실천하고자 했던 의지들이 나의 필체로 묻어있어 뿌듯하다. 하루하루의 일상을 다 쓰지 못했지만 기억날 때마다 나의 글과 언어를 집어넣었다. 이제 수첩을 펼쳐 보면서 2024년 갑진년을 열심히 살아보고자 반성하고 다짐해본다.

의지와 태도, 치열함 그대로 묻어있는 기록들
 
 작가의 말 한마디 놓칠 수 없어 글로 기록해 놓았다.
ⓒ 강상도
 
수첩에는 촘촘히 지나가는 나의 일상이 글씨로 포개어졌다. 좋았던 시간도 반복의 시간도, 두려웠던 시간도 글자들과 함께 지나갔다. 첫 장에는 매월 학교도서관의 계획들이 곳곳에 들어있다. 월마다 도서관행사와 업무처리 등 해야 할 일들로 빼곡하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일해 왔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기록하니 좋은 점. 당시 교직원들과 학생 책모임에서 읽어왔던 14권의 책 목록이 선명하게 다시 회상되었고, 북토크를 위해 동화작가섭외를 위한 연락처 등을 보니 그때의 상황이 눈 앞에 그려졌다. 또 도서관 업무시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별표를 쳤었다. 이렇게 기록들로 얼마나 치열하게 일상을 보냈는지 평가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올해의 내 자랑거리라면 영남 알프스로 불리는 8개 산 봉우리를 완봉하기 위한 목표를 세웠다는 것. 수첩에 날짜와 산 이름, 가장 쉽게 오르는 방법 등을 적어 실천에 옮겼다. 늦가을부터 시작하여 6개의 산을 올라, '8개'라는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1,000m 고지를 올랐다는 것에 자신감이 생겼다. 내년에 다시 도전해 보고자 하는 굳은 마음을 수첩에 담았다.

수첩에는 갈수록 꽉 찬 일상의 기록이 쌓여갔다. 자주 가는 책방에서 만난 사람들, 인터뷰한 내용들을 기록했고 정리했었다. 경남 창원 가로수에 있는 책방 '민들레 책밭'에서 시작해 마지막 거제 독립서점 '책방 익힘'까지, 6명의 책방지기의 말 한마디라도 놓칠 수 없어 꼼꼼하게 적었던 기록들이 남아있다. 선명하게 그때의 기억으로 인도하는 기분이다.

잡다한 기록도 많다. 그때그때 책에서 봤던 좋은 구절을 필사해 놓거나 추천책을 써 놓았다. 추천책은 때가 되면 온라인 서점에서 구입했다. 은소홀, 정여울, 김탁환 작가와의 만남이 있는 날에도 수첩을 들고 갔었다. 열변을 토해내는 작가의 말과 언어를 받아 적었고 좋았던 글은 다시 필사로 기록했다. 이 작업을 마치고 나면 작가의 생생한 말들이 나에게 들어온 기분이 든다.

그렇게 6개월, 이제는 출근할 때 수첩이 손에 없으면 허전할 정도다. 수첩은 나의 하루하루 일상을 함께 했다. 누구는 휴대폰 기록 어플인 애버노트가 훨씬 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지만 그래도 나는 공책이 좋다. 직접 손으로 필기할 수 있는 수첩을 고집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사서 선생님을 인터뷰했던 수첩
ⓒ 강상도
 
손으로 쓴 글들은 언제든 펼치면 편하게 읽을 수 있고, 그 덕에 기억도 더 선명하게 나타난다. 어떨 땐 줄을 긋고 형광펜으로 반복해 칠하며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 가장 좋은 점은, 이렇게 쌓인 기록들로 한 권의 수첩이 완성될 때 내가 마치 책 한 권을 써낸 것처럼 자부심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수첩은 나의 일상을 오롯이 느낄 수 있어, 한 권이 완성되면 가슴이 따뜻해지는 행복으로 이어진다.

누구는 기록하는 게 귀찮다고 하지만 내게는 아니다. 내게 이 수첩은 하나하나 글쓰기의 소재가 되고, 나의 하루를 반성하며 내면을 담아내고 일상을 돌아보는 일기였다. 나의 기록은 일상을 돌아보고 내일을 다짐하는 시간이다. 선물 같은 기록들, 이걸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새롭게 써내려갈 생각을 하니 어쩐지 기대에 부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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