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한일 역사문제 10대 사건... '한국의 DNA를 조작하는 사람들'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2023. 12. 27.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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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히,스토리] '한미일 협력'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

[김종성 기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월 16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센터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 회동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의 한일 역사문제에 대한 태도에 상당수의 한국인들은 분노하고 있다. 정부 역시 이런 반응에 적잖이 부담스러워하는 듯하다.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이후로는 역사문제에 대한 속도 조절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한편,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이러한 윤석열 정부의 한일 역사문제에 관한 행보에 대해 꽤 낙관적인 반응이 나오는 분위기다. 한일 역사문제에 깊이 개입해 온 람 이매뉴얼 주일미국대사가 지난 5일 도쿄 기자간담회 때 "한미일 협력이 세 나라의 DNA에 내장되고 자리를 잡으면, 3개 개별 국가에서 어떤 정치적 변화가 있어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사실이 이달 초에 보도됐다. 그는 "앞으로 한미일 3국 각각 선거가 있으나 결과에 관계없이 한미일 협력이 지속 가능하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러시아 황제 칭호인 차르를 따서 '아시아 차르'로 불리며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을 주도해 온 커트 캠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도 한일관계에 관한 발언을 내놓았다. 보도에 따르면, 국무부 부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그는 지난 7일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아시아의 안보 구조를 변화시키는 데 있어서 일본과 한국이 근본적인 적대감을 뒤로 하고 에너지, 기술, 안보, 인적 관계, 교육 등 미래에 집중할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이 '과거'가 아닌 '미래'에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래에 집중하도록 하려면 근본적인 적대감을 뒤로 미루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역사문제 해소와 관련해 한일 양국을 칭찬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일본과 한국이 보인 용기를 우리가 공개적으로 칭찬하는 것이 미국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캠벨 조정관은 한국과 일본이 상당히 많이 가까워졌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지금 상황에서 중국이 한국과 일본에 접근해도 미국만큼의 성과를 거둘 수 없는 자신감까지 표출했다. "저는 중국이 일본 및 한국과, 미국과 같은 수준의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데 실패할 것이라고 확신한다"라고 발언했다. 미국 당국자들이 현재 한일 관계에 상당한 만족감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발언이다.

2023년 한일 역사문제 10대 사건
 
 일제청산연구소 월례포럼에서 발표하는 양진우 소장.
ⓒ 일제청산연구소
  
26일 오후 경기도 하남시 초이화평교회에서 열린 일제청산연구소 제7차 월례포럼에서 양진우 소장은 이매뉴얼 대사와 캠벨 조정관의 발언을 소개하면서 독도 부근 한미일 연합군사훈련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응에 대해 염려를 표시했다. 자위대가 독도 주변에서 훈련하는데도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매뉴얼 대사의 말처럼 한국의 DNA에 한일 협력의 코드를 주입시키려는 기획과 무관치 않은 현상이라고 그는 평했다.

양진우 소장의 발표 제목은 '2023년 한일 역사문제 10대 사건의 정리'다. 연구원들이 매주 1차례 화상회의에서 역사문제와 정세분석을 해온 결과를 토대로,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같은 한일 역사문제와 이에 밀접히 연관된 현상들(홍범도 흉상, 연합군사훈련 등)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10대 뉴스를 소개하는 발표였다.

8번째 사건으로 소개된 위의 '독도 부근 연합훈련'과 더불어, (1)강제징용 제3자 변제안 발표(3.6), (2)한국 침략 날짜를 지우는 한일 이벤트 기획(2.22, 8.29, 11.17), (3)육사의 홍범도 흉상 철거 추진(8월), (4)백선엽의 국립묘지 친일행위자 표기 삭제(7.24)가 금년도 주요 사건들로 제시됐다.

또 (5)한일 정상의 히로시마 원폭 추모비 공동 참배(5.21), (6)대법원의 제2차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12.21), (7)이용수 등 위안부 피해자들의 승소(11.23), (9)서울 남산 일왕 생일연 기미가요 연주(2.16), (10)욱일기를 게양한 자위대 호위함의 부산 입항(5.29)도 주요 사건으로 소개됐다.

한국의 DNA 재구성하려는 일본, 배후의 미국
 
 양진우 소장이 파워포인트로 설명한 10대 사건.
ⓒ 양진우
 
열 개의 사건 중에서, 이매뉴얼이 언급한 DNA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은 (3), (5), (8), (9), (10)이다. (2)와 관련해 양 소장은 독도가 시마네현에 편입된 2월 22일에 독도 인근에서 한미일 미사일 방어훈련이 실시되고, 한국 강점일인 8월 29일에 제주 남방에서 같은 훈련이 실시되고, 을사늑약일인 11월 17일에 윤석열·기시다 두 정상이 영국 스탠퍼드대학에서 공동좌담회를 연 사실을 언급했다. 일제가 한국을 침략한 날짜에 맞춰 한일 이벤트를 여는 것도 DNA 재구성과 무관치 않다고 볼 수 있다.

양 소장은 원폭 피해자 추모비의 공동 참배는 "일본을 전쟁범죄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한 것은 잘못이고 원폭 피해자들이 억울한 희생을 당한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원폭 투하를 이유로 일본이 피해자 이미지를 갖도록 하는 데에 한국이 가담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인식을 표시했다. 이런 이벤트는 한국과 일본이 똑같은 피해자라는 이미지를 한국인들에게 심어줄 만한 기획이다.

2월 16일 일왕 생일 파티가 열린 서울 남산에서 해방 이후 최초로 기미가요가 연주되고 이 자리에 이도훈 당시 외교부 제2차관이 참석한 사실, 욱일기를 게양한 자위대 호위함이 부산에 입항한 사실 역시 한국과 일본을 심리적으로 묶어주는 기능을 하는 사건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내년에는 세계적으로 중요 선거들이 많이 치러진다. 1월에 대만 총통선거가 있고, 3월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대선이 열린다. 한국에서는 4월에 총선이 있다. 정권의 2인자 한동훈을 여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투입해야 할 정도로 윤석열 정권이 위기감을 느끼는 속에서 치러지는 선거다. 미국 대선은 현지 시각 11월 5일로 예정돼 있다.

일본에서는 9월에 자민당 총재 선거가 있다. 기시다 후미오의 지지율은 지난 14일 <지지통신> 조사에서 17.1%로 나타났다. 기시다는 내년 9월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하루하루를 걱정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선거가 많은 데다가 미국의 세계전략을 지탱하는 바이든-기시다-윤석열 연대가 선거에 명운을 걸어야 하는 해가 2024년이다. 그래서 미국 정부 당국자라면 내년을 당연히 걱정을 해야 하는데도, 람 이매뉴얼은 한일관계만큼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한미일 협력이 세 나라의 DNA에 내장되면 3국에서 어떤 정치적 변화가 있어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2024년을 한 달 앞둔 시점에 자신감을 피력했다.

이매뉴얼 대사는 3국의 DNA 재구성을 운운했지만, 실제로 벌어지는 것은 한국의 DNA 재구성뿐이다. 한국의 DNA에 대일 태도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입력되고 있다.

이매뉴얼은 도쿄에 있지만 한일 역사문제에 깊이 개입하기 때문에 한국인들의 감정에 특히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한일 협력 코드가 한국 DNA에 입력되고 있다고 말하지 않고, 미국을 덧붙여 한미일 협력 코드가 한미일 DNA에 저장되고 있다고 말한 것은 한일관계에 대한 한국인들의 경계심을 의식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이매뉴얼의 발언은 '한국의 DNA가 재구성되고 있으므로 내년에 3국에서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3국 연대에 기초한 미국의 세계전략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의미로 정리할 수 있다. 주일미국대사가 그런 안도감을 표한 것은, 미국 당국자들이 볼 때 금년 들어 한일 간의 역사문제가 상당부분 봉합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발표 중에 양진우 소장은 "예전에는 한미동맹이란 표현이 익숙했었는데, 최근 들어 갑자기 '한미일'이 자연스러워졌다"라며 일본이 급속히 다가오는 현상을 거론했다. 일본이 한국에 다가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과거사 문제를 마무리하지 않은 채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이런 우려를 갖게 됐으리라 볼 수 있다.

100년 전 역사가 그대로 되풀이될 수도 없고 그렇게 돼서도 안 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일본이 다가오는 방식이 100년 전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점이다. 성패 여하를 떠나, 그때와 비슷한 방법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경각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1894년에 일본은 자국 군대를 조선에 투입하면서 '일본인과 일본공사관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동학군을 진압하기 위한 것이다'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이를 통해 자국의 군사적 접근이 자연스럽고 정당하게 보이도록 만들고자 했다.

1904년에 러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이때도 러시아의 위협을 강조하면서 자연스럽게 '유사시 일본군의 한국군 진출'을 성사시켰다. 그해 2월 23일 한일의정서 제4조를 통해 유사시 일본군이 한국에 군사 거점을 가질 수 있게 만들었다.

그 뒤 일본은 한일협력과 한국 보호를 명분으로 을사늑약, 고종 퇴위, 한국 강점까지 이어갔다. 100년 전의 일본이 한일 협력 코드를 한국 DNA에 주입시키면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려고 애썼던 것이다.

이매뉴얼 대사가 언급한 것처럼, 지금 일본은 미국과의 연대 속에서 한일 협력 코드를 한국 DNA에 주입하고 있다. 100년 전보다 수월한 방법으로 한국의 유전자를 조작하고 있는 것이다. 100년 전 역사가 똑같이 되풀이될 가능성은 낮다 해도, 일본과 그 배후의 미국을 끊임없이 주시해야 할 이유다.

 
 제7차 월례포럼 포스터.
ⓒ 일제청산연구소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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