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서울의 봄'... 사라지지 않는 똥별들 [목사가 쓰는 택배 이야기]

구교형 2023. 12. 27.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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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가 쓰는 택배 이야기] 여전히 건강하지 않은 한국 군대

[구교형 기자]

 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 한 달여 만에 천만 관객을 모았다고 화제다. 나도 봤다. 처음 <서울의 봄>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볼 마음이 없었다. 나는 원래 역사, 특히 한국 현대사를 좋아하기에 12.12사태를 다룬 비슷한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여러 번 보고 줄줄 꿰고 있어서 시큰둥했다.

그 무렵 나는 중학교 1학년으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TV에 나와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수사 중간발표라며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발표문을 읽어나가던 것을 생생히 기억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정보부장의 총을 맞고 아직 죽기 전, 곁에 있던 사람들이 대통령에게 상태를 물으니 "나는 괜찮아"라고 했다는 조사 내용을 전하는 그의 목소리에 경상도 사투리가 짙게 묻어나 더욱 깊은 인상이 남았다.

그런데 아들이 함께 보자고 해서 그냥 따라갔다. 막상 영화를 보니 뻔히 다 아는 내용인데도, 보는 내내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많은 이가 영화를 본 후 소감에서 밝혔듯이, 전두광과 노태건의 불의함이나 이태신 등의 정의감과 충성심도 기억에 남지만, 두고두고 가장 마음에 남는 건 있는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지 않고 무임승차 했던 사람들이다.  

이예람, 박정훈... 그리고 '똥별들' 

일국의 대통령이 된 마당에 분명히 권력 찬탈인 줄 알면서도 크게 꾸짖어 내쫓지 못했던 대통령 최규하는, 5.18 이후 대통령직에서 사실상 쫓겨날 때까지 거듭된 비극의 하수인 노릇을 했다. 그러면서도 죽을 때까지 당시의 상황을 증언하지 않은 무거운 입은 그의 죗값을 더하게 만든다.

그뿐 아니다. 입만 열면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목숨을 다 바칠 것'을 서약하지만 일단 '비상사태'가 일어나면 있어야 할 자리에서 할 일을 하지 않으면서 어느 줄이 유리할지 눈치만 보는 속칭 '똥별들'이 영화 속에, 그리고 현실에도 있다. 군인의 꽃이라는 장군들은 전쟁 나면 정말 군대를 지휘할 수 있을지 매우 의심스럽다. 이건 그저 내 상상이나 추측이 아니다.
 
 지난 7월 22일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 체육관인 '김대식관'에서 열린 고 채수근 상병 영결식에서 해병대원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채 상병은 지난 7월 19일 오전 9시께 예천 내성천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 연합뉴스
 
올해 여름 중부권 수해로 많은 인명이 희생된 곳에 수색작업을 위해 자기 부하들을 들여보낸 해병대 지휘관들이 꼭 그랬다. 지휘관들은 보호장비도 없이 생떼 같은 남의 자식들을 거센 홍수 세례에 집어넣었다가, 채 상병이 희생되었다.

막상 일이 터지자, 그때부터 사단장, 해병대 사령관, 국방부와 대통령실까지 오르내리는 책임 빠져나가기 공모가 진행되었다. '똥별들'의 전쟁이다. 오직 한 사람 박정훈 대령만이 수사단장이라는 자기 자리에서 책임을 지다가 모든 것을 뒤집어쓰고 혼자서 법정을 오르내리고 있다. '서울의 봄'은 영화관에서만 아니라 이렇게 지금도 현실에서 재상영되고 있다. 가슴이 답답하다.

또, 2년 전부터 내가 가까이 만나는 한 분이 있다. 2021년 5월 군의 조직문화를 비판하고 항의하며 자결로써 마감한 이예람 중사의 아버지다. 이 중사는 상관의 지속적인 성추행에 시달리다가 상부에 보고했지만, 부대는 가해자와의 분리 조처도 제대로 취하지 않았다. 심지어 상관과 부대는 오히려 거듭된 만류와 협박을 일삼아 이 중사를 절망에 빠트렸다. 수사를 맡은 군 경찰과 검찰도 수사를 차일피일 미루고 열의를 보이지 않다가 결국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이예람 중사 빈소
ⓒ 구교형
 
사건 수사에 총책임이 있던 공군 전익수 법무실장은 사건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혐의를 받았지만, 관련 규정 미비로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또한 그는 지난해 말 준장에서 대령으로 1계급 강등당했지만, 징계 효력이 일시적으로 중단됐을 때 별을 달고 장군으로 전역했다.

이 중사의 아버지는 군대에서 다시는 이런 희생자가 나오면 안 된다며 특별법 제정 때까지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고 한다. (관련 기사: 고 이예람 중사 아버지 "대통령이 엄정수사 지시... 근데 왜 박 대령을?"https://omn.kr/25hwb) 벌써 2년 넘도록 국군 병원에 딸 시신을 안치하고 매일 자신 혼자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에는 내가 함께하는 교회 교인들과 함께 병원에 방문하여 예배드리고 응원하고 왔다.

어디 이뿐이겠나? 군대 안에서 벌어지는 불미스러운 사건과 사고 상당 부분은 특수사회라는 이름 아래 진실이 감춰진다. 걸핏하면 아무런 상관도 없는 '군사기밀' '북한과 대치 중인 특수상황'을 내세워서, 있어야 할 자리에서 책임지지 않은 상관들의 범행과 무책임을 가리고 있다. 이래서야 요즘같이 자녀가 적은 가정에서 어떻게 국가와 군을 믿고 자식을 군대에 보낼 수 있을까? 

이 와중에 지난 주간 대한체육회는 정신력 강화를 목적으로 400여 명의 국가대표 선수들을 해병대 극기 훈련에 입소시켰다. 자신들에게 맡겨진 젊은이마저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책임을 은폐한다는 의혹을 받는 이들에게서 무슨 정신력을 배울 수 있다는 말인가? 12.12사태 40여 년이 지난 2023년, 한국 군대는 여전히 건강하지 못하다.

성탄절에 더욱 아픈 사람들
 
 2023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 주최로 지난 4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2023 홈리스 추모행동 선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추모문화제가 열리는 22일까지의 홈리스 인권 및 복지 강화를 위한 활동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기자회견 뒤로 열악한 거처에서 삶을 마감한 홈리스를 추모하는 장미와 이름표가 놓여있다.
ⓒ 연합뉴스
 
내가 사회적 문제들을 언급하며 매우 비판적인 말을 하지만, 사실 나는 대한민국이 여러모로 많이 발전한 것을 피부적으로 많이 느낀다. 우리 정치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지만 20~30년 전에 비해 눈부시게 발전한 민주주의와 훨씬 투명한 행정, 우리 국민의 성숙도 등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와 발전은 끊임없는 개선과 개혁의 노력과 헌신을 통해서 조금씩 이루어진 것이고, 여전히 희미한 불빛조차 스미지 못한 사각지대가 있기에 우리가 더욱 분발해야 할 것 같다. 성탄절이 오히려 가슴 아픈 날인 사람들이 많다. 

성탄절과 2023년 마지막 주간을 보내며 나는 몇 해 전 시설장을 하며 함께 지냈던 예전 노숙인 쉼터 입소인들에게 일일이 안부 인사와 축복을 담은 문자를 보냈다. 수년이 지난 지금 그분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모른다. 원하던 일자리를 잡아 다시 사회에 복귀했는지,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 어른은 가족과 잘 사는지 많이 궁금하다.

40~50대 중년의 나이에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게 결코 쉽지않다. 그러나 바닥을 경험한 사람은 오히려 더 물러설 곳이 없다는 담대함이 생긴다. 또 한 해를 잘 이긴 그분들 모두가 그런 담대함으로 쉽지 않은 세파를 잘 이겨나가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반년 이상 택배와 연관된 글을 연재해 왔다. 그러나 항상 그들과 함께 있는 게 아니라, 부탁에 따라 이따금 함께하는 사람으로서 늘 미안한 마음이 있다. 특히 요즘처럼 춥고 미끄러울 때는 더욱 그렇다. 수레도 끌고 다니기가 쉽지 않고, 녹아가는 도로나 골목은 항상 질척거려 신발과 바지 끝이 젖어 축축하고 찝찝하다.

올해는 눈도 수북이 쌓여 제법 '화이트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난다. 그러나 성탄절의 원래 주인공인 예수 탄생의 2천 년 전 상황은 그리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첫 아이를 받아줄 곳도 없어 허름한 남의 마구간을 빌려 출산했고, 이후에도 아기와 그 가족을 죽이려는 헤롯 왕의 서슬 퍼런 수배령을 받고 애굽으로 야반도주를 한다. 그뿐 아니라 아기를 찾지 못한 헤롯은 그 근방에서 태어난 두 살 아래 남자아이를 몰살하도록 명령을 내려 엄마들의 통곡과 피비린내 진동하는 아수라장을 만들었다(마태 2:13~18).

그로부터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땅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용납하지 않는 증오와 대립으로 벌써 2만 명이 넘게 희생되었고, 평화와 재건은커녕 휴전조차 요원한 상황이다. 부디 새해에는 나라와 민족, 체제, 종교, 이념과 성별이 다르다고 무고한 사람을 해치고, 몰아내는 일이 사라지기를 기도한다. 평화는 여전히 우리의 첫 번째 기도 제목이다. 올해도 열심히 살아오신 모든 분에게 평화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누가복음 2장 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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