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과 거래한 적 없어...돈봉투 도의적 책임 느껴, 민주당 사과해야"
[구영식 기자]
▲ 청탁 대가 명목으로 사업가로부터 거액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이 9월 3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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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기자를 만난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미래사무부총장은 이렇게 자책했다. 남편에게 원래 심장병이 있긴 했지만, 자신의 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아 갑자기 사망한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구속된 후 남편은 네 차례의 자택 압수수색을 지켜봤고, 압수수색을 지휘하던 검사로부터 "뒷돈 받아서 이렇게 넓은 집에서 사니 좋으시겠어요"라는 모욕적인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다.
남편상을 당해 형집행정지로 잠시 풀려난 이정근 전 부총장은 이날 2시간여에 걸친 인터뷰에서 "내 사건이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사건으로 확대되기 전까지는 검찰의 기획수사였고, 문재인 정권 인사들을 탄압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라면서도 "(형량을 줄이기 위해) 검찰과 딜을 한 적은 없다"라고 주장했다. 검찰이 수사를 확대하고 있는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사건에 대해서는 "전달자로서 도의적 책임을 느낀다"라며 "민주당이 크게 반성하고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우식 대표와 돈거래 한 것 가슴 치며 후회"
서울 서초에서 총 네 차례 국회의원과 구청장 후보로 출마했던 이정근 전 부총장은 지난 9월 30일 특별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상 알선수재와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은 이 전 부총장이 박우식 전 부산자원 대표로부터 100억 원대 정부 에너지 기금 배정, 마스크 사업 인허가와 공공기관 납품, 한국남부발전 임직원 승진 등 알선 대가로 9억 4000만 원, 21대 국회의원 선거비용으로 3억 3000만 원 등 총 12억 7000만 원을 받았다고 봤다. 다만 알선 대가로 받은 돈과 불법정치자금이 일부 겹친다며 그가 받은 돈을 총 10억 1000만 원으로 판단했다.
이 전 부총장은 박우식 대표와의 단순한 채무 관계라고 반박했지만 1심과 2심 재판부는 특가법상 알선 수재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인정해 각각 징역 4년 6개월과 4년 2개월을 선고했다. 그가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 등 민주당 인사들과의 친분을 내세워 청탁을 받았고, 자신의 선거비용 마련을 위해 돈을 받았다고 인정한 것이다. 다만 2심 재판부는 알선수재 혐의 일부를 무죄로 선고해 1심의 징역 3년보다 감형된 2년 6개월을 선고했고,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는 원심의 1년 6개월보다 가중해 징역 1년 8개월을 선고했다. 특히 1심과 2심에서 선고된 형량은 검찰의 구형량(3년)보다 많아서 눈길을 끌었다.
이 전 부총장은 "박우식 대표와 사인 간의 돈거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라며 "하지만 알선수재나 불법정치자금이었으면 내가 통장을 통해 돈을 받고 상환할 일도 없었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총 6억 원을 빌렸다가 4억 2000만 원은 갚았다"라며 "자기한테 돈을 빌려 갔다가 안 갚았다며 박우식 대표가 나를 사기로 형사고발도 했고, 민사소송도 냈다"라고 거듭 사인 간의 돈거래라고 강조했다.
다만 "계열사 11개와 비트코인 4만 개를 가지고 있는 등 수천억 자산가라는 박우식 대표의 말을 믿었는데 검찰 수사와 재판을 통해 그가 정치 브로커라는 것을 알게 됐다"라며 "그와 돈거래 한 것을 가슴 치며 후회하고 있다, 내가 눈이 멀고 귀가 막혀 있었다"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알고 지내던 기자가 박우식 대표에게 '이정근이 마당발이고, 민주당에서 실세다'라고 나를 소개했고, 피의자신문조서에 나오듯 8·15 특사로 나왔는데 정치권과의 인연이 다 끊어진 박 대표에게는 내가 딱 이용하기 좋은 먹잇감이었다"라고 덧붙였다.
이 전 부총장은 "박우식 대표를 제대로 못 알아본 것도, 그의 말에 넘어간 것도, 그런 사람을 믿은 것도 내 탓이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라며 "'사기꾼에게 속았다'고 얘기할 염치도 없다, 통렬히 반성한다"라고 말했다.
▲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 사진은 제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서초갑 전략공천을 받았던 당시 모습. |
ⓒ 유성호 |
이 전 부총장에 대한 검찰 수사의 출발점은 박우식 대표와 운전기사의 진정서였다. 금전 문제로 박 대표와 갈등 관계에 있던 운전기사는 '박우식이 노웅래, 이정근 등 민주당 유력 정치인들에게 불법정치자금을 줬다'라고, 박 대표는 이를 반박하기 위해 '이정근이 돈을 빌려가서 안 갚고 있다'라는 진정서를 검찰에 낸 것이다. 이것이 과거의 '특수부'에 해당하는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에 배당되면서 사건이 커졌다.
검찰은 거물급 인사도 아닌 이 전 부총장을 구속한 뒤 그가 청탁했거나 로비했던 문재인 정권 인사들을 겨냥했다. 이 전 부총장도 "검찰이 나한테 숱하게 박우식 대표에게 받은 돈을 준 문재인 정권 인사들을 불어라고 압박했다"라며 "검찰한테서 노영민(전 대통령 비서실장), 유영민(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대통령 비서실장), 박영선(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성윤모(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현미(전 국토교통부 장관), 송영길(전 민주당 대표), 노웅래(민주당 의원) 등의 이름이 나왔다"라고 말했다.
이 전 부총장은 "검찰은 문재인 정권 인사들의 비리를 밝히는 열쇠로 내 사건을 이용하려고 했다"라며 "그래서 민사소송으로 가야 할 사건을 반부패부에 배당했고, 반부패부가 이 사건을 맡은 것은 결국 정치사건화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검찰이 계속 나한테 '불어라, 불어라'고 했지만 나는 초지일관 '그분들에게 1원이라도 준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라며 "그러니까 나중에는 '그렇게 돈을 받은 것이 문제다'로 바뀌었다"라고 지적했다.
이 전 부총장은 "검찰은 문재인 정권 인사들이 나오니까 엄청난 게이트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수사를 시작했지만 밝히지 못했다"라며 "증거가 없으니까 그렇게 거론된 문재인 정권 인사들을 조사하지도 못했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2심 재판부는 검찰이 기소한 알선수재 혐의 중 일부에 대해서 무죄를 선고했다. 이 전 부총장은 "노영민과 박영선, 강래구(전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와 이성만(민주당 의원)에게 준다고 돈을 받았다는 부분은 모두 무죄가 났다"라며 "그렇게 무죄가 난 알선수재 금액이 9500만 원에 이른다"라고 전했다.
"내가 검찰과 딜을 해 '징역 3년'만 구형? 억울"
검찰은 1심과 2심에서 모두 징역 3년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4년 6개월과 4년 2개월을 선고했다. 이를 두고 이 전 부총장이 문재인 정권 인사들의 이름을 불고,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사건 수사에 협조하는 대가(즉 그의 집행유예를 염두에 두고)로 구형량을 낮췄다는 분석이 나왔다. 검찰과 이 전 부총장이 '딜'(거래)을 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먼저 이 전 부총장은 "문재인 정권 인사들의 이름을 분 것은 내가 아니라 박우식 대표였고, 검찰에 100여 차례 출석한 것은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사건과 관련된) 통화녹취록 등 내 자료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라며 "항간에 내가 돈봉투 사건을 줄줄이 불었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왜 내가 돈봉투 살포 사건을 가장 먼저 보도한 JTBC와 그것을 유출했다고 추정되는 검찰을 고발했겠나? 어떻게 내가 불고 내가 고발할 수 있겠나?"라고 부인했다.
이 전 부총장은 "검찰과 딜을 했다면 나는 집행유예로 풀려났을 것이다"라며 "검찰이 집행유예를 염두에 두고 징역 3년을 구형했다면, 구형한 뒤에 낸 의견서에 '초범이며 수사에 협조적이고, 반성하고 있다'고 해줘야 하는데, 검찰 의견서는 악독하기 그지없었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새로 이사 간 김포의 자택을 압수수색하던 검사가 자신의 남편에게 "그렇게 뒷돈 받아서 이렇게 넓은 집에 살고, 좋으시겠어요"라고 비아냥거렸던 내용을 상기시켰다.
이 전 부총장은 "내가 이뻐서 검찰이 징역 3년을 구형한 것이 아니라 검사는 이미 1심에서 구형할 때 공소사실들이 부실함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박우식 대표의 진술만으로 기소하다 보니 결국은 2심에서 알선수재 혐의 중 일부가 무죄가 났지 않느냐?"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징역 3년을 구형한 걸 두고 검찰에 협조했다느니 검찰과 딜을 했다고 소문이 났는데 억울하다"라고 말했다.
▲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 관련 혐의를 받고 있는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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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검찰이 수사를 확대하고 있는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사건과 관련, 이 전 부총장은 "내가 송영길 대표의 박용수 보좌관에게 돈을 받아서 두 차례에 걸쳐 윤관석 의원에게 총 20개(봉투)를 전달했다"라며 "봉투에 든 금액을 정확하게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100만 원보다는 많고 500만 원보다는 적어 보였고, 나중에 300만 원이었다는 것을 알았다"라고 말했다.
이 전 부총장은 "이런 돈 심부름은 강래구로부터 지시받았다"라며 "송영길 대표 경선 후보 캠프에 조직본부장으로 참여한 이후 강래구로부터 '돈을 어떻게 마련하는지' 등 하나에서 열까지 돈에 대한 조언을 받았다"라고 전했다. 이어 "그때는 내가 송영길 지지그룹의 대표로 캠프에 가서 이런 역할(돈 전달)을 한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다"라며 "(강래구 등) 다른 인사들이 자신들의 책임을 덜기 위해 나를 돈 전달자로 이용한다고 생각했다면 이런 돈 심부름을 단호히 거부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전 부총장은 "그런데 '송영길 사단'이라고 하는 사람들, 동지로 믿었던 사람들이 내 등에 칼을 꽂았다"라며 "송영길 그룹에서는 모두 '이정근이 캠프에 돈이 없다며 돈을 달라고 했다'고 입을 맞추고 죄를 나한테 뒤집어 씌웠다, 그로 인해 내가 돈봉투를 뿌렸다고 인식하는 것이 일반 여론이다"라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또한 이 전 부총장은 "내 사건이 돈봉투 살포 사건으로 확대되기까지는 문재인 정권 인사들을 탄압하기 위한 검찰의 기획수사였고, 만들어진 수사였고, 의도된 수사였다"라며 "하지만 이것이 돈봉투 살포 사건으로 확장된 것에 대해 도의적 책임을 느낀다, 전달 책임자도 죄가 있어서 그 부분은 인정했다"라고 말했다.
이 전 부총장은 "윤관석 의원과 송영길 전 대표가 구속됐는데도 민주당이 사과하지 않은 것은 비겁하다, 민주당이 빨리 사과해야 한다"라며 "검찰과 적대적 관계이긴 하지만 민주당이 크게 반성하고 뉘우쳐서 혁신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이 다음 대선에서 정권을 되찾아올 생각이 있다면 돈봉투 살포 사건은 사과해야 한다, 사과하는 것이 마땅하고 그것이 민주당이 살 길이다"라며 "어물쩡 넘어가는 것은 안된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오는 28일 이 전 부총장의 대법원 판결이 예정돼 있다. 그는 항소심 재판부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 형량을 2개월 추가한 것이 '불이익 변경 금지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며 상고한 바 있다. '불이익 변경 금지 원칙'이란 피고인이 상소한 사건에 대해 원심 판결의 형보다 더 중한 형을 선고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피고인이 중형 변경의 위험 때문에 상소를 단념하는 것을 방지하고 피고인의 상소권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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