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주장 김기희가 돌아보는 홍명보와의 인연 "런던올림픽 후보였기에 인생이 잘 풀렸다"

김정용 기자 2023. 12. 27.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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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희(울산현대). 김정용 기자

[풋볼리스트=울산] 김정용 기자=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는 주장. 울산현대의 올해 K리그1 우승 당시 트로피를 들어올렸던 김기희가 규정한 자신의 역할이다. 김기희는 트로피 세리머니를 할 때도 시즌 초 주장이었던 정승현, 득점왕 주민규를 차례로 불러내 양쪽에서 함께 들어올렸다.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자신을 놓지 않았다. '풋볼리스트'는 말수가 많지 않은 김기희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클럽하우스에서 미리 인터뷰를 가졌다.


김기희는 트로피 복이 있는 선수다. 2012 런던 올림픽 남자축구 동메달로 축구인생이 풀리기 시작해 중국, 미국, 한국에서 각각 크고작은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울산이 무관에서 벗어나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우승을 한 것도 김기희를 영입한 시점부터다.


"처음 왔을 때는 '이 팀이 왜 우승 못 했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 스스로도 실수를 하면서 우승 못하는 데 일조했다. 전북전에서 헤딩 실수(2020년)하면서 우승을 놓쳤으니까. 그런 상황이 이어지면서 팀뿐 아니라 팬들도 트라우마를 가지셨던 것 같고, 심리적인 요인이 우승을 못하게 만들었다. 홍 감독님 오신 뒤 모든 선수들이 우승에 대한 마음가짐을 더 다졌다. 상대에 따라 흔들리지 말고 우리의 흐름을 한 시즌 내내 끌고가야 한다는 말을 선수들에게 계속 주입하셨다. 상대가 전북이든 포항이든 다 이겨내는 과정에서 트라우마를 씻을 수 있었다."


올해 초반에는 후보 신세였다. 시즌 초 자체 다큐멘터리('푸른파도')에서 "딸은 내가 축구선수인지 모른다"고 말하는 대목도 있었다.


"원래 올해 팀을 떠날 뻔했다, 동계훈련 때도 뒤에 빠져 있는 입장이었다. 그러다가 결과적으로 울산에 남았으니까 초반에 못 뛰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때 무기력해지지 않으려 했다. 김기희가 남들 눈에 어떻게 비칠지 생각했다. 어차피 못 뛸 거라고 운동을 소홀히 하는 선수들을 여럿 봐 왔는데 보기 안 좋았다. 난 오히려 운동을 늘렸다. 새벽운동을 많이 했다. 사실 팀 훈련은 정해져 있으니까 경기 안 뛰는 선수가 상태를 유지하려면 개인운동은 필수다. 그러다보니 뛸 기회가 왔을 때 생각보다 몸이 괜찮았다."


출장시간만 늘어난 게 아니고, 시즌 도중 주장이 됐다. 여름까지 독주하던 울산은 소셜미디어(SNS) 인종차별 논란을 겪고 박용우가 중동으로 떠나며 다소 흔들렸다. 당시 주장이 김기희로 바뀌었다. 홍 감독은 오랜 인연이 있는 김기희에게 짐을 늘리면서 긴말을 하지 않았다. 주장직을 제안한 뒤, 반나절 고민한 김기희가 수락하자 "힘든 시기에 고맙다. 주위에서 많이 도와줄 거다"라고 말한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주장은 처음이다. 전북 때 부주장은 해 봤다. 난 진두지휘하고 분위기를 휘어잡을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주위에서 (이)청용이 형이나 (주)민규가 돕겠다고 해 줘서 결정했다. 주장이라고 해서 딱히 한 건 없다. 팀의 안 좋은 분위기를 어떻게 바꿀까 하다가 결국 편하게 해 주기로 했다. 선수들은 시즌을 치를수록 예민해지는데 그걸 누그러뜨리려 했다. 원래 울산은 훈련 시작할 때 주장이 한 마디 했는데 그것도 줄였다. 말은 아까고, 운동은 늘리는 분위기가 되도록 했다."


김기희가 주장으로서 되새긴 게 있다면 팬들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김기희는 울산 첫해 우승을 놓치게 만든 원흉으로 꼽혔다. 전북전 백헤딩 '사건'으로 인해 비교적 순탄했던 프로 인생에서 처음 욕을 먹었다.


"어느 정도 사랑을 받으며 축구해왔다 생각했는데, 그 헤딩 이후로 화살을 많이 받아서 멘탈이 좀 나갔어요. DM(인스타그램 메시지)도 많이 왔고. 제가 31세밖에 안 됐는데 '몸이 갔다'는 내용이 특히 절 위축시켰죠. 자책도 했고, 팀을 잘못 택했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런데 다음 경기에 팬들이 준비해 준 2행시 걸개를 보고 힘이 많이 났죠. 기죽지 마, 희망은 있어."


김기희(울산현대). 서형권 기자
홍명보 감독(왼쪽), 김기희(이상 울산현대).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김기희는 홍 감독의 팀에서 유독 많은 걸 경험한다. 런던 올림픽 당시 경기에 출장한 선수만 병역혜택을 받을 수 있기에 아슬아슬한 시점에 교체투입된 일이 '4분 전역'으로 화제를 모았다. 베테랑이 되어 홍 감독과 K리그 우승을 합작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경기다. 김기희는 올림픽 때 주전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히려 성장할 수 있었다고 자신만의 시각을 밝혔다.


"올림픽에서 제가 뛰진 못했지만, 물론 4분 뛰긴 했지만 저는 사실상 못 뛰었다고 보는데요. 못 뛴 게 축구인생에 오히려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왜냐면 벤치에서 경기를 보면서 내가 왜 못 뛰는지, 왜 선발이 안 되는지 좀 빨리 알았거든요. 저 선수가 나보다 어떤 피지컬이 좋고 어떤 멘탈이 좋은지 밖에서 봤을 때 비로소 알겠더라고요.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부족한 부분들을 보완하다보니까 제 실력이 향상되는 걸 느꼈죠. 해외진출도 성장에 도움이 됐고. 그래서 올림픽은 겉보기보다 더욱 큰 도움이 됐어요."


사적인 관계가 없어도 의지할 수 있는 존재, 김기희에게 홍명보는 그런 존재다. 김기희는 작은 에피소드를 하나 밝혔다. 말수가 없는 김기희는 평소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드리는 성격이 못 됐다. 그런데 2014년 전북 소속으로 알힐랄(사우디아라비아)의 영입 제안을 받았을 때, 끙끙거리다 상담차 연락한 건 홍 감독이었다. 마치 진학상담을 신청하듯이. 홍 감독이 전북에 남는 게 더 도움될 거라고 조언해줬기 때문에 잔류로 가닥을 잡았다.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아도 신뢰할 수 있는 것이 홍 감독과의 사이라고 했다. 올해 초 그랬듯 울산을 떠나야 할 상황은 언제든 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든 자기 본분은 온전히 해내는 게 김기희가 생각하는 신뢰다.


사진= 풋볼리스트,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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