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 금융을 위해 금융감독체계 개편논의가 필요하다

박상욱 2023. 12. 2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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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의사결정 최대한 공개하고, 외부 전문가 참여할 수 있는 지배구조 만들어야

[박상욱 기자]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제도개선이 우선인가, 사람의 행태 변화가 먼저인가 하는 질문은 답하기 쉽지 않은 인류의 오래된 물음일 것이다. 앞선 글에서 금융감독업무를 담당하는 공직자의 인식, 태도를 얘기했지만, 감독체계를 빼놓으면 핵심문제의 하나를 비켜 갔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감독업무를 잘하려 해도 시스템이 구조적 모순을 가지고 있다면 정책효과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제대로 된 발전을 위해 감독체계 논의가 중요한 이유이다.

과거 금융의 역할이 자금을 중개하고 배분하는 역할에 그쳤다면 오늘날 금융은 규모가 확대된 것은 물론 빅테크와의 연계 등으로 그 중요성 및 확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또한 금융업은 허가를 받은 사업자가 운영하기에 특혜가 많은 반면 스스로 과도한 이익추구 욕구를 제어하기 쉽지 않고,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감독이 필수인 업종이다. 세계에 금융감독기구가 없는 나라는 없다.

금융업에 대한 감독이 중요함에도 국민 중 금융위원회(금융위)와 금융감독원(금감원)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나라 금융감독체계는 1997년 외환위기 이전 정부와 4개 금융권역별 감독기관으로 감독권이 나뉘어 있었는데, 1998년 합의제 행정기구인 금융감독위원회와 집행기구인 금감원이 발족되어 운영되다가, 2008년 정부부처인 금융위가 금융감독과 정책을 총괄하고 민간독립기구인 금감원이 금융감독업무를 담당하는 2중 감독체계를 구성하여 운영되고 있다. 이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중층적 감독구조이다.
 
 영업정지가 내려진 토마토저축은행의 예금자들이 2011년 9월 19일 오전 경기 성남시 수정구 신흥동에 있는 이 은행 본점의 닫힌 문 안을 살펴보고 있다.
ⓒ 선대식
 
과거 금융시장의 실패가 있을 때마다 금융감독체계 개편 필요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이미 실행되고 있는 제도에 관성이 생기고 이해관계의 복잡성 등으로 개편논의만 무성하다가 매번 시장 안정이 우선이라고 하며 결론을 내지 않고 넘어가곤 했다.

금융감독제도는 어느 체제가 정답이라는 것은 없다. 그 나라의 역사적 상황, 특성에 맞는 제도를 선택하여 잘 운영하면 될 것이다. 지금의 금융위, 금감원 이중 감독체제도 그동안 잘 작동되었다면 운영의 묘를 살려 보완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2008년 현행 감독체계로 개편된 이후 저축은행 사태, 동양증권 사태, 사모펀드 사태 등 여러 금융사고가 발생하고 거기에 부실 감독의 문제 제기가 있었다. 또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경제정책 운영방향에 따라 금융감독이 적지 않은 변동성을 나타내곤 했다.

감독체계 개편 논의가 시작되면 조직간 권한 다툼, 밥그릇 싸움으로 폄하해 본질적 논의를 피했으나, 이제는 건전한 시장질서의 확립, 금융시스템의 안정, 소비자 보호라는 금융감독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바람직한 감독체계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 제도개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람직한 금융감독을 위한 감독체계 개편방향은

첫째, 금융산업정책과 금융감독 간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현재는 금융산업정책과 감독업무 모두를 금융위가 담당하면서, 리스크 예방이 중요한 감독업무가 성과 가시적인 산업정책에 압도되어 금융시장 안정과 질서확립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거의 모든 시장실패가 금융산업을 진흥하려고 규제완화를 하면서 감독수단 마련 및 대응에 미흡했던 것에 커다란 원인이 있다. 2020년 국회 입법조사처에서도 2019년 부실 사모펀드 사태가 자본시장 육성을 위해 사모펀드 규제를 완화하면서 감독측면의 안전장치 마련에 소홀해 발생했음을 지적한 바 있다.

현행 감독체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정책과 감독은 구분하기 어려우며 조화롭게 운영하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금융사고가 터지기 전에는 금융시장에 친화적인 업무가 우선될 수밖에 없다. 감독이 정책에 밀려 산업포획이 일어나는 것이다.

둘째, 금융감독업무의 정치적 중립성, 독립성이 강화되어야 한다. 금융감독기구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은 감독기구의 생명선과도 같은 것이다. 금융감독행위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투명하고 원칙 있게 사용되지 않고, 정치적으로 이용되거나 내수진작 등 경제정책에 휘둘리고 여러 시장참여자에게 독립적이지 않다면 첨예한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금융시장에서 신뢰를 얻을 수 없다.

국제통화기금(IMF),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 같은 국제기구들은 우리나라 금융감독기구의 정치적 중립성, 독립성 수준이 낮아 금융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수차례 낸 바 있다.

감독기구의 독립성은 예산과 인사의 자율성이 확보되어야 하는 것으로, 물론 이를 위해서는 감독행위의 투명성과 책임성이 담보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셋째, 금융감독의 정책업무와 집행업무가 유기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현재의 금융위, 금감원으로 이원화되어 있는 금융감독체계가 빅테크 등 새로운 금융행위에 대한 감독수요 및 수많은 이해관계조정, 검사업무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3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카카오페이의 코스피 신규상장 기념식에 참석한 관계자들이 매매 개시를 축하하고 있다. 왼쪽부터 송영훈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장보, 안상환 한국IR협의회 회장, 정형진 골드만삭스 서울지점 한국대표, 임재준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장,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 류영준 카카오페이 대표이사, 김주원 카카오 부회장, 장석훈 삼성증권 사장, 박태진 JP모간증권 한국총괄대표,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부회장. 2021.11.3
ⓒ 연합뉴스
  
이중 감독체계로 의사결정 및 제도개선이 지연되거나 역할 혼선이 생겨 감독이 시의성 있고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얼마 전 마무리된 라임펀드 사태에 대한 증권회사 대표에 대한 제재는 무려 5년이나 소요되었다. 업무 비효율로 불확실성이 지속 되면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고 감독기구에 대한 신뢰가 훼손될 수밖에 없다.

이상적으로 생각하면 기관이 분리되었더라도 협업을 잘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항상 그렇지 못했다. 금융감독·검사업무를 통해 체득한 금융시장의 변화 정보를 금융정책 수립과 집행에 효율적으로 반영해야 하나 효율적이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넷째,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금융회사는 수익성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소비자보호를 형식적으로 생각해 여러 금융사고에서 소비자 피해를 야기해 왔다. 그럼에도 금융감독이 금융회사의 건전성 감독에 치중되어 금융소비자인 국민을 보호하는 일에 미흡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감독의 궁극적 목적인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건전성·영업행위 감독 등 모든 역량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협조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이의 대안으로 감독체계를 기능적으로 건전성 규제와 영업행위 감독으로 나누는 쌍봉형(Twin Peaks)으로 하자는 논의가 제기된 바 있다. 쌍봉형 체계는 감독기관의 증가로 인한 중복규제, 감독기관 분리로 인한 감독사각지대 발생 등으로 오히려 소비자보호의 실효성이 약화될 수 있다. 또한 감독기관이 구분되면 기관 이기주의, 업무 구분의 어려움으로 제도 정착에 수많은 시행착오가 불가피할 것이다.

과거 금감원 내에서도 감독업무를 건전성, 영업행위 부문으로 구분·운영해 보았으나, 금융회사의 업무가 건전성·영업행위로 단순 구분하기 어렵고, 그에 따른 부서간 업무 협조의 어려움, 책임소재 불분명 등으로 성공적이지 못해 원상 복구된 사례가 있었다. 금융소비자 보호는 금융감독의 최종 목적의 하나로 감독기관 전체가 힘을 합쳐 추구해야 한다.

이상의 논의를 바탕으로 바람직한 감독체계를 생각하면 '금융산업정책'과 '금융감독'은 분리하여 각각 독립된 기관에서 수행하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금융감독의 정책과 집행은 그 효율성을 위해 한 조직에서 수행하는 것이 옳으며, 그 기관은 감독업무의 정치적 중립성, 독립성을 고려해 금융감독 고유의 역할에 집중하는 민간공적기구가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금융감독권을 좁은 의미의 행정부만이 할 수 있다는 편협된 생각을 벗어나야 한다.

여기에는 금융안정을 위해 정부, 한은 등과의 협력체제가 중요함은 물론이다. 또한 감독기구가 대형화하고 검사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중 국민에 대한 권리 침해가 발생하는 등 권력기구화에 대한 우려가 있을 수 있다. 이에 따라 감독기구에 대한 엄격한 투명성과 책임성 확보가 중요하다.

감독 의사결정을 최대한 공개하고, 외부의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감시할 수 있는 지배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국회, 정부에 대한 업무보고, 감사원 감사 등 외부 견제 장치를 철저히 해야 함은 물론이다. '어항 속의 금붕어'와 같이 투명성과 책임성 담보를 위한 충분한 견제가 필요하다.

다시 말하지만 모든 나라에 통용되는 금융감독 시스템은 없다. 그 나라의 역사, 환경에 맞고 금융감독 '본연의 목표'를 가장 잘 달성하기 위한 최상의 제도 개선을 위한 논의가 되어야 한다. 기관의 권한, 이익이 초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언제까지 감독체계 개편 논의를 내용의 복잡성, 다양한 이해관계로 미루기만 할 것인가? 그러한 논의와 아울러 현재 감독체계에 노정된 문제를 시정 하기 위한 노력도 시작해야 한다. 금융감독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그 피해는 오롯이 국민이 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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