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강하다… '제2의 파키아오' 꿈꾸는 이노우에

김효경 2023. 12. 27.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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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팔레스를 꺾고 4개의 벨트를 들어올린 이노우에. AP=연합뉴스

가녀린 외모, 작은 체격, 하지만 무서운 주먹. '몬스터' 이노우에 나오야(30·일본)가 '제2의 파키아오'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세계복싱평의회(WBC)·세계복싱기구(WBO) 수퍼밴텀급(55.34㎏) 챔피언 이노우에는 26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WBA(세계복싱협회)·IBF(국제복싱연맹) 챔피언 말론 타팔레스(31·필리핀)와의 경기에서 10라운드 1분 2초 만에 KO승을 거뒀다.

이노우에는 밴텀급(53.52㎏)에 이어 두 체급 4대 기구 통합 챔피언에 올랐다. WBO가 출범한 1990년 이후 4개의 벨트를 모두 따낸 선수는 2001년 버나드 홉킨스(미국·미들급) 이후 9명 뿐이다. 동양인은 이노우에가 유일하다. 필리핀의 복싱 영웅 매니 파키아오도 이루지 못한 업적이다.

이노우에는 "벨트 4개를 들고 링을 보니 감동적이었다. 또 뜨거운 경기를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 5월 기대하는 경기가 성사되길 바란다"고 했다. 다음 상대는 루이스 네리(29·멕시코)가 유력하다. 35승 1패를 거둔 강타자 네리는 WBC 밴텀급 타이틀을 12번이나 방어했던 야마나카 신스케를 두 번이나 이겨 은퇴시킨 일본 복싱의 '적'이다.

타팔레스에게 어퍼컷을 적중시키는 이노우에 나오야(오른쪽). AP=연합뉴스

키 1m65㎝의 이노우에는 자타공인 경량급 최강자다. 라이트플라이급(48.99㎏), 주니어밴텀급(52.16㎏), 밴텀급에 이어 수퍼밴텀급까지 4체급을 정복해 일본의 복싱 영웅으로 떠올랐다. 통산 전적은 26전 26승.

작지만 무서운 펀치력을 지녔다. 26승 중 무려 23승이 KO승이다. 상대를 때려눕혀 10초 안에 일어나지 못한 KO가 8회, 심판이 경기를 중단시킨 TKO승이 15회다. 경량급 선수로는 보기 드물게 강해 상대의 숨을 멎게 만드는 보디 블로가 일품이다. 곱상한 외모로 상대를 쓰러트려 '몬스터'란 별명을 얻었다.

이노우에는 파키아오나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미국)처럼 현란하진 않다. 하지만 전체적인 능력이 뛰어난 올라운드 플레이어다. 특히 경기 운영능력이 훌륭하다. 상대가 몸통 수비에 집중하면 얼굴을 때려 흔들고, 가드를 높이면 옆구리를 공략하는 등 영리한 권투를 한다.

이노우에는 '복싱 DNA'를 갖고 태어났다. 복서였던 아버지 신고를 보며 6살 때 처음 글러브를 꼈다. 지금도 아버지가 트레이너를 맡고 있고, 동생 타쿠마는 WBA 밴텀급 챔피언이다.

일본의 복싱 영웅 이노우에 나오야. AFP=연합뉴스

아마추어 시절 75승 6패를 기록했지만, 2012 런던 올림픽 출전권 획득에 실패한 뒤 프로 무대에 뛰어들었다. 데뷔 후 4경기 만에 일본 라이트급 챔피언에 올랐고, 2014년엔 아드리안 에르난데스(멕시코)를 꺾고 W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이 됐다.

이노우에가 세계적인 선수가 된 건 월드 복싱 수퍼 시리즈(WBSS)에서였다. WBSS는 4대기구 챔피언과 강자 8명이 나선 토너먼트로 우승자에겐 무하마드 알리 트로피와 상금 100만달러(약 13억원)가 주어졌다. 이노우에는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고 이후 체급을 올려가며 무패 행진을 이어갔다.

프로복싱 기구가 늘어나고, 챔피언 벨트도 남발되면서 타이틀의 권위는 떨어졌다. 그러면서 파운드포파운드(P4P·체급에 관계없이 매기는 랭킹) 랭킹의 가치가 높아졌다. 이노우에는 현재 복싱전문지 '링'의 P4P 랭킹에서 웰터급 챔피언인 테렌스 크로포드(미국)에 이은 2위다. 지난해엔 잠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복싱 잡지 링 매거진 표지로 쓰인 이노우에 나오야의 그림. 복싱 만화 더 파이팅의 작가 모리카와 죠지가 그렸다. 사진 이노우에 SNS


파키아오를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시킨 프로모터 밥 애럼도 이노우에를 눈여겨봤다. 이노우에는 2020년 애럼의 회사 탑랭크와 계약하면서 미국 무대에 진출했다. 타팔레스전은 일본에서 열렸음에도 미국에 생중계됐다. 해외에선 인기가 없는 경량급이지만 대전료는 10억엔(약 90억원·추정)까지 올라갔다.

이노우에가 파키아오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메이웨더와의 대결 같은 빅매치가 필요하다. 둘은 전성기가 지나 만났지만 역대 최고 대전료인 2억5000만 달러(3240억원)를 나눠가졌다. 이노우에가 체급을 올린다면 세계 최고의 테크니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바실 로마첸코(35·우크라이나)와 대결도 가능하다. 로마첸코가 이노우에보다 세 체급이나 위지만, 둘의 대결이 성사된다면 세계 복싱사에 남을 명경기로 기록될 듯하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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