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간 '90원의 아침' 팔던 할머니 떠나자…中 전역이 애도

구나리 2023. 12. 27.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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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간 '90원의 아침'을 팔던 중국의 '조찬(早餐) 할머니'가 별세했다.

중국에선 조찬 할머니에 대한 애도의 물결이 일고 있다.

26일 관영 통신 신화사 등 현지 매체는 저장성의 '조찬 할머니'로 불렸던 마오스화 할머니가 지난 14일 90세 일기로 별세했다고 전했다.

1991년부터 저장성 취저우시 황탄커우촌의 초등학교 문 앞에서 좌판을 벌여 아침을 팔던 마오할머니는 2018년 장사를 접을 때까지 27년간 줄곧 아침 식사비로 단돈 5마오(약 90원)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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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는 것으로 족해"

27년간 '90원의 아침'을 팔던 중국의 '조찬(早餐) 할머니'가 별세했다. 중국에선 조찬 할머니에 대한 애도의 물결이 일고 있다.

27년간 '90원의 아침'을 팔아온 마오스화 할머니(왼쪽). [이미지출처=신화사 캡처]

26일 관영 통신 신화사 등 현지 매체는 저장성의 '조찬 할머니'로 불렸던 마오스화 할머니가 지난 14일 90세 일기로 별세했다고 전했다.

1991년부터 저장성 취저우시 황탄커우촌의 초등학교 문 앞에서 좌판을 벌여 아침을 팔던 마오할머니는 2018년 장사를 접을 때까지 27년간 줄곧 아침 식사비로 단돈 5마오(약 90원)만을 받았다.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물가도 크게 올랐지만, 산간 지역인 황탄커우촌의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마오 할머니는 한 번도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

새벽부터 맷돌로 콩을 갈아 더우장(豆漿·콩국)을 끓이고, 매일 직접 찹쌀밥을 지어 떡을 만들었으며, 쭝쯔((綜子·연잎 등으로 싸서 찐 주먹밥)도 준비했다. 마오 할머니의 음식은 신선했던 데다 양도 넉넉했다. 할머니의 조찬은 좌판을 벌이자마자 동이 날 정도로 인기였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찮은 학생들은 물론 곤궁한 주민들에게는 아침 한 끼를 해결하기에 충분했다.

주변에서 "그렇게 팔아서 돈을 벌 수 있겠느냐"며 가격을 올리라고 권해도 마오 할머니는 거절했다. 그는 "가정 사정을 뻔히 아는데 값을 올리면 불쌍한 학생들이 아침을 거를 것이 뻔하다"며 "학생들이 배불리 먹고, 몸도 건강해야 공부를 잘하고 나라를 위해 일할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마오 할머니의 장사는 팔면 팔수록 손해를 봤다. 꼬박 6시간을 장사해서 하루에 버는 돈은 30위안(약 5400원)에 불과했기에 매달 300∼400위안(5만4000∼7만3000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매달 지급받는 남편과 자신의 연금 등을 보태면서 장사를 이어갔다.

현지 언론 매체를 통해 마오 할머니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그는 '가장 아름다운 취저우인', '저장성의 도덕 모범', '가장 아름다운 중국인' 등의 호칭을 얻었고, '전국 도덕 모범' 등 각종 상도 여러 차례 받았다.

마오 할머니는 "기력이 있을 때까지 계속 장사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건강 악화로 2018년 좌판을 접어야 했다. 그 뒤 5년의 투병 생활 끝에 하늘의 별이 됐다.

마오 할머니의 손녀사위가 올린 부고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애도를 표했다.

누리꾼들은 "경제가 발전할수록 탐욕이 커지는 요즘 세상에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고 나눔을 베풀었던 분", "항상 웃는 얼굴로 반겨주던 할머니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는 취저우의 영원한 자랑이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구나리 인턴기자 forsythia2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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