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채팅] e스포츠 종주국 한국, 글로벌 주도국인가?
올해 대한민국은 첫 정식종목으로 치러진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 e스포츠의 7개 세부 종목 중 4개 부문에 선수단을 파견해 금2, 은1, 동1로 참가한 전 종목에서 메달 획득에 성공했다. 또한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에서 T1이 우승하면서 한국 e스포츠는 올 한해 유례없는 성과로 주목받았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시안게임 e스포츠 부문에서 가장 많은 메달을 수확한 국가는 중국으로 금4, 동1개의 메달을 땄다. LoL 외 나머지 종목에서도 중국은 1년 내내 강세를 보였다.
중국에서 서비스하는 게임 위주로 종목 채택이 이뤄져 공정성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지만 한편으로 스폰서십, 중계권 등 상업주의로 인해 더 이상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이 순수하지 않다는 걸 많은 이들은 잘 알고 있다. 스포츠 이벤트의 가치는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강하게’가 아니라 ‘더 많은 시청자, 더 많은 후원 및 중계권료’에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번 아시안게임 e스포츠 종목 중 중국의 텐센트가 개발하거나 서비스하고 있는 게임은 절반이 넘는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단순히 개최국 중국의 기업이라서가 아니라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항저우 아시안게임 조직위, 아시아e스포츠연맹(AeSF)에 스폰서십 참여를 하며 지속적인 스포츠 외교를 벌인 결과물이다.
텐센트는 IeSF, AeSF의 경쟁 단체라 할 수 있는, IOC 부위원장 세르미안 응이 주도해 설립한 싱가폴 거점의 글로벌e스포츠연맹(GeF)에도 스폰서로 참여하고 있다. 중국 내 e스포츠 관련 단체인 중국 문화여유부 산하의 중국문화오락협회와 중화체육총국 산하 단체들에도 후원사로 참여하는 등 전방위적인 스포츠 외교를 펼쳐온 걸 필자는 지난 10년간 봐왔다.
그럼 다음 아시안게임 개최국인 일본은 어떤가. 일본e스포츠협회(JESU)는 난립했던 e스포츠 관련 단체들을 통합하고 일본온라인게임협회(JOGA), 일본어뮤즈먼트머신협회(JAMMA), 컴퓨터엔터테인먼트협회(CESA), 디지털미디어협회(AMD)가 이사로 참여하는 유니온 구조로 통합하는 데 성공했다. 세가에 이어 올해 말 코나미가 새롭게 회장사로 선출됐다.
JESU는 CESA와 도쿄게임쇼를 공동주최하고 IOC의 파트너이기도 한 세계적인 마케팅 그룹 덴츠와 파트너십을 통해 도쿄올림픽 이후 더욱 공격적으로 자국 게임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덴츠는 GEF와도 전략적 제휴를 통해 e스포츠의 세계적 보급을 목표로 마케팅 프로그램 개발 및 e스포츠 이벤트 등을 개최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 결과물이 올해 싱가폴에서 개최된 IOC의 ‘올림픽 e스포츠 위크’ 행사라고 할 수 있다.
올림픽 e스포츠 위크는 세르미안 응과 JESU, 덴츠의 이해관계가 맞아 전통 스포츠 종목의 마케팅 니즈와 닌텐도, e풋볼 등 신체 활동 및 스포츠 장르 게임이 많은 콘솔 강국 일본의 기술력이 결합해 진행된 행사다. 향후 바흐 IOC 위원장이 발표한 바와 같이 올림픽의 e스포츠 도입에 있어 한 단계 더 진화된 형태의 ‘올림픽 e스포츠 게임즈’를 개최하면 일본 게임이 e스포츠 장르의 주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 기간에 AeSF은 총회를 통해 처음으로 텐센트와 코나미를 종목 회원사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2026년 개최될 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는 어떤 게임들이 e스포츠 세부 종목으로 참여하게 될 지 예상 가능하다.
최근 사우디는 세계 최대 e스포츠 그룹인 ESL을 1조원이 넘는 금액에 인수하고 중국 최대 e스포츠 조직인 VSPO도 인수했다. 나아가 게임 및 e스포츠의 글로벌 허브로 거듭나기 위해 매년 ‘e스포츠 월드컵’을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국부펀드 산하 국영기업 새비게임즈를 통해 2030년까지 54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한다.
전통적인 게임·e스포츠 강국인 북미, 유럽은 초기 쇼 비즈니스 형태로 글로벌 e스포츠 산업을 주도해 왔다. 이제는 기존 스포츠 행정,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사우디, 카타르로 대표되는 중동과 중국, 일본이 메가 스포츠 이벤트 등을 마케팅 플래폼으로 해 e스포츠 산업을 주도해 나가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글로벌 e스포츠에서 어떤 지위일까? 우리는 앞서 언급한 다른 국가들과는 시장과 자본에서 열세일 수밖에 없다. 국내 게임산업은 규제 이슈에 대응하기 바쁘고 상장기업들은 주주들의 매출 압박에 소위 말해 당장 돈 되는 게임 개발 외에 다양한 장르의, e스포츠에 적합한 창의적인 게임을 개발하기에는 너무나도 척박한 환경이다.
우리 눈높이에는 더디고 미흡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e스포츠협회 등 민관 협업체계가 실제 잘 가동되고 있고 정치권에서도 e스포츠진흥법을 제정한 뒤 지속적으로 개정해 나가는 등 다른 어떤 국가보다 체계적으로 e스포츠 문화와 산업 발전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북미, 유럽, 사우디, 중국, 일본은 민간 영역의 거대 시장과 자본의 힘으로 글로벌 기업 중심의 미래가치에 대한 투자가 활성화되어 있을 뿐이다. 반면 우리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나 행정력은 상대적으로 경쟁력 있다고 볼 수 있으나 정작 모태펀드나 기업의 투자 활성화에는 목말라 있다.
선수들의 경쟁력은 어떨까.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는 최강의 실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e스포츠 전체를 망라했을 때 최근 각종 국제대회에서 중국에 열세를 보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번 롤드컵에서도 중국은 3개 팀이 준결승에 올라 챔피언 자리를 위협했다.
올해 아시안게임과 롤드컵에서 성과를 낸 것은 의미 있는 결과이지만 특정 종목에 편중된 시장 불균형 또한 해소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중국, 일본 등 주요 국가에 맨 파워에서도 추월당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도달해 있다.
장르 다양화, 종목 다각화를 시작으로 비인기 종목의 균형 있는 발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선수들의 진로 구체화, 직업선택의 자유, 안정성 등이 담보될 수 있도록 학교 e스포츠 정착, 지자체 실업팀 창단, 체육진흥투표권을 통한 기금 조성 등의 시스템 구축이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대한민국은 5000만 인구의 내수 시장 규모를 가지고 있지만 전 세계 트랜드를 이끌어 가는 창의적인 기획력과 연출력, 스타 파워를 갖추고 K팝과 영화, 드라마 분야에서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또한 적은 선수 자원으로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를 배출하는,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우수한 인적자원을 갖고 있다. 대한민국의 스포츠, 콘텐츠 산업은 모두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과 민간의 창의적인 기획력, 제도적 시스템 등 민관산학 협업을 통해 이루어 낸 성과다.
이러한 저력이 e스포츠와 결합한다면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정부의 더 적극적인 관심과 투자, 제도 개선 등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 전 세계가 미래 먹거리, 스포츠 산업의 새로운 주류 문화로 떠오르고 있는 e스포츠의 가치에 주목하며 투자를 확대해가고 있는데 그동안 한국은 여전한 부정적 인식에 눈치를 보느라 투자가 경색되며 종목도 편향돼 있었다. 종주국이라는 프레임에 계속 머물러 있는다면 대한민국 e스포츠의 미래는 없다.
우수한 인적자원을 유치해 스타를 계속 양성하고 한편으로 합리적 행정과 외교 노력을 통해 스포츠 외교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어야 글로벌 e스포츠 산업의 주도국으로서 결실도 딸 수 있을 것이다.
김철학 한국e스포츠협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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