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압된 미술품 시민들에게…예보 전시회 현장은 [가봤더니]
25억원 달하는 미술품 관람·구매 가능…현대미술 대가 제프 쿤스 작품 전시
미술관에 가는 이유는 다양하다. 다양한 작품들을 보며 영감을 얻거나, 작품을 만들어낸 작가의 세계관과 창작의도 등을 읽고 공감하기 위해서도 있을 것이다. 혹은 단순히 별 생각없이 방문해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미술관에 방문하기도 하는 이들이 많다.
이처럼 다양한 이유가 미술관에 발을 들이게 하지만, 예금보험공사가 마련한 이번 전시회에서는 찾아가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다. 저축은행 사태 당시 부실저축은행들이 보유했던 미술품들이 어떻게 예금보험공사에 왔고, 이들이 어떻게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가는지 그 과정을 볼 수 있는 귀한 자리기 때문이다.
예금보험공사는 내년 1월7일까지 부실저축은행 파산재단이 보유하고 있는 국내외 미술품을 뮤지엄 웨이브에서 ‘마음을 잇다’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열고 시민들에게 무료로 개방한다고 밝혔다.
예금보험공사는 그간 매각되지 못하던 미술품들 가운데 예술성과 상품성이 높은 미술품(19점 내외, 감정가 약 25억원)을 엄선해 전시 및 홍보하고, 매각도 병행 추진하기 위해 마련했다는 설명이다. 또한 그간 예보가 진행했던 전시회는 ‘매각’을 위한 사전 전시회 성격이 강했다면, 이번 전시회는 시민들에게 ‘전시’를 위한 목적이 더 부각된 최초의 전시회라는 점이 의미있다.
전시회가 열리는 장소는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위치한 ‘뮤지엄웨이브(우리옛돌박물관)’다. 성북구가 서울에서도 비교적 한적하고 고즈넉한 곳이다 보니 전시회도 조용한 분위기에서 감상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번 전시회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한국 금융사에 남아있는 흑역사이자 예금보험공사의 노력의 흔적이다. 지난 2011년 저축은행사태가 발생하며 대규모로 지방저축은행들이 부실을 일으켰고, 예금보험공사는 2011년부터 부산, 토마토, 미래, 프라임 등 부실저축은행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창고 등에 방치·은닉돼 있던 고가의 미술품들을 대거 발견했다.
당시 해당 저축은행들은 이런 미술품들을 담보를 과도하게 설정한 뒤 대출을 무리하게 일으키는 불법 영업방식을 사용했었다. 미술의 가장 큰 목적인 심미적인 감상은커녕 불법 대출을 만드는 용도로 사용됐던 안타까운 과거가 있었던 셈이다.
예금보험공사는 이같은 미술품들을 회수해 그동안 경매 전문회사(매각주관사) 위탁을 통해 매각하고, 매각대금을 부실저축은행 피해 예금자에게 배당해왔다. 올해 11월 말까지 8016점을 매각해 240억원을 회수했다.
전시회에서는 1층부터 3층까지 다양한 설치미술과 그림, 도자기 등 신인부터 기성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회의 백미는 미국의 현대 미술가 제프 쿤스의 작품 ‘Encased - Five Rows’가 있다. NBA의 전설로 불리는 스카티 피펜과 샤킬 오닐의 사인이 그려진 농구공들이 일렬로 늘어져 있는데, 전 세계 생존 작가 중 가장 비싼 현대미술가로 알려져 있는 미국 현대미술가 제프 쿤스가 만들었다. 추정가는 16억원에 달한다.
1층에 전시된 거대 설치미술인 조안나 바스콘셀로스의 ‘팬텔미나’(4500만원), 3층에 위치한 중국 신진 작가 겅슈예의 작품 ‘무제’(550만원) 등도 구경거리다.
예금보험공사 관계자는 “평소 시민들이 접하기 힘든 미술품들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 미술품 경매도 함께 추진함으로써 저축은행 피해 예금자 보호에 일조하기 위해 이번 전시를 개최하게 됐다”며 “여기에 ESG 경영의 일환으로 자매결연 아동양육시설인 ‘남산원’ 어린이들에게 미술관 체험의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전시회가 열린 뮤지엄웨이브에서는 우리옛돌박물관 관람도 추가로 가능하다. 유료로 3000원의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가면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 조선후기까지 마을 곳곳에 자리했던 친숙한 석상들과 조형물들을 감상할 수 있다. 여기에 언덕을 올라가 조용한 성북동 일대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는 탁 트인 전경을 보여준다.
또한 법정스님의 일화로 잘 알려진 길상사와 가구박물관, 만해 한용운 스님이 입적한 심우장이 위치한 만큼 전시회를 감상한 뒤 방문할만한 유명 관광지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김동운 기자 chobits3095@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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