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12분 연설 A4 용지 '너덜'…얼마나 다듬고 고쳤기에

김기정 2023. 12. 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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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입장 발표 뒤 이동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정치인이나 진영의 이익보다 국민이 먼저입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26일 취임 수락 연설에서 ‘국민’을 22번 언급하며 “선민후사(先民後私)”를 강조했다. 그는 “저는 선당후사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며 “분명히 다짐하자. 국민의힘보다 국민이 우선”이라고 했다.

한 위원장은 ‘국민’과 함께 ‘동료시민’이란 단어도 열 차례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정치를 시작한 계기에 대해 그는 “미래와 동료시민에 대한 강한 책임감을 느끼기 때문”이라며 “좋은 나라를 만드는데, 동료시민들의 삶을 좋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그 마음으로 살았고, 지금은 더욱 그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동료시민’이란 단어는 “서민과 약자의 편에 서고 싶었다”는 한 위원장이 평소 즐겨 사용하는 표현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해 한 위원장은 “성숙한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시민들 간의 동료 의식으로 완성되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재해를 당한 낯선 동료시민에게 자기가 운영하는 찜질방을 내주는 자선, 지하철에서 행패 당하는 낯선 동료시민을 위해 나서는 용기 같은 것들이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완성하는 시민들의 동료 의식”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당은 그 동료 의식을 가진 당이어야 하고, 우리는 모두 동료시민”이라고 덧붙였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직접 작성한 비상대책위원장 임명 수락 연설문을 읽고 있다. 뉴스1

이날 한 위원장의 12분간 연설은 200자 원고지 20매 분량(4112자)으로, 본인이 직접 쓰고 고쳤다고 한다. 수락 연설 직전까지 고치고 가다듬은 탓에 한 위원장이 품에서 꺼낸 연설문이 적힌 A4용지는 모서리가 너덜거렸다.

정치권에선 한 위원장의 연설에 대해 “쉽고 간략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한 위원장의 첫 일성이 확실히 여의도 사투리는 아닌 것 같다”(여선웅 전 청와대 행정관)는 반응이 나왔다. 지난달 대전을 찾아 “여의도에서 300명만 공유하는 화법이나 문법이 있다면 그건 여의도 문법이라기보다는 여의도 사투리”라며 “나는 나머지 5000만명이 쓰는 문법을 쓰겠다”고 했던 그였다. 비교적 빠른 발언 속도, 손동작을 많이 활용하는 것도 한 위원장 연설의 특징이다.

민주당을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으로 호칭한 것도 특기할만한 부분이었다. 연설에서 ‘이재명’을 모두 다섯 차례 거명한 그는 민주당을 “중대범죄가 법에 따라 처벌받는 걸 막는 게 지상목표인 다수당”이라고 규정한 뒤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운동권 특권세력과 개딸전체주의와 결탁해 자기가 살기 위해 나라를 망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주벌판의 독립운동가들은, 다부동 전투, 인천상륙작전, 연평해전의 영웅들은, 백사장 위에 조선소를 지었던 산업화의 선각자들은, 전국의 광장에서 민주화를 열망했던 학생들과 넥타이부대들은, 어려운 상황이란 걸 알고도 물러서지 않았고 그래서 대한민국의 불멸의 역사가 되었다”고 대비시켰다. 역사의 진보를 일군 세력을 국민의힘으로,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을 민주당으로 치환해 넉 달 뒤 총선을 ‘정권 안정 대 심판’이 아닌, ‘미래 대 과거’ 구도로 재편하려는 의도란 분석이 나온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19일 “세상의 모든 길은 처음엔 길이 아니었다”며 중국의 대문호 루쉰(魯迅)을 인용해 비대위원장직 수락 의사를 시사했던 한 위원장은, 이날 수락 연설에선 “공포는 반응이고 용기는 결심이다(Fear is a reaction. Courage is a decision)”라는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발언을 차용해 정치 참여 의지를 다졌다.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과 그 뒤에 숨어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운동권 특권세력과 싸울 것이다. 호남에서, 영남에서, 충청에서, 강원에서, 제주에서, 경기에서, 서울에서 싸울 것이다. 그리고 용기와 헌신으로 반드시 이길 것이다.”

한 위원장의 이 발언 역시 2차 세계대전 개전 초기 영국 국민의 항전 의지를 북돋운 처칠의 명연설을 인용한 것이다.

이날 한 위원장이 맨 넥타이도 화제였다. 조선 세종 때 훈민정음으로 쓴 최초의 작품인 ‘용비어천가’가 새겨진 제품으로, 한 위원장은 지난해 5월 법무부 장관 취임식 때도 이 넥타이를 맸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수락의 변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이날 한 위원장 취임식 질의응답 과정에서 국민의힘이 질문자를 사전 선정해 논란이 일었다. 한 위원장 수락 연설 전 당 관계자가 먼저 질문 횟수를 서너 차례로 제한한 뒤 신청자를 받고 질문 요지를 물었다는 것이다. 당 안팎에선 “민감한 질문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당 관계자는 “(질문을 최소화해달라는) 한 위원장의 사전 요청은 전혀 없었다”며 “방송 중계가 몰리는 등 현장 상황이 어수선해서 기자단에 미리 양해를 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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