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물질의 풍요에서 사랑의 영성으로

2023. 12. 27.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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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격변과 불안의 시대일수록
현인들은 마음에서 길 찾아
사랑의 풍요 먼저 떠올리길

“삶이 우리에게 훅 달려든다.”

2024년을 내다보면서 영국의 한 언론인은 말했다. 세계는 질주하는 중이다. 몸은 겨우 한 해를 살았을 뿐인데, 마음은 100년을 산 것처럼 느껴진다. 평화의 꿈은 갈수록 멀어지고 세계 곳곳에는 전쟁의 불길이 퍼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과 그에 따른 남북한 대결의 격화를 바라보는 마음은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경제 불안도 무척 심각하다. 고금리 고물가로 서민 고통은 커지고 기업 파산은 급증하는데, 로봇과 인공지능 일상화에 따른 직업 학살도 선연하다. 공포가 마음을 사로잡고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는 시대다.

인류가 이러한 지구적 불안의 시대를 살아간 건 처음이 아니다. ‘축의 시대’(교양인 펴냄)에서 영국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은 기원전 900년부터 기원전 200년까지 인류사를 주목한다. 이 시기는 제국의 붕괴에 따른 정치적 격동과 함께 전쟁과 폭력이 늘어나고, 급격한 도시화와 인구 증가로 전통적 삶의 질서가 무너졌던 때였다.

중국에선 주나라가 붕괴하면서 춘추전국시대가 열렸고, 인도에선 하라파 문명이 스러지면서 혼란이 거듭됐다. 히브리에선 바빌로니아 제국의 침략으로 나라가 망했고, 그리스에선 미케네 왕국이 무너졌다. 사람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수난에 괴로워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서 방황했다.

그러나 불안의 시대에 놀랍게도 인류는 물질적 삶에서 답을 찾지 않고 내적 영토의 개척에 나섰다. 자아를 성찰하고, 사랑의 힘을 일으키며, 거룩함에 이르는 법을 발명했다. 지상의 삶이 아니라 영성의 우주로 나아간 것이다.

중국에선 공자, 묵자, 노자 등 제자백가가 일어서 사상을 설파하고, 인도에선 우파니샤드, 자이나교, 불교가 나타나 영적 각성을 촉구했다. 그리스에선 소포클레스, 소크라테스, 플라톤이 내적 자질의 단련을 요청하고, 히브리에선 엘리야, 예레미야, 이사야가 자기를 비우고 먼저 신의 뜻을 생각하라고 외쳤다.

삶의 오랜 규칙이 철저히 파괴되고 사회 위기가 지속되는 시대에 이들은 정신적 전환에 길이 있다고 생각했다. 부국강병을 바라는 양나라 혜왕을 향해 맹자는 말했다. “왜 이익부터 말합니까. 사랑(仁)과 정의(義)가 있을 뿐입니다.” 태평성대를 이룩하려면 무력을 통한 영토 확장이나 대형 치수 사업을 통한 경제 부흥보다 덕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사랑과 정의가 뒷받침되지 않는 군사력과 경제력은 세상 혼란의 주범에 불과했다.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도 마찬가지였다. 기원전 6세기 전후 유다 왕국에서 활동한 그의 삶은 위기로 점철됐다. 바빌로니아의 위협에도 사람들은 제 이익 챙기기에 몰두할 뿐이었다. “예루살렘 거리를 돌며 찾아보라. 올바르게 살고 신용을 지키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으면 나는 예루살렘을 용서하리라.”

그러나 영적 각성을 촉구하는 그의 목소리를 아무도 귀담지 않았고, 결국 파멸의 날이 찾아왔다.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왕국이 멸망하며, 사람들이 노예로 바빌로니아에 끌려가는 비극이 벌어진 것이다. 일찍이 예레미야는 경고했다. “부정하게 재산을 모은 사람은, 남이 낳은 알을 품는 자고새 같아, 머지않아 재산을 털어먹고 미련한 자로 죽을 것이다.” 재앙을 이기는 힘은 재물보다는 미련한 자가 되지 않는 것, 즉 신적 지혜에서 나온다.

격변을 향해서 세상이 쏜살같이 나아가는 시대다. 불안과 공포가 중첩되는 오늘날과 같은 시절일수록 현자들은 영성의 함양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인류에게 삶의 축을 물질에서 정신으로 전환하라고 호소했다. 그 전환의 핵심엔 자비(compassion)가 있다. 함께(com-) 타인의 고통(passion)을 나누는 힘이 없을 때 풍요는 탐욕을 부추겨 해악을 끼칠 뿐이다. 어려운 시절이지만 부디 물질의 풍요보다 사랑의 풍요를 먼저 떠올리는 연말이 되었으면 좋겠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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