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거대 양당의 의원 나눠먹기 꼼수
정치가 달라져야 경제가 살고 나라도 발전할 텐데 정치가 제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승자독식 구도를 타파하고 협치와 상생의 물꼬를 터야 하는데도 정치권은 다음 총선 결과에만 매달려 허둥대는 형국이다. 지금 선거법 개정 합의는 정치개혁의 가장 중요한 실마리다. 선거법 개정의 핵심 문제는 위성정당을 타파하고, 대표성과 비례성을 높여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안착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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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제 개편 논의 다시 제자리
두 정당, 병립형으로 회귀 조짐
양당 구도 깰 연동형 채택해야
」
비례대표제 중에 병립형은 지역구 의석과는 별개로 정당 득표율에 따라 정당별로 비례대표 의석을 나누는 방식이다. 연동형은 지역구 의석이 정당 득표율보다 적을 때 비례대표에서 모자란 의석을 채우는 방식인데, 현행 준(準)연동형 제도는 모자란 의석의 50%만 채우도록 하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소수정당의 국회 진출 가능성을 높이고 다당제 확산에 기여하지만,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소수정당의 국회 진출 가능성을 낮추고 다당제 확산에 저해가 될 수 있다.
여당은 위성정당의 발호를 막으려면 과거의 병립형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위성정당을 막는 방법은 병립형 회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위성정당을 만들 경우 그 정당에 페널티를 주는 등 막을 방법은 여러 방안이 있다. 사실 병립형으로 가면 기존 거대 양당이 적당히 국회 의석을 나눠 먹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여당은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제1야당은 이를 수용할 수 있다는 애매한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병립형은 다당제나 연립정당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미 폐기됐는데 다시 꼼수로 등장해 우리 정치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런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비례대표 선거를 지역구 선거에 연동해 선거 개혁을 하겠다고 국민께 했던 약속을 접고 여당의 병립형을 슬그머니 받으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이 대표는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며 병립형으로 후퇴를 시사했는데 그 발언을 철회하고 약속을 지켜야 한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할 말 하는 대표, 국민의 상식과 국민의 생각이라는 나침반을 갖고 앞장서겠다”고 표명했는데, 이를 선거법 개정 과정에서 실천으로 보여줘야 한다. 국민이 무엇을 바라는지 깊이 숙고해야 한다.
가능한 최소주의에 입각해서라도 선거법이 합의에 따라 개정되기를 시민사회가 바라는 것은 이번 선거법 개정이 한국 정치를 분열과 대결을 뛰어넘어 새로운 합의제 민주 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희망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금 절망의 뿌리는 단연 정치에 있다. 어두운 정치를 앞장서 걷어 내는 용기와 책임을 질 정치인이 필요하다. 만일 이대로 선거법 개정 없이 총선이 치러져 어느 한 정당이 국회의 절대 권력을 갖는 구조가 될 경우 합의와 상생의 새 정치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균형감인데 한번 균형이 무너지면 복원하기 힘들다.
정치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적대적 공생관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거대 양당이 나눠 먹는 구조는 이제 끝내야 한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는 소수정당의 정치적 입지도 배려하는 따뜻한 협치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대결 구도를 깨고 모두가 힘을 모아 상생과 협치의 장을 여는 합의제 민주주의의 새 틀을 짜기 위해서는 병립형의 유혹에서 벗어나 연동형으로 선거제 합의를 이뤄야 한다. 시민단체는 2019년의 ‘원포인트 개헌’ 시도 경험을 살려 한편으로 국회의 선거법 개정 협상을 압박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독자적인 선거법 개정안을 제시해 통과시키는 노력을 병행할 예정이다.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하고 정략가는 다음 선거를 생각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 시민단체는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의원들이 모여 독자적으로 선거법 개정의 기치를 드는 것이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믿음을 갖고 선거법 개정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선거법 개정 합의가 임계점에 도달하면 자원봉사 등 법이 허용하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그들을 도울 것이다. 결코 사태를 수수방관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번에는 기필코 선거법을 제대로 개정해 정책대결과 타협으로 정치가 제자리를 잡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나아가 윤석열 정부 남은 3년 임기 내에 개헌도 성사시켜 참다운 정치개혁을 이뤄내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선거법 개정 시민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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