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노래로 놀아볼랍니다…281명 무대 올린 마당놀이 대가들

홍지유 2023. 12. 27. 00: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왼쪽부터 ‘월인천강지곡’의 안무를 맡은 국수호, 작곡 박범훈, 연출 손진책. 이들 삼총사는 1981년부터 함께 마당놀이를 만들어 온 예술적 동지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9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개막하는 ‘세종의 노래: 월인천강지곡’은 국립극장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음악극이다. 국립국악관현악단,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과 서양 오케스트라, 합창단 등 출연자만 총 281명이다. 대작을 만든 3인방의 면면도 화려하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초대 단장이자 작곡가인 박범훈(75)이 음악을, 한국 연극의 대부 손진책(76)이 연출을, ‘국립무용단 1호 남성 무용수’인 국수호(75)가 안무를 맡았다. 지난 21일 서울 중구 극립극장에서 만난 ‘삼총사’는 ‘세종의 노래: 월인천강지곡’을 “종합 시어트리컬(theatrical) 콘서트”라고 소개했다. “국악기와 서양 악기, 연극과 창(唱), 한국 무용과 독창·중창·합창이 어우러진 종합 예술”이라면서다.

작품은 세종대왕이 직접 쓴 ‘월인천강지곡’을 바탕으로 했다. ‘천 개의 강에 뜬 달’이라는 의미의 월인천강지곡은 1447년(세종 29년) 세종대왕이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한글로 직접 지은 찬불가(부처의 공덕을 기리는 노래)로, 석가모니의 전 생애를 담았다.

박범훈은 월인천강지곡을 서곡과 8개 악장으로 구성했다. 기악 반주는 국악기 위주로 편성하고 부족한 소리는 서양 악기로 채웠다. 그는 “작곡에 꼬박 2년이 걸렸다”며 “월인천강지곡은 가사만 남아있고 악보는 전해지지 않아 작업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연출·무대·미술 등 종합적인 요소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며 “소리를 들려주는 것으로는 모자라고 ‘소리를 보여주는’ 공연이어야 한다”고 했다.

이들 삼총사는 1973년 국립극장 남산 이전 개관 때부터 함께 마당놀이를 개척한 예술 동지다. 손진책은 “함께한 세월이 길어 눈빛만 봐도 원하는 걸 안다”며 “각자 생각한 것을 꺼내 놓으면 서로 욕하기 바쁘다. 서로 솔직할 수 있어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했다.

무대 디자인. 중앙 원형 공간에 있는 국립국악관현악단과 오케스트라를 무용수와 창극 배우들이 둘러싼 형태다. [사진 국립극장]

손진책은 연출을 맡았다. 무대·영상·조명·의상 등 ‘소리의 시각화’를 위한 모든 장치가 그의 손을 거친다. “600년 전 노래가 동시대 관객에게도 와 닿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그걸 위해서 “소리와 음악을 신선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해서 고안 중”이라고 했다.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등 주요 캐릭터가 조선 시대 의상을 입지 않는 것이 한 예다. 통념을 깨기 위해 현대적인 의상을 기본으로 했고, 기존 음악극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무대 효과를 풍성하게 곁들였다.

손진책은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식 총감독을 맡았고 1988년 백상예술대상 대상·작품상·연출상을 비롯해 2003년 제13회 이해랑 연극상, 2005년 제1회 허규예술상, 2011년 제22회 고운문화상 등을 받은 한국 연극계의 대부다. 안무를 맡은 국수호는 60년 경력의 춤꾼이다. 국립무용단 1호 남성 무용수를 시작으로 국립무용단 단장, 국수호디딤무용단 이사장을 지냈다.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02년 한일 월드컵 등 굵직한 행사에서 개막식 안무를 도맡아온 그에게도 이번 공연은 어려운 숙제다.

국수호는 “대형 오케스트라가 중간에 있는 무대라 무용수들의 동선과 대형을 짜기가 쉽지 않았다”면서 “무용극이 아니기 때문에 무용수만 돋보여서는 안 되고, 모든 파트가 어우러져야 한다. 화합과 사랑을 모토로 생각하고 안무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월인천강지곡’에서 국립무용단은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표현한다. 30여 명의 국립무용단원이 배우의 분신이 돼 우아하면서도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관객의 몰입을 높인다. 손진책은 “천 개의 달이 비추는 것 같은 화엄(華嚴) 세계를 만들겠다는 세종의 다짐이 월인천강지곡에 담겨 있다”며 “군주로서의 외로움, 지아비로서의 순정, 애민 정신, 통치 이념과 같은 세종의 정신세계가 모두 담긴 대작”이라고 설명했다.

작사에도 공을 들였다. 시인 박해진이 원문을 현대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을 맡았다. ‘도솔래의’는 ‘흰 코끼리 타고 오신 세존’으로, ‘쌍림열반’은 ‘세존, 열반에 들다’로 고치고 에필로그와 프롤로그를 넣어 작품의 메시지를 강조했다. 박범훈은 “노래로 부를 수 있을 만큼 쉽고 직관적이면서 철학적인 메시지도 담을 수 있도록 작사·편곡에 많은 시간을 썼다”고 했다.

‘국악 아이돌’ 김준수가 세존(석가모니), 국립창극단 간판스타 이소연이 소헌왕후 역을 맡았다. 세종대왕 역의 김수인을 비롯해 민은경·유태평양 등 창극단 주역 배우들이 무대에 오른다. 공연은 29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볼 수 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