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바이오’ 우리가 간다… 그룹 후계자들 전진 배치
글로벌 시장에선 의약품 부족 현상이 심화하고, 분야를 가리지 않는 미·중 간 패권 다툼이 치열해지면서 바이오산업의 가치도 커졌다. 26일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제약·바이오산업 분야 세계시장 규모는 2020년 11조3183억 달러(약 1경4747조원)에서 연평균 6.1%씩 증가해 2026년 16조1919억 달러(약 2경1098조원)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의 미래 먹거리를 결정할 후계자들은 특히 인수·합병(M&A)이나 지분 투자가 활발한 바이오사업에서 인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전략적 판단을 내려야 하는 자리에 섰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지정학적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의약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생산기지를 찾았고, 이 수요에 맞춰 국내 대기업들은 제약·바이오 업체를 M&A하는 방식으로 CDMO(위탁개발생산) 사업에 뛰어들어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글로벌 CDMO 시장 규모는 2020년 113억8000만 달러(14조88억원)로 연평균 10% 가까이 성장해 2026년에는 203억1000만 달러(25조16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롯데그룹은 최근 임원인사를 통해 신동빈 회장의 장남 신유열 전무를 바이오 계열사에 투입했다. 신 전무는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과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을 겸임한다. 롯데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신 전무는 M&A, JV(조인트벤쳐) 설립 등을 검토하며 글로벌 경쟁력 확보와 신성장 전략 수립을 담당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 출범한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미국 제약회사 BMS가 보유한 시러큐스 공장을 인수하며 의약품 CDMO 사업을 시작했다. 올해 3분기까지 누적 1728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순이익은 487억원을 기록했다. 4분기 매출을 합산하면 연 매출 2000억원을 거뜬히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대부분의 매출이 미국에서 나오고 있지만 국내서도 사업 기반을 다지기 위해 인천 송도에 ‘메가 바이오 플랜트’를 구축하고 있다. 송도 바이오 클러스터에 입주해 바이오 벤처와의 동반 성장을 이뤄내고 바이오산업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활성화한다는 포부다. 우선 내년 1분기 1공장 착공에 돌입해 2027년 본격 생산에 나서고, 2034년까지 3개의 공장을 준공하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SK그룹은 최근 인사를 통해 최태원 회장의 장녀인 최윤정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을 승진시켰다. 그는 2017년 SK바이오팜 경영전략실 전략팀에 선임 매니저(대리급)로 입사한 지 6년 만에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최 본부장이 이끄는 사업개발본부는 이번에 신설된 조직으로, 기존 사업개발팀과 전략투자팀을 통합했다. 최 본부장은 미국 시카고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시카고대 뇌과학연구소 연구원과 베인앤드컴퍼니 컨설턴트 등을 거친 ‘바이오 전문가’다.
SK바이오팜은 연구개발(R&D)에 매출 절반가량을 투입하며 국내 개발에 성공한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를 뛰어넘을 제품을 발굴하고 있다. 표적단백질분해(TPD), 방사성의약품치료제(RPT), 세포·유전자치료제(CGT)를 신성장 동력으로 삼아 R&D를 강화하고 있다. SK그룹의 백신 제조사인 SK바이오사이언스도 코로나19 팬더믹을 계기로 도약을 이뤄내면서 바이오 사업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유통망을 갖춘 대기업들도 일찌감치 바이오 분야에 뛰어들며 성과를 내고 있다. CJ그룹의 CJ바이오사이언스는 신약 후보 물질 발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2021년 마이크로바이옴 전문 바이오기업인 천랩을 인수한 CJ바이오사이언스는 면역항암제, 장질환 치료제, 신경질환 치료제 등 15개의 파이프라인(신약후보물질)을 확보하고 있다. 2025년까지 파이프라인 10개를 확장하고, 기술수출 2건을 성사시키겠다는 목표다.
국내 대기업의 바이오 진출 성공 사례로 꼽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국내 제약바이오기업 최초로 매출 3조원을 돌파하며 그룹 내 주요 계열사로 자리매김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32년까지 총 7조5000억원을 투자해 인천 송도에 제5~8공장이 들어서는 제2바이오캠퍼스를 완공할 계획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1년 4월 출범한 이후 CDMO 분야에서 본격 성과를 내며 6년여 만에 처음으로 흑자를 냈다.
대기업들이 바이오 사업을 키우는 과정에서 인력 유출도 큰 이슈다. 송도에 자리 잡은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곧 입주할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의약품 CDMO 분야에서 경쟁하며 인재·기술 확보를 위해 대립하고 있다.
전문 인력이 부족한 환경에서 대기업의 바이오 진출이 성공할 것이란 보장도 없다.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는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조 단위의 비용과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소위 ‘대박’을 칠 확률이 높지 않은 분야인 만큼 총수 후계자들이 뛰어들어 실패한다고 해도 후계자로서 입지가 흔들리지 않을 것이란 해석도 있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바이오 사업은 장기간에 걸친 투자와 깊은 이해도가 필요해 바로 수익을 낼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라며 “후계자들은 성과로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게 된 만큼 성과를 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반도체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까지 민·관이 힘을 모았듯 우리 기업들의 성장 발판이 될 바이오 분야도 육성 노력이 시작됐다. 정부는 반도체·디스플레이·이차전지 산업에 더해 바이오산업을 국가첨단전략산업으로 추가하는 방안을 내놨다. 2027년까지 4개 첨단산업에 550조원 이상의 투자가 이뤄지도록 하고 인허가 등 규제 혁파와 맞춤형 지원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한국바이오협회 관계자는 “오랜 기간 투자가 필요한 바이오산업의 특성상 R&D 투자, 인력 양성, 세제 지원 등을 법·제도적으로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며 “세계 각국이 육성에 나선 만큼 우리나라도 바이오 생태계를 안정적으로 조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성훈 기자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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