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3시간, 내 손으로 돈 벌어 손주 용돈 주니 살맛 납니다"
[월간 옥이네]
▲ 육정심(왼쪽)씨와 이순자(오른쪽)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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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7만원 일자리, 보행기 끌고 나온 노인... "약값은 벌어야지" https://omn.kr/26v3f
오전 8시 30분, 청성초등학교 돌봄교실에 하나, 둘 노인들이 모인다. 9시부터 업무 시작이지만 모두가 약속한 듯 일찍 일터에 나온다. 주말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도, 차가운 바람에 굳은 몸을 녹이기도 하며 일할 준비를 하는 이들에게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청성면에서 동료와 함께하는 지금이 행복하다는 이순자(78)·육정심(73)씨 이야기를 들어봤다.
나를 보람되게 만드는 '내 일'
햇빛이 들어앉은 돌봄교실, 이순자·육정심씨가 바쁘게 움직인다. 이들이 지나간 자리에 물건이 반듯하게 놓인다. 교실뿐만 아니라 입구 신발 정리부터 화장실까지 어디를 가나 흐트러진 것이 없다. 교실 구석구석 이들의 손길이 닿을수록 어린이들을 맞이할 준비에 끝이 보인다.
이순자·육정심씨는 하루 3시간씩 한 달에 10번, 방과 후 어린이들이 사용할 돌봄교실을 정리·정돈한다. 두 사람은 올해 아이사랑도우미로 처음 만났다. 청성초등학교 돌봄교실을 2년째 관리하는 이순자씨는 육정심씨가 적응할 수 있도록 살뜰히 도왔다. 적응하는 데 이순자씨의 유쾌한 성격이 한몫하기도 했지만 아이사랑도우미를 시작한 계기가 비슷해 빨리 가까워졌다.
옥천이 고향인 이들이 본격적으로 경제 활동을 시작한 것은 40대. 자녀를 어느 정도 키우고 나니 집에만 있을 수 없어 들판으로, 직장으로 나섰다.
"청산면에 있는 만두공장을 20년 다녔어요. 정년퇴직하고 지금은 국민연금 받아요. 마을에서 국민연금 받는 여성이 거의 없을 거예요. 그 시절 회사 다니는 여성이 드물었거든요. 특히 시골에서는요. 그러니 국민연금을 받는다는 게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요." (육정심씨)
비슷한 나이의 이순자씨는 들판으로 갔다. 모두가 바쁜 농번기에 이웃이 요청한 나락베기가 그 시작이었다. 농사 경험이 없어 처음은 어색했지만 한 번이 두 번 되고 열 번이 돼 20년 넘게 이어졌다.
"나같이 농사 경험이 없는 사람도 부를 만큼 정말 바빴죠. 일 배운 게 그때 처음이었어요. 처음 하는 일이 서툴러서 방해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시간이 해결해 주더라고요. 능숙해지는 내 모습이 뿌듯했어요." (이순자씨)
집안일 하랴, 바깥일 하랴 정신없이 바빴지만 '내 일'은 나를 보람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보람을 느낄 일은 줄었다.
"정년퇴직하고 집에만 있으려니 몸도 마음도 갑갑하더라고요. 가만히 있으니 무기력해져서 마을 봉사활동을 시작했어요. 그러다 이장님이 노인일자리가 있는데 해보지 않겠냐며 알려주셨죠. 작년에 청성면 다목적회관에서 어린이와 청소년 돌봄 공간을 정돈하는 일을 했어요. 규칙적으로 몸을 움직이니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것 같아 좋더라고요." (육정심씨)
아침 5시에 하루를 시작하는 삶의 습관이 몸속 깊숙이 배어있다. 그렇게 일의 흔적은 지금까지 몸에 남아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은 하루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삶의 활기를 찾기 위해 다시 일을 찾았다.
"나이가 드니까 몸이 예전 같지 않아요. 제가 배운 일은 농사고 마을에서는 농사가 아니면 다른 일을 찾기 어려워요. 그러니 몸이 아프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죠. 그런데 마을에 소문이 돌더라고요. 노인일자리가 있다고. 이웃한테 물어물어 복지관에서 신청한 것이 벌써 5년 전이네요. 주변에서는 이제 쉬라고 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활력이 돼요." (이순자씨)
▲ 옥천 청성초등학교 돌봄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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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정심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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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자·육정심씨는 아이사랑도우미에 참여한 지 각각 5년, 2년이 됐다. 노인일자리사업은 매년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 때문에 겨울이 오면 내년에 일을 할 수 있을지, 원하는 직무에 배정받을 수 있을지를 걱정한다. 이순자씨는 운 좋게 2년째 같은 곳에서 근무했지만 내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가능하면 한 곳에서 오래 일하고 싶어요. 매년 어디로 갈지 모르는 것이 불안해요. 또 손에 익힌 일을 계속하는 게 편하고요. 2년째 돌봄교실에 배정된 것은 운이 좋았어요."
예측할 수 없어서 운에 기댈 수밖에 없는 노인일자리사업이지만 육정심씨가 조심스럽게 추론한다.
"신청할 때 경력을 묻더라고요. 처음인지, 어디서 얼마나 활동했었는지를요. 제 생각인데 경험이 중요한 것 같아요. 경험이 많을수록 빨리 일에 적응할 수 있잖아요. 언니는 운이라고 말했지만 경력을 잘 쌓아온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올해 경험이 내년에 좋은 결과로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아이사랑도우미를 지속하기 위해 경력을 쌓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아쉽다. 20년 넘게 쌓아온 경력이 노인일자리사업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령이 된 두 사람이 옛날에 했던 일을 다시 시작할 순 없어도 경력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가 생기길 바란다.
"제가 살고 있는 장수리는 70세 이상 된 노인 대부분이 노인일자리사업에 참여해요. 사람이 많이 참여할수록 다양한 일자리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이 나이에 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지만 오랜 경력이 조금도 쓰이지 못할 때 허탈하기도 해요. 사람마다 가진 기술이 있을 텐데, 관련된 일자리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순자씨)
두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근무지와 집과의 거리. 현재 집에서 돌봄교실까지 이순자씨는 오토바이로, 육정심씨는 버스로 10분이 소요된다. 이들은 근무지가 가까워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고민을 말했다.
"버스로 10분, 걸어서 30분이면 집에 가요. 저처럼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사람은 어딜가나 가까운 곳이 좋아요. 교통수단이 예전보다 좋아졌다고 해도 면 지역은 버스가 자주 오지 않으니까요. 아이사랑도우미도 먼 곳으로 배정됐다면 고민이 많았을 거예요." (육정심씨)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이순자씨도 걱정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얼마 전 남편이 운전면허증을 반납했어요. 차가 있다 없으니 어딜 못 가겠다고 불편해해요. 저도 지금은 오토바이를 타지만 언젠가 정리할 날이 올 텐데 걱정돼요. 오토바이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출·퇴근할 수 있는 거리였으면 좋겠어요."
몸만 건강하다면 80세까지 일하고 싶다는 두 사람. 오래 일하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고민도 깊어진다.
▲ 이순자씨 |
ⓒ 월간 옥이네 |
아이사랑도우미로 한 달 일해 버는 돈 27만 원은 대부분 손자, 손녀에게 주는 용돈으로 쓴다. 내 손으로 번 돈으로 용돈을 주는 보람이 삶의 활력이 된다.
"가족에게 보탬이 되는 일은 아무리 해도 모자란 것 같아요. 예전에 자식들한테 했던 것처럼 손자, 손녀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이 커요. 용돈을 주거나 학교 등록금에 보태라고 주죠. 많은 돈은 아니지만 제가 벌어서 주는 게 뿌듯해요. 이것 때문에 나이를 먹어서도 일하고 싶어요." (육정심씨)
이순자씨도 이에 동의하며 일이 자신에게 어떤 것인지 이야기했다.
"어렸을 때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했고 하고 싶은 일도 참았어야 했어요. 여성이란 이유로 그랬던 시절이 있었어요. 40대에 일을 처음 배우면서 '내가 할 수 있을까?' 두려움이 많았어요. 배우면 다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오토바이를 배웠죠. 별것 아니더라고요(웃음). 일은 저에게 다음을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줬어요. 비록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줄었지만 가만히 있고 싶지는 않아요."
일로 통해 얻은 경험은 새로운 자극이 된다. 이는 또 다른 관점을 갖게 하고 경험으로 이어진다. 이렇듯 일은 두 사람에게 삶의 기반이자 환기점이다. 아이사랑도우미 또한 노년기에 맞은 활력인 셈이다. '일하는 노년'을 맞이한 이들이 바라는 것은 '계속 경험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어요.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도 계속 일하고 싶은 걸 보면 몸에 밴 것 같아요. 앞으로 없어질 것 같지 않아요(웃음). 젊었을 때는 가족을 위해 살았는데 이제는 나를 위해 살고 싶어요. 특별한 것은 없어요. 내가 하고 싶은 일 하고, 내가 번 돈 즐겁게 쓰는 게 전부예요. 아이사랑도우미로 2년째 이뤄가고 있으니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육정심씨)
이순자씨는 30년 넘게 탄 오토바이로 오래전 깨달은 것이 있다. 경험은 일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동료를 통해서 얻기도 한다는 것. 그는 경험을 나누는 즐거움을 동료들과 함께하고 싶다.
▲ 교실뿐만 아니라 입구 신발 정리부터 화장실까지 어디를 가나 흐트러진 것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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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옥이네 통권 78호(2023년 12월호)
글·사진 김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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