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미르재단 설립 행동대장이 경제부총리라니

최기원 2023. 12. 26. 19:2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주도적으로 10개 재벌에게 압력 행사, 500억원 규모 재단 일주일만에 만들어

[최기원 기자]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5일 오전 서울 중구 서민금융진흥원 대교육장에서 지명 소감을 발표하는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 권우성
 
최상목 경제부총리 후보자는 '수재 공무원'으로 정평이 나 있는 사람이다. 서울대 법대를 수석 졸업하고 재학 중 행시에 합격해 경제부처의 금융과 거시경제를 다루는 요직 중의 요직들을 두루 거쳤다. 코넬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도 파견근무를 했으며 이명박 정부에서는 '강만수의 남자'로 글로벌 금융위기 대처를 실무적으로 주도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관련 인사라는 결정적인 결격 사유가 있다. 이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수준의 관련성이 아니다. 재능이 엉뚱한 방향으로 쓰이는 것만큼 우려되는 일도 없는 만큼, 이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화까지 내면서 미르재단 출연 독촉한 최상목

아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1심 판결문의 일부다. 
 
미르재단에 대한 설립 및 출연 과정은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실에서 주도하였다. 경제금융비서관 최상목은 2015. 10. 21.부터 같은 달 24.까지 4차례에 걸쳐서 미르재단 설립을 위한 회의를 주재하였고, 2015. 10. 23.자 회의에서는 전경련 사회본부장 이용우에게 기업들의 출연 의사를 다 확인하였는지 물어보고, 아직 덜 되었다는 이용우의 답변에 "아직까지 출연금 약정서를 내지 않은 기업이 있냐. 누군데 아직도 안 내냐, 그 명단을 달라"고 화를 내기도 하였다(증 제1931호, 이용우 녹취서 제5쪽).

판결문에서 경제금융비서관 최상목은 '미르재단 설립'을 위한 회의를 4차례에 걸쳐 주도한다. 세 번째 회의에서는 출연금 약정서를 안 낸 기업 명단을 달라고 화까지 낸다. 이것은 전경련 사회본부장 이용우씨의 증언에 의해 뒷받침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1심 판결문에 따르면 미르재단 설립을 위한 청와대 1차 회의 결과를 정리한 문건에 출연한 9개 기업의 명단과 분담금 액수가 적혀 있었다. 그 9개 기업은 경제금융비서관실 선임행정관 방기선(현 국무조정실장)이 최상목 후보자를 통해 들었다고 진술한다. 모두 판결문에서 증거를 통해 인정된 사실들이다. 

 
 서울중앙지법 2018. 4. 6 선고 2017고합364-1 판결 (박근혜 전 대통령 1심) p194
ⓒ 서울중앙지법
 
한편 갑자기 출연 대상으로 추가된 롯데를 비롯해, 출연 대상 기업 지정이나 출연금 규모의 증액 역시 당시 경제수석 안종범과 최상목 등 청와대 관계자의 지시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 판결문의 지적이다.
 
 서울중앙지법 2018. 4. 6 선고 2017고합364-1 판결 (박근혜 전 대통령 1심) p196
ⓒ 서울중앙지법
 
판결문에 나온 최상목 후보자의 행적은 단순히 명령을 받아 이행한 것 이상으로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면이 잘 드러난다. 그는 전경련에 재단 설립을 지시한 당사자였다. 단 일주일 만에 300억 원 규모의 재단을 만들라고 지시했고, 돈은 전경련이 모으지만 그 재단 사업은 정부가 주도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서울중앙지법 2018. 2. 13 선고 2016고1202-1등 판결 (최서원, 안종범, 신동빈1심) p137
ⓒ 서울중앙지법
 
경제수석 안종범에 대한 판결문에서 최상목은 전경련 사무부총장 이용우가 직원파견을 거부하자 전경련 이승철 부회장에게 이용우가 뻣뻣하다고 말해서 이용우가 미르재단에 사과하게 만들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2심 판결문에서는 최상목이 돈을 내지 않은 기업에 화를 냈고 기업들은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출연금을 300억 원에서 500억 원으로 증액한 것에 불만을 가졌다는 대목도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2018. 2. 13 선고 2016고1202-1등 판결 (최서원, 안종범, 신동빈1심) p138
ⓒ 서울중앙지법
 
 
 서울고법 2018. 8. 24 선고 2018노1087 판결 (박근혜 전 대통령 2심) p114
ⓒ 서울고법
 
이처럼 당시 박근혜 청와대의 경제금융비서관이었던 최상목은 500억 원 규모의 미르재단을 일주일 만에 만들기 위해 재벌들의 주머니를 쥐어짜는 행동대장 역할을 했다. 판결문에 적시된 이러한 행적에 비추어 보면, 그가 당시 박영수 특검에 의해 기소되지 않은 것이 도리어 신기할 지경이다.

국정농단 국조특위에서의 위증 의혹

문제는 또 있다. 최상목은 2016년 12월 5일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진상규명 국조특위에 출석해 본인의 미르재단 설립에 대해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진술을 한다. 미르재단을 설립하고 기업들에 분배금을 임의로 정했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답변한다. 단지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실무절차를 논의하는 회의였을 뿐이라고 했다.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진상규명 국조특위 조사록 p114
ⓒ 국회
 

출연금을 약정하지 않은 기업에 모금을 독촉한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없다고 답변한다. 롯데도 출연기금에 포함하라고 전경련에 지시한 바 없다고 단언한다.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진상규명 국조특위 조사록 p114
ⓒ 국회
 

앞서 살펴봤듯이 최상목의 이러한 진술은 판결문의 서술과 완벽히 배치된다. 미르재단 설립을 위한 청와대 회의의 주재자는 최상목 후보자였다. 회의 문건에 각 기업들의 분담금이 적혀 있었고, 최상목은 기업들이 돈을 안 낸다고 화까지 냈다. 최상목이 회의를 소집하지 않았다면 미르재단도 없었다. 

판결문에 인정된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최상목 후보자는 국정농단 국조특위에서 위증을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위증죄의 공소시효 7년이 참으로 신기하게도 불과 2주 전에 도과하는 바람에 법적 조치를 취하기에는 난망하지만, 공직자로서 위증의 책임 자체를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촛불을 들었나

특검의 공소장 및 판결문에 따르면 박근혜가 안종범에게 한 지시는 '서둘러 재단 만들어라'였다. 박근혜의 지시를 받은 안종범은 최상목에게 '300억 규모의 문화재단을 즉시 설립하라'고 지시하며 재단의 규모를 추가한다. 여기에 최상목은 '300억 규모의 문화재단을 만들고 출연 기업을 9개로 해라'며 전경련에 구체적인 지시와 함께 출연기업을 정해줬다. 

 
 서울중앙지법 2018. 4. 6 선고 2017고합364-1 판결 (박근혜 전 대통령 1심) 일부
ⓒ 서울중앙지법
 
최상목이 설령 미르재단이 이른바 '최서원(최순실)의 놀이터'였다는 사실을 몰랐다 하더라도 문제가 해소될 일은 아니다. 그가 미르재단 설립 업무가 부적절하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맹렬하게 밀어붙여 성공리에 수행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는 '정부의 사업을 하지만 기업들이 돈을 대는 재단'이라는 구상에 당연한 듯이 찬동하고 기업들이 돈을 내지 않는 데 화를 내면서까지 일주일 만에 500억 원이라는 재단을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비틀린 인식에 대한 것이다.

박근혜 판결문에서 재벌들은 이렇게 말한다. 한화그룹 회장 김승연은 "회사에 치명적인 손해가 발생하는 것이 아닌 이상 호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재계의 현실"이라 했다. 한진그룹 조양호는 "경제수석이 하는 말을 기업들이 거부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전경련 전무 박찬호는 "경제수석실은 기업들에 하늘 같은 존재", CJ그룹 손경식은 "CJ만 내지 않으면 이뻐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대기업들은 안전 보장과 이익 추구를 위해 청와대와의 관계는 필수적이었고, 최상목은 미르재단 설립에 이러한 사정을 이용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무리한 일을 일주일도 걸리지 않고 해치울 수 있을 것인가? 비록 뇌물을 좁게 인정하는 법리 때문에 대가성이 인정되지는 않았지만, 미르재단은 최서원의 사익 추구의 장이었고 삼성은 '이재용 승계'라는 이익을 챙겼다. 정경유착과 권력형 비리가 발호하는 토양에는 이러한 '영혼 없이 구는' 공무원의 존재가 필수불가결하다.  

지난 11월 24일 윤석열 대통령은 파리의 한 식당에서 재벌 총수들과 술자리를 벌였다. 엑스포 개최지가 결정되는 총회를 나흘 앞둔 때였다. 지난 인사청문회에서 파리 출장에 동행한 최상목 후보자는 이 술자리에 동석했는지 알려주기를 거부했다. 그로부터 2주 뒤인 12월 6일에는 부산 깡통시장에서 재벌회장들이 도열해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떡볶이를 시식했다.

국정농단 수사 검사가 대통령이 되어 국정농단 관계자를 경제부총리로 임명하는 역사의 아이러니 속에 청산되었어야 할 역사는 다시 반복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촛불을 들었나?

덧붙이는 글 | 필자는 국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