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그림 보며 행복한 순간 떠올려 보면 좋겠어요”

손영옥 2023. 12. 26.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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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가 실험미술 거장 이건용 작가와 함께 제정한 제2회 국민일보 아르브뤼미술상 대상의 영예를 안은 천민준(23)씨는 억세게 운이 좋다.

이 공모전은 자폐 등 신경다양성 신진 작가 발굴을 위한 것인데, 천씨는 본격적으로 미술을 시작한 지 1년여 만에 상을, 그것도 대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동행한 어머니 정희경씨도 "수상 소식이 믿기지 않았다. 이전까지는 펜으로 그리다가 캔버스에 붓으로 그린 것은 출품작이 처음이었는데"라며 감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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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아르브뤼미술상’ 대상 수상한 천민준씨를 만나다
천민준씨는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학창시절 꿈도 ‘그림 그리는 직업’이었다. 여러 현실의 벽을 넘고 제2회 아르브뤼미술상 대상을 수상한 천씨는 “제 그림을 보며 행복한 순간을 떠올려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한형 기자


국민일보가 실험미술 거장 이건용 작가와 함께 제정한 제2회 국민일보 아르브뤼미술상 대상의 영예를 안은 천민준(23)씨는 억세게 운이 좋다. 이 공모전은 자폐 등 신경다양성 신진 작가 발굴을 위한 것인데, 천씨는 본격적으로 미술을 시작한 지 1년여 만에 상을, 그것도 대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민일보 사옥에서 만난 천씨는 시종 상기된 표정을 지으며 수상의 기쁨을 드러냈다. 동행한 어머니 정희경씨도 “수상 소식이 믿기지 않았다. 이전까지는 펜으로 그리다가 캔버스에 붓으로 그린 것은 출품작이 처음이었는데…”라며 감격했다.

수상작은 북극에 사는 북극금과 펭귄을 소재로 한 아크릴화다. 여러 마리 펭귄과 곰이 똑같은 동작이 없다. 정형화되지 않은 발 모양, 날개 모양 등은 형태와 색이 달라서 형태의 변주에서 오는 리듬감, 색의 배합이 주는 즐거움이 넘쳐난다. 보색의 윤곽 색을 쓰는 것도 작품에 넘치는 기쁨을 증폭시킨다.

동물 그리기를 좋아하는 그는 작가 노트에 이렇게 썼다. “나는 바다 속 물고기, 숲 속 곤충, 꽃 위에 나비, 날개 짓 하는 새 등 동물을 그릴 때가 참 좋다. 이렇게 그리다 보면 어렸을 때 자주 갔던 동물원, 수족관, 잔뜩 물을 먹어 힘들었던 스노클링, 잠자기 전 엄마가 읽어 주던 동화책이 생각난다. 제 그림을 보며 저처럼 행복한 순간을 떠올려 봤으면 좋겠다”라고.

어머니 정씨는 “민준이는 어릴 때부터 A4용지 등 이면지에 틈만 나면 뭘 그렸다. 그리는 걸 좋아했다”고 기억했다. 그는 일반학교 특수반에서 초중등 시절을 보낸 뒤 고교 때 부모를 따라 독일에서 3년간 지낸 적이 있다. 어머니는 독일 시절 에피소드 한 토막을 이야기했다. 천씨가 18세가 되던 해였다.

“독일의 교육제도에 따라 아우스빌둥(직업교육) 상담을 갔습니다. 어떤 일을 하고 싶냐는 직업교육센터장의 질문에 민준이는 ‘그림 그리는 직업을 가지고 싶다’고 답했어요. 그때 직업교육센터장은 그림을 그려 돈 버는 것은 어려우니 그림은 취미로 하는 게 좋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가족과 귀국 한 뒤 지금 천씨는 그림을 그려 돈 버는 인생을 살고 있다. 올해 메가스터디교육 자회사에 장애인 고용으로 채용돼 하루 몇 시간씩 그리고 몇 개월에 한 점씩 그림을 제출하면 월급을 받는다. 이번 수상은 예술가로서의 독립적인 삶을 사는데 버팀목이 될 거라고 생각이 된다. 천씨는 지난해 3월 국내에서 고교를 졸업한 후 잠시 장애인 공공 일자리에 채용돼 상담일을 하다가 미술입시를 준비하면서 그 일을 그만 뒀다. 처음에는 취미로 그렸으나 재주를 눈여겨본 화실 선생님의 권유로 입시까지 준비하게 된 것이다.

천씨는 최근 서울 백석예술대학에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런데 어머니 정씨도 동반 합격했다. 모자가 함께 예술가의 꿈을 키우며 미대 동기생이 된 거라고 지레 생각했지만, 그건 장애인 가족의 척박한 현실을 몰라서 생긴 오해였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어머니 정씨가 늦깎이 미대생이 된 것은 순전히 예술가 아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서다. 사실 신경다양성을 가진 미대생의 경우 혹시라도 내 자식이 강의 내용을 놓칠까봐 강의실 밖 복도에서 어머니들이 서성거리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라고 한다. 정씨는 미대생 자격을 얻음으로써 강의실 안으로 당당히 들어간 케이스가 된 것이다. 미대 동기생이 되어서라도 예술가 아들의 꿈을 부축해주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에 뭉클해졌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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