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총선 불출마' 승부수…"차기 대선 직행 보인다" 해석도
26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취임한 한동훈 위원장의 일성은 “86 운동권 특권정치 청산”이었다.
한 위원장은 이날 오후 여의도 당사에서 취임식을 갖고 “더불어민주당의 폭주와 전제를 막는 데 용기를 내기로 결심했다”며 “다수당이 더욱 폭주해 이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망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전국위원회에서 96.4%의 찬성률로 비대위원장에 최종 임명됐는데 직후 취임사에서 민주당 운동권과 이재명 대표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한 위원장은 “민주당을 숙주 삼아 수십년간 386(30대·80년대 학번·60년대생)이 486, 586, 686이 되도록 대대손손 국민 위에 군림하고 가르치려 드는 운동권 특권 정치를 청산해야 한다”며 “공포는 반응이고, 용기는 결심이다. ‘이재명 민주당’의 폭주와 전제를 막지 못할 거라고 상식적인 사람은 공포를 느낄 만하지만, 용기를 내기로 결심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저는 용기를 내기로 결심했다. 그렇다면 헌신해야 한다”며 “용기와 헌신은 대한민국 영웅들이 어려움을 이겨낸 무기였다. 우리가 그 무기를 다시 들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167석 거야(巨野)를 상대해야 하는 당 상황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인천상륙작전 참전군인에 비견하며 절박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한 위원장은 또 “민주당은 대표가 일주일에 서너번씩 중대범죄로 형사재판 받는 초현실적인 상황인데도 왜 국민의힘이 압도하지 못하는지 함께 냉정하게 반성하자”며 “우리 당은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기로 약속하는 분만 공천할 것이고, 약속을 나중에 어기는 분은 즉시 출당하겠다. 우리는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과 달라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한 위원장의 이같은 발언은 ‘검사 대 피의자’ 구도를 극대화하기 위한 측면이 강하다. 총선 기간 사법리스크로 재판을 받을 이재명 대표를 겨냥하며 민주당보다 도덕적 우위라는 점을 내세운 것이다. 당 지도부 관계자는 “통합을 강조하는 일반적인 취임사와 달리 주적(主敵)을 선명하게 명시해 지도부 공백의 내부 혼란을 수습하고, 총선 전의를 높이려는 의도”라고 평가했다.
한 위원장은 정치적 승부수도 띄웠다. 그는 “저는 지역구에 출마하지 않고 비례대표로도 출마하지 않겠다”며 “오직 동료시민과 나라의 미래만 생각하면서 승리를 위해서 용기 있게 헌신하겠다”고 했다. “비대위원장으로 정치를 시작하면서, 저부터 ‘선민후사’(先民後私)를 실천하겠다”면서다. 일반적으로 총선을 앞둔 비대위원장은 전략적 요충지에 출마하거나 비례대표로 나서 선거를 지휘하는 데 이러한 관행과 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해 당내에서는 “한 위원장이 선제적으로 총선 불출마를 던지면서 특권을 내려놓고 사생결단식으로 싸우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비대위원장직을 유지하며 출마까지 병행할 경우, 그때그때 선거 상황에 대처할 수 없기 때문에 배지를 포기하면서 ‘배수진’을 쳤다는 것이다. 여기에 ‘쇄신 공천’을 위해서는 영남권-중진 등의 불출마를 끌어내야 하는데 본인이 선제적으로 불출마 카드를 던지면서 압박의 명분을 쌓았다는 관측도 있다. 789(70~90년대생)세대를 공천하기 위한 일종의 포석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다른 해석도 있다. 여권 관계자는 “총선 결과에 따른 영향을 최소화하고, 총선 후 휴식기를 가진 뒤 차기 대선에 직행하겠다는 의미 아니겠냐”라고 말했다.
취임사 이후엔 취재진과의 일문일답이 있었다. 한 위원장은 28일 민주당이 강행 처리할 ‘김건희 특검법’과 관련해 “특검은 총선용 악법이라는 입장을 저는 충분히 가진 사람”이라며 “어떻게 당에서 대응할지는 원내대표의 보고를 받고 같이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그는 지난 19일 법무부 장관 신분으로 국회를 찾았을 때는 “무엇보다 다음 총선에서 민주당이 원하는 선전·선동을 하기 좋은 시점을 특정해 만들어진 악법”이라며 정의당의 특검 추천권 등 독소조항을 나열했었다.
김건희 특검법과 관련해 25일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정부는 고위 당정대 회의를 통해 ‘특검 불가론’에 쐐기를 박았다. 윤재옥 원내대표도 “총선용으로 기획된 국민주권 교란용 악법”(26일 원내대책회의)이라고 재차 확인했다. ‘한동훈 비대위’는 비대위원 인선과 전국위 추인 절차를 걸쳐야 29일 공식 출범하기에 기존 여권 지도부 입장과 궤를 같이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일각에선 “지도부가 총대를 메면서 특검법 반대에 대한 한 위원장의 정치적 부담이 줄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에 “한 위원장이 ‘독소조항 제거 및 총선 후 수사’ 등 결이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지가 반감했다”는 관측도 있다.
한 위원장은 수직적 당정관계 관련한 우려에 대해서는 “여당과 대통령실은 동반자적 관계이지 누가 누구를 누르고 막는 사극에 나올법한 궁중 암투는 끼어들 자리가 없다”며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하면 되는 것이고, 대통령은 대통령의 할 일을 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 위원장은 이날 첫 인선으로 초선 김형동 의원(경북 안동-예천)을 비대위원장 비서실장에 임명했다. 김 의원은 48세로 한 위원장보다 2살 적은데, 서울대(언론정보학과)-사법고시(연수원 35기) 출신이라는 점이 한 위원장과 같다. 여권 관계자는 “김 의원이 지난해 9월 이민청 설립을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을 대표 발의하면서 한 위원장과 대화를 많이 한 것이 인선의 배경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김 의원은 배우자가 중국 출신(조선족)으로 최근 한국 국적을 취득했는데 이때문에 이민청 이슈에 관심이 크다고 한다.
김효성·전민구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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