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원도 파업도 원치 않는다"…'캐스팅 보트' 전공의 설득 나선 정부
“의대 정원 늘리는 것에 찬성하는 건 아니지만 파업하는 상황을 원하지도 않죠.”
서울 한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3년 차 전공의인 A씨는 26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A씨는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대해서 “그런다고 필수 의료 과에 사람이 많아질지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의사 총파업에 동의하느냐고 묻자 "그런 상황을 원치 않는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파업한다고 환자가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한 명이 파업하면 다른 사람이 그 일을 대신 해야 한다"면서다.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해 총파업 가능성도 내비치고 있는 가운데 파업의 캐스팅 보트라고 할 수 있는 전공의들의 여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도 전공의 설득에 공을 들인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26일 오후 7시부터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전공의 약 100명과 필수 의료 대책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온ㆍ오프라인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에는 각 수련병원 전공의 15명이 자리했고 온라인 화상 회의로도 수십명이 연결됐다. 의대 증원 이슈를 두고 의협과 정부 간 대립이 극심한 상황에서 직접 전공의들과 마주 앉은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사 파업에 전공의들 참여 여부가 관건이라는 것은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니냐”며 “전공의 대상으로 필수 의료 위기의 심각성과 의사 확충 정책 필요성을 직접 설명한 적이 없는 만큼 이번 계기에 제대로 설명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지난주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지역의사제와공공 의대 도입 등 의료계가 반대해온 법안들이 통과된 직후이기도 하다. 당시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에서는 성명을 내고 "기존 의과대학조차 교육의 질과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신규 의대 설립만 강행하는 것은 포퓰리즘과 치적 쌓기에 불과하다"고 반발했다.
박 제2차관은 이날 간담회 모두 발언에서 “지금이 필수의료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의대 정원 확대 등이 포함된 의사인력 확충의 중요성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정의로운 보상체계’‘전공의 수련제도 개편’‘의료사고 안전망’ 등 전공의를 포함해 의료계가 요구해 온 정책들도 함께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과 기피의 주된 이유로 지목되는 의료사고 소송에 대해서 “불시에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환자와 의사가 형사 법정에서 만나기보다는 서로 존중하며, 충분한 소통과 중재를 통해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체계로 전환하겠다”고 설명했다.
전공의들이 의사 파업의 캐스팅보트로 여겨지는 건 2020년 문재인 정부 때의 경험 때문이다. 당시에도 의대 정원 확대를 필두로 지역의사제와 공공 의대 설립 등을 추진했지만 약 1만5000명 전공의 중 80%가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고 의대생들의 국시 거부, 의대 교수들의 호응이 이어졌다. 이들이 주로 근무하던 전국 대학 병원들이 마비되며 의대 정원 확대가 중단됐다. 이번에도 비슷한 규모의 총파업이 벌어진다면 2020년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다만 전공의들이 그때와 같은 길을 걸을지는 불투명하다. 전공의 A씨는 “중요한 문제인 걸 알지만 병원 생활이 바빠서 사실 시사에 큰 관심을 못 가지고 있다. 동료들과도 (의대 정원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다”라고 말했다. 한 대학병원 전공의협회장인 B씨는 “(파업과 관련해) 제대로 논의가 되지 않아서 전공의들의 의견이 하나로 확실하게 모였다는 느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B씨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방안들이 의료 시스템 해결과는 겉도는 느낌이 드는데 무조건 진행을 하려고 하는 게 사기를 많이 떨어뜨리는 것은 사실"이라며 "단체 행동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떠나 지금 상황이 전공의들에게 정말 혼란스러울 것”이라고도 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하는 국민 여론은 압도적이다. 지난 20일 한국소비자연맹 발표에 따르면 국민 75%는 의사 인력 확충을 위해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17일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공개한 의사 부족 실태 관련 여론조사에서도 국민 89.3%가 의대 증원에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이날 간담회 직후인 오는 30일에는 총회를 열 예정이다. 이 총회에서 파업이나 의료현안과 관련한 전공의들이 의견이 어떤 방향으로 모일지, 의료계와 정부는 주목하고 있다.
김나한 기자 kim.na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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