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적인 협곡 개편, 우리에겐 ‘베릴’이 있다”
“롤드컵 결승 보고 ‘1년 더’ 결심… 우승하려고 모여”
“메타 파악에 건희 역할 기대, 감독님도 납득”
‘데프트’ 김혁규가 5년 만에 KT 롤스터로 복귀했다. 그의 곁엔 2022년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트로피를 함께 들어 올린 ‘표식’ 홍창현, ‘베릴’ 조건희가 동행한다. 김혁규는 홍창현과 함께 팀에 가장 먼저 합류한 뒤 마지막 퍼즐로 조건희를 맞췄다. 7년 만에 소환사의 협곡에 대격변이 찾아오는 상황에서 조건희의 분석 능력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지난 22일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KT롤스터 연습실에서 김혁규를 만나 올 한해에 대한 회고, KT 롤스터에서 맞이할 새해, 앞으로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롤드컵을 마치고 어떻게 지냈나.
“최근 몇 년 동안 시즌이 끝나고 최대한 휴식을 취했었다. 올해는 (롤드컵 경기가) 끝나고 나서 개인적으로 충격이 커서 프로 생활을 그만하려고 했었다. 쉬는 동안 솔로랭크를 열심히 해봤는데 여전히 경쟁력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말한 경쟁력은 결국 롤드컵 우승을 할 수 있냐 없냐다. 그만한 능력이 남아있다고 생각해서 다시 해보자고 결심했다.”
-‘1년 더’를 언제 결심했는지.
“개인적으로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는데 롤드컵 결승전 경기를 보고 나서 동기부여가 됐다. 자극을 받아 내년에도 뛰겠다고 결심했다.”
-지난해 롤드컵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올해 T1이 우승을 차지하면서 한국이 2년 연속 자존심을 지켰다. T1의 활약과 평소 친분이 깊은 ‘케리아’ 류민석의 우승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좋은 쪽으로는 민석이를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어서 좋았다. 떨어지고 나면 우승하는 팀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려고 하지만, 어느 팀이 우승하든 열등감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작년에 T1을 상대로 우승했다 보니 올해는 열등감이 덜 느껴졌다. 시즌 중에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개인적으로 ‘쇼메이커’ 허수가 우승하는 걸 보고 싶었다. 올해 같이하면서 이기고 나서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못 본 거 같다. T1이 이기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책을 많이 했다.”
-이번 롤드컵 스위스 스테이지에서 조 추첨이 화제였다. 두 차례 한국팀과 내전을 했다. 당시 KT를 상대로 준비했던 전략이 게임 내에서 잘 적용됐다고 보나.
“개인적으로 롤드컵 메타를 잘 파악했다고 생각했다. 메타 파악을 잘했어도 선수가 소화하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 감코진 입장에서 연습할 시간이 길지 않고 내용이 좋지 않아 적극적으로 밀어줄 수 없던 부분이 아쉬웠을 것 같다. 결국 감코진, 선수들이 연습 경기(스크림)에서 확신을 못 줬기 때문에 이도 저도 아닌 밴픽이 나왔다. KT는 메타 픽을 하는 팀이 아닌, 단단하게 잘하는 팀이었다. 우리도 단단하게 잘하니까 예전에 잘했던 기억을 살려서 해보려고 했었다. 조 추첨이 나오고 나서 즉흥적으로 짰던 밴픽인데, 숙련도가 높지 않았던 게 아쉬웠다.”
-결국, 인 게임에서 적용이 잘 안 됐다고 평가했는지.
“확신을 두고 하는 게임과 그렇지 않은 것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같은 밴픽이어도 맞다고 확신이 드는 밴픽과 ‘이게 맞나’ 라는 의문을 가지고 플레이하는 것은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개인적으로는 확신하지 못해서 아쉬운 결과가 나왔던 거 같다.”
-이번 롤드컵 결과가 충격적이라는 표현을 했다. 돌이켜봤을 때 2022년과 2023년은 어떤 게 달랐던 것 같나.
“22년에는 많은 얘기를 통해서 어떤 결과가 나오던 이해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나는 바텀에서 루시안-나미를 하고 싶은데, 감코진에서 아닌 것 같다고 하면 픽을 버렸다. 결과가 안 좋게 나오더라도 픽을 버린 것에 대해서 이해가 됐다. 다만 이번에는 팀원, 감코진이 토론을 해도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았다. 대화를 통해서 누군가를 설득하고 생각을 좁혀야 하는데, ‘이해가 안 가지만 내가 양보할게’ 같은 상황이 있었다. 이런 의견의 차이는 롤드컵 기간에도 잘 좁혀지지 않았다.”
-소통이 잘 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작년에는 납득이 될 때까지 싸웠었다. 올해는 얘기하는 시간이 짧지는 않았는데 내가 충분한 믿음을 주지 못했던 게 이유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느끼기에 내가 믿음직스러워야 했는데, 확신을 주지 못했다.”
-스토브리그로 넘어가 보자. 내년이 김 선수의 ‘리얼 어게인 파이널리 라스트 댄스’라는 평가가 나온다. 일단 군대 문제가 가장 클 텐데, 말해줄 수 있는 내용이 있는지.
“원래 군대는 더 미룰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해외로 출국이 안 되는 것과 28세 넘어서 프로게이머를 한 선례가 없는 줄 알았다. 그러던 중 최근 스타크래프트 종목 선수가 대회 출전 목적으로 해외 출국을 허가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개인적으로 알아보며 (1년 더 프로 활동을 해도)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년에 또 계약하는 건 조금 힘들 것 같다. 프로 생활을 더 하게 된다면 군 생활을 마치고 나서 도전하게 될 것이다. 2년 전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경기를 했었다 보니 팬분들께 마지막이라는 얘기를 꺼내기가 개인적으로 꺼려진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은 안 하고 있다.”
-KT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큰 건 성취감이다. 사실 올해 성취감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잘했을 때나 한 단계 나아갈 때 성취감이 가장 큰 팀, 그리고 내가 제일 열심히 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생각했을 때 KT가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 강동훈 감독님이 나를 충분히 신뢰해주고, 열심히 하는 분위기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걸 알고 있어서 결정하게 됐다. 물론 ‘비디디’ 곽보성의 존재도 컸다. 개인적으로 롤에서 미드가 가장 중요한 라인이라고 생각한다. 미드가 단단한 팀을 가고 싶었다.”
-김 선수가 본 곽보성의 첫인상과 스타일은 어땠나.
“나는 항상 잘하는 미드라이너들과 함께 했었다. 밖에서 본 보성이는 잘하는 미드에 속해있는 선수다. 가리는 챔피언이 없고, 라인전도 잘하고, 게임을 잘 읽는 선수다. 게임 외적으로는 재밌고 옛날 킹존 드래곤X(현 DRX) 사람이라 그런지 ‘프레이’ 김종인의 기운이 있다. 광대 같은 방송인 텐션이 있다. 조건희와 보성이가 주로 재밌고, 홍창현은 얌전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전에 함께 호흡을 맞췄던 선수나 감코진들이 KT에 포진해있다. DRX 때 함께 했던 홍창현, 조건희와 김무성 코치를 다시 만났다. 같은 팀으로 모인 비하인드가 있나.
“처음 KT에서 제의를 받았을 때 가장 먼저 이야기를 나눈 건 창현이였다. 창현이에게 ‘같이 하고 싶다’라고 말을 했다. 그리고 팀과 이야기를 나눈 끝에 함께 합류하게 됐다. 마지막으로 내가 계약하러 갈 때 감독님께 건희 이야기를 꺼냈다. 다음 해에 게임이 굉장히 많이 변하는데 메타 파악이나 우리가 부족한 능력을 채우려면 건희가 꼭 필요할 거 같다고 생각해서다. 외부에서 비치는 건희에 대한 우려를 감독님과 충분히 이야기했고, 감독님이 건희와 직접 이야기하면서 믿을 수 있는 선수로 결론 내셨다. 건희의 의지가 가장 중요했는데, 돈은 상관없고 롤드컵에서 성적 낼 수 있는 팀이었으면 한다고 말했다더라. 멋있다고 생각했다.”
-킹존에서 함께했던 강 감독과 재회했다. 추억이 있을 것 같은데.
“일상적인 추억이 많다. 감독님이 휴가 때 항상 연습실에 계셔서 민석이와 주말마다 중국집에 가 짜장면을 먹었던 게 기억난다. 요새는 휴가 때 숙소에 남아서 연습하는 팀이 별로 없는데 좋은 추억으로 기억이 난다. 시즌 때는 기본기를 굉장히 강조하셨던 분이다. 기본을 안 지켜서 진 경기에 대해 굉장히 엄하셨고 연습 분위기를 잘 잡아주셨다.”
-올해 2군에서 ‘퍼펙트’ 이승민이 콜업됐는데.
“승민이는 급하게 콜업된 게 아니고 충분히 준비할 시간이 있었던 선수라 라인전 구도 등을 잘 잡는 게 보인다. 무엇보다 매일 발전하려는 의지가 크고 연습량도 정말 많아서 마음에 든다. 외적으로는 되게 어색해 보였는데 지금은 귀엽게 느껴진다.”
-현재 모인 선수단과 어떤 목표를 이루고 싶나.
“크게 보면 롤드컵을 우승하려고 모였다. 그 안에서 각자 세운 목표들을 성취해나가면 될 거 같다. 나 같은 경우에 개인 기량이 망가지지 않게 최대한 원거리 딜러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게 목표다. 시즌 중에는 전력이 강할 것으로 예상하는 T1, 젠지, 한화생명 사이에 최대한 빨리 끼는 게 목표다. 스프링 스플릿부터 강팀 축에 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7년 만에 패치를 통해 소환사의 협곡이 대대적으로 바뀐다. 어떤 구도로 흘러갈 것 같나.
“스크림을 통해 경험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솔로 라이너의 1대1 라인전 중요도가 크게 올라갔다. 정글러가 라인에 관여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최근 바텀에서는 원거리 서포터가 득세했는데 그런 부분을 견제하고자 맵에 개입할 수 있는 요소들을 많이 넣은 것 같다. 오브젝트 싸움에서는 유리한 지형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나눠봐야 하는 단계다.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이번 변화를 통해 블루-레드 사이드의 격차를 줄인다던데 실제 체감이 되는지.
“예전에는 블루 사이드가 주도권을 잡는 밴픽이 나오고 드래곤 싸움할 때도 진형 잡기가 좋았다. 지금은 확실히 블루 사이드에서 드래곤 싸움할 때 위치 선정, 진형 잡기가 어렵다고 느낀다. 밸런스를 잘 맞춘 것 같다. 또한 ‘선혈 포식자’가 없어지면서 정글러 아이템이 줄었다. 자르반·리신 등 딜탱류 챔피언을 잡기 수월해졌다. 오랜만에 큰 변화라 재밌다고 느낀다.”
-내년 경계하는 팀을 꼽는다면.
“T1을 가장 경계한다. 워낙 좋은 모습을 보여준 팀원들이 이탈 없이 재계약했고 김정균 감독님까지 합류하면서 잘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외에는 당연히 팀 차원에서 투자를 많이 한 팀이 잘할 거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오랜만에 KT로 돌아와 만나 뵙게 됐다. 어떤 결과에 다다르더라도 내가 떳떳할 수 있을 만큼 노력할 테니 과정에 참여해주셔서 함께 재밌는 시즌 보냈으면 좋겠다.”
김지윤 기자 merr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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