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과 끝의 역사 공존하는, 긴장감 어린 이 곳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기자]
이제 기차는 남쪽으로 향했습니다. 홋카이도의 최남단, 하코다테로 향하는 길입니다.
▲ 하코다테의 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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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의 다른 지역은 이름을 아이누어에서 따온 경우가 많습니다. 삿포로(札幌)는 '마르고 큰 땅'이라는 뜻이고, 왓카나이(稚内)는 '차가운 냇가'라는 뜻입니다. 한자는 나중에 발음만 따서 붙인 것이죠.
▲ 하코다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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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코다테는 혼슈와 가까이 있는 도시입니다. 하코다테에서 혼슈까지는 30km 정도 떨어져 있죠. 이름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과거부터 일본의 영향력이 컸던 땅이죠.
에도 막부는 홋카이도 남부에 자리잡은 마쓰마에 가문에게 홋카이도 지배를 일임했습니다. 당시에는 홋카이도를 '에조치(蝦夷地)'라고 불렀습니다. 마쓰마에 가문은 아이누인들과 무역을 하고 때로 전투를 벌이며 교류했습니다.
이때 마쓰마에 가문이 중심 항구로 삼았던 곳 중 하나가 하코다테였습니다. 하코다테는 넓은 평야와 만을 끼고 있어 입지가 탁월했죠.
▲ 하코다테 구 공회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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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년 에도 막부는 미국과 화친조약을 체결합니다. 일본이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었죠. 이 조약에서 일본은 시모다와 하코다테를 개항하기로 합니다. 시모다는 개항의 시점도 늦었고, 항구도 크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된 개항지는 하코다테 뿐이었죠.
하코다테는 그렇게 일본 최초의 개항장이 되었습니다. 막부는 네덜란드와도 교역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데지마(出島)라는 작은 섬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었죠. 규모도 훨씬 작았습니다. 그러니 하코다테야말로 일본의 한 시대를 여는 상징적 도시였습니다.
▲ 옛 영국 공사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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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료가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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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하코다테는 에도 막부라는 구체제의 종말을 알린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1867년 개혁 세력에 밀린 에도 막부는 정권을 덴노에게 돌려주는 '대정봉환'을 단행합니다. 에도 막부를 이끌던 도쿠가와 가문은 현실정치의 경험도 능력도 없는 덴노가 자신에게 정권을 다시 돌려주리라 생각했죠. 여러 지방 영주들을 참여시킨 연합 정권 정도를 만들게 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예상 외로 개혁 세력은 강력했습니다. 덴노는 반막부 세력을 등에 업고 왕정복고를 선언했고, 도쿠가와 가문의 땅과 관직을 모두 반납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생각 밖의 상황이었습니다. 막부로서는 강력히 반발하고, 세력을 모아 전쟁을 벌여볼 수도 있었겠죠. 막부의 힘은 여전히 강력했으니까요. 하지만 막부의 수장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순순히 에도 성의 문을 열고 항복했죠. 그렇게 메이지 신정부가 탄생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리 순순히 항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신정부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있었죠. 그들은 동북 지역에서 전쟁을 계속했습니다.
반대파의 힘은 강력하지 않았습니다. 주군이었던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항복한 상황이니 더욱 그랬겠죠. 신정부군의 공세에 이들은 서서히 밀려났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마지막으로 집결한 땅이 바로 하코다테였습니다.
하코다테에서 반정부군은 '에조 공화국'이라는 국가의 건국을 선언하면서까지 맞섰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1869년 신정부의 승리로 끝을 맺었죠. 그렇게 일본 안의 구세력은 완전히 일소됩니다.
▲ 고료가쿠 안의 봉행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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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사망한 외국인을 위한 외국인 묘지도 있습니다. 서양 기술을 받아들여 만든 별 모양의 성, 고료가쿠는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하죠. 일본의 도시답지 않게 옛 도심에는 교회도 몇 개나 모여 있습니다.
▲ 하코다테의 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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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조치를 다스리려 한 막부도, 홋카이도를 개척한 메이지 정부도, 그 경쟁 상대였던 러시아도, 개척의 롤모델이었던 미국도. 모두 하코다테에 흔적으로 남아 있었으니까요.
하코다테는 홋카이도의 남쪽 끝, 변경(경계 지역)입니다. 동시에 과거 일본 영토의 북쪽 끝에 있는 변경이었죠. 모든 것이 중첩하는 땅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 많은 흔적들이 이 도시에 남을 수 있었던 것이겠죠.
이것이 변경이 가진 힘이고, 중요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갈등하고 긴장하는 세력이 한 곳에 모여, 각자의 뚜렷한 흔적을 남겨두고 떠나는 곳이니까요. 한 세력의 정체성은 중심보다는 오히려 이런 변경에 짙게 남는 법입니다.
그 흔적을 둘러보고 홋카이도를 떠납니다. 홋카이도를 한 바퀴 돌며, 이 땅에 남은 흔적이 무슨 의미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변경'을 떠나 '본토'로 향하는 마음은 그리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CHwiderstand.com)>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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