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시장 철수한 현대차, 이곳 택했다…아세안 시장 놓고 각축전
동남아 주요 10개국으로 구성된 아세안(ASEAN) 자동차 시장을 두고 한·중·일 3국의 각축전이 치열하다. 이 시장을 선점했던 일본의 수성(守城)에, 한국과 중국의 공성(攻城) 전략이 한창이다. 특히 한국 업체들은 최근 판매량이 줄고 있는 중국 시장을 대체할 ‘포스트 차이나’로, 중국 업체들은 글로벌 시장으로 가는 교두보로 아세안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 아세안 지역 자동차 판매량은 342만대로, 2021년 279만대와 비교해 1년새 23% 성장했다. 시장에선 아세안 자동차 시장이 연평균 7%씩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근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한 현대차 그룹은 동남아에서 첨단 제조 기지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15만 대 규모의 인도네시아 완성차 공장을 완성했고, 지난달엔 싱가포르에 글로벌 혁신 센터를 가동했다. 현대차는 “세계 4위 인구 대국인 인도네시아는 물론 인구 6억 이상의 아세안 시장 공략을 위해 인도네시아 공장을 전략적 교두보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싱가포르 혁신센터는 자동차 공장의 상징인 컨베이어 벨트를 없애고 무인운반 로봇(AGV)과 자율이동 로봇(AMR)으로 채웠다.
싱가포르 혁신센터는 첨단 기술을 시험해 확산하는 ‘마더 팩토리’(Mother Factory) 역할을 할 예정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달 열린 준공식에 참석해 “혁신센터에서 얻은 기술을 전 세계에 전파해 다른 공장에서 더 효율적으로 차를 생산하고 비용을 줄일 수 있으면 싱가포르 공장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자동차 업계에선 현대차그룹이 싱가포르에 더해 태국 등 아세안 국가에 생산 공장을 추가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와 별도로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최근 완공한 인도네시아 전기차 배터리 합작 공장에선 시운전을 시작했다.
세계 최대 자동차 수출국으로 거듭난 중국은 동남아 시장에 더 적극적이다. 중국 전기차 1위인 BYD는 5억 달러(6400억원)를 투자해 태국에 전기차 전용 공장을 짓고 있다. 연산 15만 대 수준인 중형 공장이다. 창안자동차도 태국에 2억8500만 달러(3600억원)를 투자해 전기차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아세안 국가는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정치색이 비교적 옅어 중국산 자동차에 대한 수용도도 높은 편이다. 동남아에서 중국 자동차의 브랜드 점유율도 5년 전 1% 수준에서 최근에는 6% 까지 상승했다. 중국 정부도 지원 사격에 나섰다. 이달 초 국영 연구 기관인 자동차 기술 연구 센터가 태국 방콕에 문을 열었다. 중국 자동차 기업의 동남아 시장 진출을 돕는 거점 역할을 할 예정이다.
동남아 시장에 일찍 눈을 뜬 일본차도 동남아에 생산 공장을 잇따라 늘리고 있다. 인도네시아 자동차 시장점유율 1위인 토요타는 18억 달러(2조3300억원)를 투자해 이 지역에 전기차 생산 공장을 짓는 중이다. 태국에서도 전기차 전용 생산 공장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 중국에서 철수하기로 한 미쓰비시는 하이브리드 생산 기지를 동남아에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아세안에서 한·중·일 3국의 경쟁은 내년에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최부식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아세안 시장은 포스트 차이나 시대를 위한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며 “경제 및 지정학적 중요성으로 아세안 국가는 한·중·일이 놓칠 수 없는 성장 시장”이라고 말했다. 특히, 배터리 원료 수급이 용이해 전기차 제조 기지로서 무게감도 커지고 있다. 이서현 한국자동차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인도네시아는 배터리 필수 원료가 풍부해 해외 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이어지고 있고 태국은 부품사와 인력 네트워크가 강점”이라며 “아세안 각국이 자국 산업 육성에 적극적이라 한국을 포함해 각국 자동차 제조사가 현지 생산을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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