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실거주' 이유로 주택임대차 갱신 거절 때 임대인이 입증해야"
주택 임대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임차인의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하기 위해서는 임대인이 해당 주택에 '실제 거주하려는 경우'라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아파트 주인 A씨가 세입자 부부를 상대로 낸 건물인도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실제 거주 사유로 갱신 요구를 거절하려면 A씨가 이를 증명해야 하는데 통상적으로 수긍할 수 있을 정도라고 인정하기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런데도 원심은 이러한 사정을 충분히 심리하지 않은 채 원고의 실제 거주 의사에 개연성이 있고 그러한 의사와 명백하게 모순되는 행위를 찾을 수 없다는 이유로 원고의 갱신거절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라며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3 1항 단서 8호의 증명책임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파기환송의 이유를 밝혔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3 1항은 임대인이 임차인의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를 열거한 조항인데, 제8호는 '임대인(임대인의 직계존속·직계비속을 포함한다)이 목적 주택에 실제 거주하려는 경우'를 임차인의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경우로 들고 있다.
A씨는 2019년 1월 서울 서초구 아파트를 보증금 6억3000만원에 2021년 3월까지 2년 동안 피고 부부에게 빌려주는 임대차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A씨는 자녀들을 국제학교에 보내기 위해 자녀들과 함께 자신의 소유인 제주도 주택에서 거주하고 있었고, A씨의 남편은 남편 소유의 서울의 또 다른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었다
A씨는 2020년 12월 "코로나로 사업이 어려워져 다른 아파트를 팔고 빌려준 아파트에 들어와 살려고 한다"며 임대차계약을 갱신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이에 세입자는 주택임대차보호법에 규정된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하겠다는 내용증명을 보냈고, A씨는 집을 비우라는 소송으로 응수했다.
계약갱신청구권은 세입자가 임대차 계약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1개월 전까지 임대인에게 계약갱신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다.
A씨는 노부모를 거주하게 할 계획이라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정한 갱신 거절 사유(본인이나 직계 존·비속의 실제 거주)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세입자는 처음에는 직계 가족이 들어와서 산다고 했다가 소를 제기한 후 노부모 실거주로 말을 바꿨다는 점에서 부당하게 갱신 거절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1심과 2심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실거주 주체가 변경된다고 하더라도 갱신 거절이 돌연 부적법하게 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먼저 "임대인이 목적 주택에 실제 거주하려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점에 대한 증명책임은 임대인에게 있다"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실제 거주하려는 의사'의 존재는 임대인이 단순히 그러한 의사를 표명했다는 사정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인정될 수는 없지만, 임대인의 내심에 있는 장래에 대한 계획이라는 위 거절사유의 특성을 고려할 때 임대인의 의사가 가공된 것이 아니라 진정하다는 것을 통상적으로 수긍할 수 있을 정도의 사정이 인정된다면 그러한 의사의 존재를 추인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임대인의 '실제 거주하려는 의사'를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임대인의 '실제 거주하려는 의사'는 임대인의 주거 상황, 임대인이나 그의 가족의 직장이나 학교 등 사회적 환경, 임대인이 실제 거주하려는 의사를 가지게 된 경위, 임대차계약 갱신요구 거절 전후 임대인의 사정, 임대인의 실제 거주 의사와 배치·모순되는 언동의 유무, 이러한 언동으로 계약갱신에 대해 형성된 임차인의 정당한 신뢰가 훼손될 여지가 있는지 여부, 임대인이 기존 주거지에서 목적 주택으로 이사하기 위한 준비의 유무 및 내용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판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재판부는 A씨가 처음에는 자신과 남편, 자녀와 함께 세를 준 아파트에 들어와 살 예정이라고 말했다가, 소장에는 A씨 또는 A씨의 부모가 거주할 예정이라고 말을 바꿨고, 소송 도중 제출한 준비서면에서는 다시 자신의 남편이 해당 아파트에 들어와 살고, 자신의 부모는 인근 다른 아파트에 거주할 계획이었지만 피고들의 계약갱신 요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부모가 함께 거주하기로 했다고 주장하는 등 입장이 오락가락했던 점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렇듯 원고는 이 사건 아파트에 실제 거주하려는 사유에 대해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데, 그와 같이 바뀌게 된 데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은 하지 않았다"라며 "원고와 원고 가족에게 이 사건 임대차계약의 갱신을 거절하고 이 사건 아파트에 거주해야 할 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위와 같은 사정을 보면 원고가 드는 사정만으로는 원고나 원고 부모가 이 사건 아파트에 실제 거주하려는 의사가 가공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통상적으로 수긍할 수 있을 정도라고 인정하기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라며 "따라서 원심으로서는 위와 같은 사정뿐만 아니라 원고나 원고 부모가 이 사건 아파트에 실제 거주하려는 의사에 관한 다른 사정이 있는지 등 앞서 본 사정을 종합해 심리함으로써 원고나 원고 부모의 실제 거주하려는 의사가 가공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통상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것인지 판단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임대인이 실제 거주를 이유로 계약갱신을 거절했을 때 임차인이 '임대인이 실거주 의사 없이 갱신을 거절했다'라고 주장하는 경우 소송에서 임대인에게 '실제 거주하려는 의사'가 있는지 여부를 어떻게 판단할지에 대해 하급심 판결이 엇갈렸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임대인이 목적 주택에 실제 거주하려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점에 대한 증명책임이 임대인에게 있다는 점과, 임대인에게 '실제 거주하려는 의사'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방법에 관한 법리를 최초로 명시적으로 설시한 판결"이라고 밝혔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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