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직원 실수' 오류도 징역형? 거꾸로 가는 재해구호법
“엄마, 학교에서 방위성금 내래요”
1970년대를 겪은 국민은 모두 기억하는 말이다. 정부는 ‘김신조 사건’ 이후 반공성금을 걷기 시작했는데 이후 방위성금으로 이름을 바꾸며 1988년까지 전국민을 대상으로 모았다. 정말로 방위를 위해 전액이 사용되었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정부가 준조세 성격으로 성금을 모은 사례는 더 있다. 북한의 수공(水攻)에 대비하는 평화의 댐을 만들자며 600억원의 성금을 모았다. 독립기념관 건립에도 500억원에 달하는 성금이 쓰여졌다.
정부에게 각종 성금, 기금은 달콤한 유혹이다. 시간이 흘러 모금방식은 세련되어졌다. 각종 기금 조성과 사업에 기업을 참여시키거나 연말 기부도 대기업 등을 우회적으로 압박해 자발적으로 내는 모습을 갖추고, 공공기관인 적십자사의 회비도 지로용지로 받았다가 올해서야 중단됐다.
자연재난 의연금의 단일 배분 창구인 전국재해구호협회를 장악하기 위한 노력도 그 일환으로 볼 수 있다. 2006년 재해구호법이 개정되면서 성금 관리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위해 단일화된 배분위에 개입하기 위해 행안부는 지난 17년간 무던히 노력했다.
2006년에는 의연금 배분위원회를 소방방재청 산하에 두는 입법을 시도했다. 2017년부터 2018년까지는 협회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려다가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2018년에는 ‘어금니 아빠’ 사태에 편승해 배분위에 장관이 추천하는 인사를 참여시키는 입법을 시도했다. 2020년 역시 협회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라는 명분으로 배분위에 장관이 지명한 인사를 포함하려 했다.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 윤석열 정부는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를 국정목표로 제시했다. 더 이상 공공부문이 민간부문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준조세적 성격의 부담을 지우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그러나 현재 국회 법사위에서 논의 중인 재해구호법 개정안 역시 내용을 들여다보면 국민 성금에 대한 정부의 입김 강화가 그 취지다.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지 않는 민간단체인 협회에 대한 과도한 통제를 목적으로 하는 독소조항이 가득하다. 개정안에 따르면 협회 설립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우려’만으로도 징역 1년 이하의 형사처벌이 가능해진다. 직원의 실수 등으로 결산서에 오류가 발생해도 마찬가지다. 행안부 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업을 하지 않을 때에는 3년 이하 징역이다.
이한경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지난달 국회에서 “개정안을 통해 행정안전부가 (협회에 대한) 지도감독 권한을 갖게 되면 (배분위원회인) 이사회의 구성을 조정할 수 있다”라며 민간단체의 이사회와 의연금 배분위원회 구성에 개입하겠다는 뜻을 공식화했다.
재해구호협회 쪽은 “행안부가 협회를 장악하기 위해 허 위 제보와 잘못된 보도를 근거로 사무검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부풀려 국회에 부정적인 인식을 주입시켜 법 개정을 시도하는 패턴을 반복해 왔다”라고 그간의 사정을 토로했다.
성금은 ‘자발적’으로 내는 돈이다. 재정건전성을 고려해야 하는 정부로서는 선심성 행정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가욋돈’처럼 보일 수도 있겠으나 기부자 국민의 뜻에 반하는 발상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재난의 양상은 크게 바뀌고 있다. 각종 사고 등 사회재난 역시 큰 규모로 발생하고 있다. 정부와 민간이 함께 힘을 모아 대응하는 것이 행안부가 현재 집중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행안부는 과거로 회귀할 셈인가.
신승근 한국공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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