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황태자' 한동훈, 차별화 대신 2인자 전략?

곽우신 2023. 12. 26.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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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특검·당정 관계 등 민감한 현안 원론적 답변...'좋은 말'로 화려한 기교 펼쳐

[곽우신, 남소연 기자]

▲ 취임한 한동훈 비대위원장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취임 입장발표를 마친 뒤 승강기에 오르고 있다.
ⓒ 남소연
 
윤석열 정권의 황태자가 정계에 데뷔했다.

한동훈 신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 26일 비상대책위원장직 수락 연설을 통해 '정치인'으로 첫 발을 뗐다. 그러나 '김건희 특검법', '수직적 당정관계 청산' 등 민감한 과제에 대해 여전히 명쾌한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지지층 결집을 넘어서 중도층 공략에 성공할지, 이를 바탕으로 차기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보수여당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지 아직은 미지수이다. '긁지 않은 복권' 한동훈을 긁을 때가 드디어 온 것이다.

조기 등판한 구원투수, 초구는 직구 아닌 변화구
 

한동훈 비대위원장 앞에 놓인 과제는 사실 하나의 큰 덩어리이다.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관여 의혹에 대한 특별검찰법안을 거부하면서, 동시에 용산 대통령실과 수평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한다는 것은 형용모순이다.

여론조사 별로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다수 여론조사는 '정권심판론'이 '야당심판론' 보다 우세한 것으로 나온다. 현 정권에 대한 비판의 중심에는 당연히 윤석열 대통령이 있다. 윤 대통령의 과도한 당무개입, 불통하는 자세, 반복되는 거부권, 수시로 나오는 그의 '격노' 관련 보도까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윤 대통령이 변하지 않는다면, 대통령의 얼굴로 선거를 치러야 하는 여당이 내년 총선에서 선전한다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다.

김기현 체제가 붕괴되고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조기 등판한 것은 결국 이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함이다. 그가 선택된 바탕에는 모순적인 기대감이 깔려 있다. 하나는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인 만큼, 그가 당의 키를 잡는 게 용산 대통령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일체감을 높일 것이라는 것. 또 하나는,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이니 '바른 말'을 하더라도 윤 대통령이 귀담아 듣지 않겠느냐는 기대이다.

다수 언론과 평론가들은 한동훈 비대위가 성공하기 위해서 윤석열 대통령과 차별화되는 지점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아바타'라는 야권의 프레임에서 벗어나고, 윤석열 대통령과 다른 '한동훈의 정치'를 보여줘야 등 돌린 유권자들이 돌아올 것이라는 조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날 그의 연설문은, 향후 그가 당을 어느 방향으로 이끌지 가늠해볼 수 있는 좋은 무대였다. 본인은 '9회 말 2아웃 2스트라이크'에 나선 타자에 비유했지만, 다른 관점으로 보면 무너진 마운드를 지키기 위해 예상보다 빠르게 교체되어 올라 간 구원투수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의 초구는 빠른 직구가 아니라 변화구였다. 윈스턴 처칠의 명언을 인용하고, 차기 총선 불출마를 내걸고, '선당후사' 대신 '선민후사'를 제시하는 등 화려한 기교가 들어갔다. 하지만 '좋은 말'들 속에, 최대 현안을 어떻게 돌파하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청사진은 딱히 제시하지 못했다(관련기사 : 이재명 겨냥한 한동훈 "운동권 특권정치, 청산해야" https://omn.kr/26vhx).

모호한 답변으로 일관... 윤 대통령과 차별화는 없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취임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 남소연
 
이후 기자들과의 질의응답도 마찬가지였다. 여당은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첫 무대, 몰리는 취재 열기를 의식한 듯, 현장에서 사전 접수해 조율한 4개의 질문으로만 질의응답을 갈음했다.

이어진 기자들과의 질문에, 한동훈 장관의 답변은 모호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당 대표가 오는 27일 탈당을 예고한 가운데, 그를 만나서 탈당을 만류할 것인지 질문이 나오자 한 비대위원장은 "우리 당은 자유민주주의 정당이고 다양한 생각을 가진 많은 분들이 모일수록 강해진다"라면서도 "지금 단계에서 특정 한 분을 전제로 해서 어떤 계획을 갖고 있지는 않다"라고 답했다. 당내 다양한 의견을 존중한다면서도, 이 전 대표를 특정해 붙잡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법 앞에 예외 없다"라는 본인의 발언과 김건희 특검 불수용 입장은 배치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일단 (기자의) 생각일 뿐이시다"라고 꼬집으면서도 "오늘부터는 제가 여당을 이끄는 비대위원장이기 때문에 당으로부터 충분히 논의된 내용을 책임 있게 발언 드리고, 그걸 과감히 실천할 것"이라고 즉답을 피했다. "특검은 총선용 악법"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하면서도, 이에 대한 대응은 "충분히 보고받고 같이 논의하겠다"라며 일단 미룬 셈이다.

가장 중요한 '수직적 당정관계 타파'에 대해서도 한 비대위원장은 "대통령과 여당, 여당과 정부는 헌법과 법률 범위 내에서 각자 할 일을 하는, 국민을 위해 할 일을 하는 기관"이라며 "거기에 수직적이니 수평적이니 이야기가 나올 부분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각자 상호 협력하는 동반자 관계"라며 "대통령은 여당이 있기 때문에 정책적 설명을 더 잘 할 수 있는 것이고, 여당이 사랑받아야 대통령이 더 힘을 갖게 된다"라고도 덧붙였다.

윤석열 대통령을 위시한 용산 대통령실의 '그립'이 과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언론으로부터 꾸준히 나오고, 정권을 향한 부정적 여론에도 비대칭적 당정관계가 한몫하는 데도 이같은 현실 인식 자체를 부인한 셈이다. "사극에나 나올법한 궁중 암투"라고 평하며,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았다.

"고도의 전략적 계산" "오래지 않아 하나하나 나올 것"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오마이뉴스>에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날 연설에 대해 "두 가지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하나는 '2인자 전략'을 계속 고수하겠다는 것"이라며 "출마를 안 하겠다는 것은 현재 권력이 두 개가 되는 그런 상황은 안 만들겠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이어 "또 하나는 한동훈 대 이재명, 이재명 대 한동훈으로 총선을 치르겠다는 것"이라며 "운동권 정치 세력 대 X세대와 같은 프레임으로 선거 판을 짜겠다는 셈"이라고 부연했다.

엄 소장은 "얼핏 모순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두 개를 같이 담아내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라며 고도의 전략적 계산이 깔린 메시지로 해석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차별화를 하지 않으면서도, 이번 총선의 선거를 '윤 대통령 심판'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한 방향"이라는 지적이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처음부터 용산과 각을 세운다는 게 쉽지는 않다. 민심에 대해 조금 더 민감한 사람이라는 느낌도 받았다"라면서도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평가할 게 별로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선민후사'를 내세운다거나, 김기현 대표 시절처럼 '윤석열 정부의 성공' '당정일체' 이런 말을 하지 않는 걸 보면 이전보다는 보다 중립적인 뉘앙스"라면서도 "그렇다고 딱히 뭘 어떻게 다르게 하겠다는 것을 말한 것도 없고 좀 애매하게 '깔아놓은' 메시지"라고 분석했다.

이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오늘로서는 전혀 알 수가 없지만, 오래지 않아 하나하나 나올 것"이라며 "당장 비상대책위원을 누구를 임명하느냐부터 한동훈 비대위의 실력과 방향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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