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행동주의 펀드 타깃 된 삼성물산

김경민 매경이코노미 기자(kmkim@mk.co.kr) 2023. 12. 26.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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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악몽 재현되나

2024년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행동주의 펀드들이 삼성물산을 겨냥한 공세를 퍼붓고 있다. 지배구조 개선, 자본 배분 요구 등 주가를 부양하기 위한 활동에 나서면서 내부적으로 대응책 마련에 부심한 모습이다.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들이 잇따라 삼성물산을 공격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삼성 사옥. (매경DB)
美 헤지펀드 주주환원 요구

“주가 68% 할인 상태” 주장

블룸버그는 최근 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 ‘화이트박스어드바이저스’가 삼성물산 측과 만나 명확한 자본 배분 계획을 도입할 것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화이트박스어드바이저스는 2017년부터 삼성물산에 투자해 1억달러(약 1390억원)어치 지분을 보유했다.

화이트박스어드바이저스는 삼성물산 주식이 순자산가치(NAV) 대비 68%가량 할인된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삼성물산이 주주 수익률과 연계된 임원 보상 체계를 도입해 할인율을 줄일 것을 요구했다. 화이트박스는 2020년에도 LG그룹과 LX그룹의 계열 분리에 반해, 분사 저지 활동을 벌인 바 있다.

이뿐 아니다. 영국계 행동주의 펀드 ‘팰리서캐피털’도 최근 삼성물산 주가와 실질적인 기업가치에 약 250억달러(약 33조원) 격차가 있다며 삼성물산 주가 부양을 위해 5000억원 규모 자사주 매입을 권고했다. 각 사업부를 통합하는 최고경영자(CEO)를 선임해 리더십을 강화하고, 기업 구조 단순화로 주가를 부양하라고 강조했다. 또 사업 가치를 키우기 위해 삼성물산 내 특정 사업부를 매각하거나, 분사 후 기업공개(IPO)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을 촉구했다. 여기에 이사회 구성원을 다각화하고 주주와의 커뮤니케이션도 강화하라고 요구했다. 팰리서캐피털은 삼성물산 지분 0.62%를 보유했다. 팰리서캐피털은 2015년 당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반대했던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 출신 펀드매니저 제임스 스미스가 최고투자책임자(CIO)를 맡고 있다.

또 다른 행동주의 펀드 ‘시티오브런던인베스트먼트매니지먼트’도 삼성물산에 주당 배당금을 2022년 2300원에서 2023년 4500원으로 2배가량 늘리고, 2024년까지 자사주 5000억원 규모를 매입할 것을 요구사항으로 내걸었다. 삼성물산 측은 “주주들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있으며,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노력 중”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들의 공격이 잇따르면서 삼성물산 주가도 널뛰는 양상이다. 삼성물산 주가는 지난 10월 27일 10만3200원까지 떨어졌지만 12월 14일 장중 13만원까지 뛰었다. 이후에도 13만원 안팎에서 횡보하는 중이다.

삼성물산 주주환원 강화했는데

5년간 자사주 전량 분할 소각하기로

행동주의 펀드들이 삼성물산 공략에 나선 것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사법 리스크로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사실상 올스톱된 틈을 파고들었다는 분석이다.

삼성물산은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상 정점에 있는 회사다. 그룹 지배구조를 보면 이재용 회장 일가 → 삼성물산 → 삼성생명 → 삼성전자 → 기타 계열사로 이어지는 구조다. 오너 일가가 삼성물산을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형태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통해 지금의 지배구조를 갖췄다.

이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율은 1.44%에 불과해 이후 지배구조 개편 필요성이 컸지만, 이 회장이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면서 삼성은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엄두를 못 냈다. 이른바 ‘국정농단’ 사태에 삼성그룹이 휘말리면서 이 회장은 법원 재판에 수없이 출석해왔다. 2017년 시작된 국정농단 사건 관련 재판은 3심까지 완료됐고 2022년 8월 15일 이 회장이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아 복권한 상태다.

그럼에도 사법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관련 소송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다. 이 회장은 2015년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불법적으로 추진한 혐의를 받는다. 2024년 1월 26일 1심 선고를 앞뒀는데 만약 3심까지 갈 경우 적어도 3년 이상이 더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회장이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면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더뎠고, 행동주의 펀드들이 이 지점을 공략했다는 평이다.

변수는 또 있다. 2020년 10월 故 이건희 선대회장 별세 이후 상속세 납부를 위해 오너 일가가 삼성물산 지분을 팔고 있는 점도 변수다. 삼성그룹 오너 일가는 약 12조원의 상속세를 숙제로 안게 됐다. 2021년 4월 이후 약 6조원을 분할 납부했고, 지금도 비슷한 규모가 남았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최근 하나은행과 삼성물산 주식 120만5718주를 처분하기 위한 유가증권처분신탁 계약을 체결했다. 상속세 마련 목적이다. 이로써 약 1286억원을 손에 쥐게 됐다. 이 회장과 특수관계인의 삼성물산 지분율은 올 6월 말 기준 33.63%에서 32.99%로 낮아진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물산이 그룹 지배력의 정점인 만큼 오너 일가가 ‘마지막 보루’로 여기고 지분을 팔지 않았지만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다. 오너 일가의 삼성물산 지분이 줄어들면서 행동주의 펀드들이 공격 시기를 저울질해온 듯 보인다”고 귀띔했다.

다만 재계에서는 삼성물산이 이미 주주환원 정책을 강화해온 만큼 행동주의 펀드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삼성물산은 2023년 초 이사회를 열고 구체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내놨다.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향후 5년간 보유한 자사주 전량을 분할 소각하기로 했다. 삼성물산이 보유한 자사주는 보통주 2472만주(13.2%)와 우선주 16만주(9.8%)다. 소각 규모는 매년 이사회에서 결정한다. 또한 2025년까지 관계사 배당수익의 60~70% 수준을 환원하기로 했다. 주당 배당금은 최소액을 2000원으로 유지해 매년 경영 실적, 현금흐름 등을 감안해 확정할 예정이다.

이승웅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물산의 잔여 자사주와 잔여 소각 기간을 감안한다면 자사주 소각 규모는 지속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관계사 배당금 수익을 감안해 2024년 주당 배당금은 2400원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행동주의 펀드들은 삼성물산의 그룹 지주사 역할도 강조하지만, 삼성물산이 지주사로 전환하는 작업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삼성물산이 지주사가 되려면 공정거래법에 따라 삼성전자 지분을 30%까지 늘려야 한다.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5.01%에 그친다. 삼성물산이 수십조원의 지분 매입 자금을 감당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행동주의 펀드들의 공격은 당분간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과거 엘리엇이 삼성물산 공격으로 재미를 본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2015년 당시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한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반대하며 주식매수청구가격 소송을 냈다. 엘리엇은 2018년 국민연금공단과 보건복지부 등이 합병에 찬성해 손해를 봤다며 우리 정부를 상대로 국제투자분쟁(ISDS)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국제상설중재재판소는 2023년 6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60만달러(약 690억원)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정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을 상대로 267억원을 더 받아내기 위한 약정금반환청구소송까지 제기했다.

“행동주의 펀드들은 소량의 지분으로 기업을 공격하는데 장기적인 기업 비전을 고민하기보다는 단기 수익만 노리는 행태가 대부분이다. 행동주의 펀드에 휘둘리지 않기 위한 방어 전략을 마련해야 할 때다.” A대 경영대학 교수 의견은 눈길을 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0호 (2023.12.27~2023.12.3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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