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국적선사…하림, 넘어야할 파고 높다

김경민 매경이코노미 기자(kmkim@mk.co.kr) 2023. 12. 26.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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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조4000억에 HMM 품다

하림그룹이 국내 최대 해운사인 HMM(옛 현대상선) 경영권을 인수한다. 기존 팬오션(옛 범양상선)에 더해 글로벌 해운사와 경쟁할 만한 초대형 국적선사가 탄생하게 됐다. 다만 해운 업황이 침체된 데다 중견기업이 덩치 큰 기업을 품에 안아 ‘새우가 고래를 삼키는 격’이라는 지적과 함께 ‘승자의 저주’ 우려도 나온다.

HMM 채권단인 KDB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는 지난 12월 18일 HMM 경영권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하림그룹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하림은 채권단이 보유한 HMM 지분 57.9%(3억9879만156주)를 약 6조4000억원에 인수한다. 동원그룹의 인수 가격(6조2000억원)을 2000억원 안팎 근소한 차이로 앞섰다는 후문이다.

하림은 사모펀드(PEF) 운용사 JKL파트너스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연내 주식매매계약(SPA)을 맺고 기업결합심사 등을 거쳐 내년 상반기 인수 작업을 마무리 지을 계획이다.

하림은 어떤 기업

닭고기 전문 업체에서 M&A로 성장

김홍국 회장이 이끄는 하림은 ‘닭고기’로 잘 알려진 종합식품 기업이다. 김 회장은 1978년 전북 익산시 황등면에 하림의 모태인 황등농장을 설립해 육계 사업에 뛰어들었다. 사료, 식품가공, 유통 등으로 점차 사업 영역을 넓혀왔다.

‘인수합병(M&A) 귀재’로 불리는 김 회장은 그동안 M&A 시장에서 속속 성과를 내왔다. 2001년 사료 생산 회사인 천하제일사료를 계열사로 편입한 이래 사료 기업 선진, 돈육 업체 팜스코를 연달아 인수했다.

2015년에는 해운업에 뛰어들었다. 국내 최대 벌크선사 팬오션 지분 58%를 1조80억원에 인수하면서다. 사료 원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곡물을 실어 나르는 벌크선 인프라를 갖춘 팬오션을 인수해 운송 비용 절감, 유통망 안정 효과를 노렸다. 이로써 하림은 곡물 유통부터 사료, 축산, 가공식품까지 수직계열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기에 더해 컨테이너선 중심 해운 업체 HMM을 품에 안아 해운업 덩치를 키울 수 있게 됐다. 국내 1위 벌크선사 팬오션은 올 상반기 기준 총 301척의 선박을 운영하며 연간 화물 약 1억t을 전 세계에 운송하고 있다. HMM은 컨테이너선 105척을 운항 중이다. 총 79만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로 글로벌 시장점유율 2.9%를 차지해 선복량(적재능력) 기준 세계 8위 선사다. 이로써 하림은 향후 400척 넘는 선대를 거느리게 된다.

김홍국 회장은 HMM 인수와 함께 한국을 세계 5대 해운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제시했다. 세계 1위 곡물 회사이자 대형 해운 업체인 ‘카길’처럼 키우겠다는 꿈이다. 김 회장은 “HMM의 경쟁력을 높여 세계 8위에서 5위 해운사로 성장시키겠다. 팬오션 인수 경험을 토대로 기간산업인 해운업 발전에 이바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인수로 하림그룹 위상도 높아진다. HMM 인수 본계약이 마무리되면 하림그룹 자산은 17조910억원에서 HMM 자산(25조8000억원)을 더해 단숨에 43조원가량으로 불어난다. 재계 순위도 기존 27위에서 13위로 껑충 뛰며 CJ그룹(자산 40조7000억원)을 넘어선다. 전통 산업인 식품업을 기반으로 각종 M&A를 통해 재계 10위권까지 성장한 사례는 보기 드물다는 것이 재계 안팎에서 바라보는 시각이다.

하림그룹이 HMM을 전격 인수하면서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지 관심이 쏠린다. 사진은 서울 하림 사옥과 김홍국 하림 회장. (매경DB)
‘승자의 저주’ 우려도

인수 자금 부담, 노조 반발 변수

하림그룹이 우여곡절 끝에 HMM을 품에 안았지만 과제도 적잖다. 하림그룹 전체 자산이 HMM 한 곳보다 적어 ‘새우가 고래를 품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6조원 넘는 거액의 인수 금액을 두고서도 무리한 투자라는 비판이 나온다.

하림은 당장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백방으로 나설 전망이다. 먼저 5000억원 규모 팬오션 영구채 발행을 준비 중이다. 하림그룹과 돈독한 관계로 알려진 호반그룹이 백기사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팬오션의 선박 자산도 유동화하고, 주요 계열사 유상증자도 추진 중이지만 제때 자금 마련에 성공할지 우려하는 시각이 적잖다.

이뿐 아니다. 하림은 HMM 인수 과정에서 잔여 영구채의 주식 전환 유예 요청 등 주주 간 계약 수정 제안을 했다. 이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는 만큼 자금 조달 계획의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

하림은 본입찰 때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보유한 1조6800억원 규모 영구채의 주식 전환을 3년간 유예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제안이 받아들여졌다면 하림의 HMM 지분율은 57.9%로 유지돼 3년간 매년 2895억원까지 배당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향후 주주 간 계약 조건 협상 과정에서 매각 측이 이를 받아주지 않으면 하림의 지분율은 38.9%로 희석돼 연간 배당금이 1945억원까지 줄어든다. 인수 후 3년간 약 2850억원 자금이 추가로 필요해지는 셈이다.

하림은 이 밖에도 HMM 자사주 매입 허용, JKL파트너스 보유 지분 5년 내 매각 허용 등의 내용을 수정 제안에 담은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런 내용이 알려지며 또 다른 인수 후보인 동원그룹 반발을 산 만큼 하림 측이 이를 고집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동원그룹이 입찰 공정성을 문제 삼으며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엄포를 놓은 만큼 하림이 더 이상 수정 제안을 지속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수천억원의 추가 자금 부담이 생겨 자금 마련에 난항을 겪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변수는 또 있다. 글로벌 해운 업황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이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중국 상하이항에서 출항하는 컨테이너선 15개 항로 단기 운임을 종합한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 12월 15일 1093.52를 기록했다. SCFI는 보통 1000을 손익분기점으로 삼는다. 지난해 1월까지만 해도 SCFI가 5000을 넘었던 것과 비교하면 5분의 1 수준으로 폭락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HMM 실적도 계속 고꾸라지는 중이다. 올 3분기 HMM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97.1% 하락한 758억원에 그쳤다. 덴마크 머스크, 이스라엘 짐라인 등 글로벌 해운사들이 이미 적자로 돌아선 만큼 HMM 역시 4분기 적자를 내지 않겠냐는 분석이 조심스레 나온다.

향후 전망도 어둡다. 프랑스 조선·해운 분석기관 알파라이너는 내년 컨테이너선 공급이 올해보다 8.2% 늘어나지만, 수요 증가율은 1.4%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해사기구(IMO)의 탄소 배출 규제로 메탄올 연료를 쓰는 컨테이너선 발주가 늘면서 공급 과잉 우려가 커졌다. 양지환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유럽 항로 운임이 떨어진 데다 용선료, 연료비 등이 늘면서 HMM의 수익성이 급락했다. 선박 공급이 계속 증가해 해운 업황 개선 가능성은 희박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HMM의 컨테이너선과 팬오션의 벌크선 사업은 영역이 달라 시너지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의견도 적잖다. 컨테이너선은 정해진 항로를 주기적으로 운항하는 반면, 벌크선은 광물, 곡물 등 특정 화물을 부정기적으로 운반해 같은 해상 운송이라도 철저히 다른 시장이다.

“지금까지는 산은 지원 덕분에 HMM이 버텨왔지만 앞으로는 하림이 친환경 선박 등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야 하는데 적기에 투자가 이뤄질지 미지수다.” 해운업계 관계자 의견이다. HMM 노조 반발도 풀어야 할 숙제다. 단체협약을 진행 중인 HMM해원연합노조는 사측에 협상 결렬을 통보하고 파업에 나설 방침이다. 노조는 매각 절차를 중단시키기 위해 모든 방안을 동원해 투쟁한다는 입장이라 잡음이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0호 (2023.12.27~2023.12.3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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