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새 학기 1~2주는 허공으로 사라진다
[이준만 기자]
▲ 교실 |
ⓒ flickr |
학교에는 3월이 되어서야 새해가 찾아온다. 시의 한 구절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그렇다. 학교에는 '연도'와 구별되는 '학년도'라는 게 있다. '2023년'은 당연히 2023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겠지만 '2023학년도'는 2023년 3월 1일부터 2024년 2월 28일까지이다.
30년 넘게 교사로 산 나의 경우, 해가 바뀌어 1월 1일이 되어도 새로운 마음을 갖기가 쉽지 않았다. 지난해에 가르친 아이들의 과목별 세부 능력 및 특기사항을 써야 해서, 작년과 단절되지 않고 쭉 이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2월이 지나고 3월에 개학하면 그제야 비로소 새로운 마음을 먹게 된다.
3월의 학교는 모든 게 새롭다. 학생들은 새 학년으로 올라가 새 교실에서 새 친구들을 만난다. 교사들은 새 학생들에게 새 과목을 가르치게 되고 새 동료 교사들도 만나게 된다.
근무지 배정 결과 늦게 나와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공립 고등학교(중학교도 마찬가지이리라)의 경우 3월 개학하자마자 새로 맡은 과목의 진도를 곧바로 나가기는 어렵다. 지금의 공립학교 인사이동 시스템상 그럴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공립학교는 해마다 교사들이 조금씩은 바뀐다. 한 학교 근무 연한을 다 채웠거나 개인적인 사유로 근무지를 옮기기 희망하는 교사들을 새로운 근무지로 배정하기 때문이다. 이 근무지 배정 결과가 늦게 나오는 게 문제이다. 시도교육청별로 차이가 있는데 내가 근무한 학교가 속한 교육청은 늘 좀 늦는 편이었다.
2023년의 경우를 살펴보자. 2월 10일쯤 근무지 배정 결과가 나왔다. 내가 근무한 학교에서는 2월 20일부터 2월 23일까지를 새 학년 준비 기간으로 정했다. 새로 부임하는 교사와 기존 교사들이 모두 모여 새 학년 새 학기를 준비하는 기간이다. 이때 새 학기에 어떤 학년, 어떤 과목을 가르치게 될지 확정된다.
2023년의 경우 어떤 과목을 가르칠지 알게 되고 6일 후에 새로운 과목을 가르쳐야 했다. 6일이면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꽤 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6일 중 3일은 휴일이니 실질적으로는 3일 동안에 가르칠 준비를 마쳐야 했다.
이런 사태는 비단 2023년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근무하는 동안 해마다 반복되었다. 대개 12월 초에 교사들이 근무지 배정 희망서를 교육청에 제출한다. 그러면 늦어도 1월 중순쯤에는 근무지 배정 결과를 발표할 수 있을 듯한데 그런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1월 중순쯤 교육청에서 교사들의 근무지 배정 결과를 발표하면 2월 초에 학교에서는 새 학년 준비 기간을 운영할 수 있을 터이다. 그러면 교사들이 2~3주가량 새로운 과목을 가르칠 준비를 할 수 있다. 그래야 3월 개학하자마자 새로운 과목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게 된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개학 후 1~2주 동안은 어영부영 지나게 될 수밖에 없다.
학교 교육의 허술한 지점 찾아 꽉 조여야
새로운 과목을 가르칠 준비를 하는 데 2~3주가량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교사들 중에서도, 아니 어쩌면 대부분의 교사들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내 생각은 좀 다르다. 개학 전에 철저하게 준비해야 제대로 가르칠 수 있다. 그러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어떻게 수업을 하고(수업 계획) 어떻게 평가할지(평가 계획)를 철저하고 완벽하게 준비해야 한다. 물론 지금도 교과 진도 운영 계획과 평가 계획을 세워 담당 부서로 제출한다. 그런데 지금의 교과 진도 운영 계획은 그야말로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 담당 부서에서 제공한 양식에 대충 교과서의 목차만 끼워 넣어 제출하면 만사형통이다. 평가 계획은 실제 평가를 해야 하니, 교사들이 세심하게 작성한다. 문제는 평가 계획을 4월 중순이나 말까지만 제출하면 된다는 점이다.
고등학교 평가에서 수행 평가는 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수행 평가는 수업 내용과 연계하여 수업 중에 실시하는 경우도 많다. 4월 말이 되어서야 평가 계획이 확정된다면 3월과 4월에 수업한 내용과 수행 평가를 연계하기 어려울 터이다. 그래서 과정 평가를 수반해야 하는 수행 평가의 본질과 동떨어지게 과제물에 바탕한 수행 평가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도교육청 학업성적관리지침에 '과제형 수행 평가를 지양'하라는 규정이 있는데도 말이다.
교사들에게 개학 전에 새로운 과목을 가르칠 준비 시간을 2~3주 줄 수 있다면, 이런 상황을 상당히 개선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려면 교사들의 새로운 근무지 배정이 1월 중순이나 늦어도 1월 말에 끝나야 한다. 교육청에서 해야 할 일이다. 3월 새 학기 시작하자마자, 각 학교의 모든 과목이 정상적으로 수업에 돌입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교육청에서 인지한다면 불가능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만일 그런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이제 교사들의 시간이다. 2~3주 동안 수업 계획과 그 수업과 연계한 수행 평가 계획을 완벽하게 짜야 한다. 우선 '교과 진도 운영 계획'이라는 형식적인 서류부터 없애는 게 좋겠다. '수업 계획서'를 만들면 어떨까 싶다. 지금의 '교과 진도 운영 계획'은 1쪽에 불과하다. 작성하는 데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제대로 된 한 학기 '수업 계획서'를 만들려면 1쪽으로는 불가능하고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런 다음 수업 내용과 연계한 수행 평가 계획을 세워야 한다. 지금은 수업 내용과 동떨어진 수행 평가를 실시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과정이 순탄하게 잘 이루어지려면 관리자(교장, 교감)의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누군가 관심을 가지고 닦달하지 않으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누구나 편하고 싶어 한다. 관행대로, 익숙한 방식으로 진행하면 모두 편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옳지 않다면 바꾸어야 한다. 지금대로라면 3월 새 학기 개학 후, 1~2주가 훅, 허공으로 사라진다.
교실 붕괴니, 공교육의 위기니 하는 말이 회자된 지 제법 되었다. 학교 교육의 허술한 지점을 찾아 꽉 조여야 한다. 3월 새 학기 시작부터 알차게 수업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작은 일 같아 보이지만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시작부터 흔들리면 끝까지 계속 흔들릴 수도 있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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