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개의 마지막 한 달, 눈물납니다

유지영 2023. 12. 26. 16: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어떤 부고] 9개월만에 파양, 죽기 한 달 전 재입양된 '지뉘'의 일생

[유지영 기자]

지난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한 마리의 개가 세상을 떠났다. 그 개의 이름은 지뉘다(독일어, 백일초라는 뜻). 지뉘는 10년 전인 지난 2013년 9월 3일, 경기도 파주 광탄면의 어느 어린이집 앞에서 발견되었다. 이어 근처 동물병원으로 이동했으나 개가 태어난 장소도 태어난 시간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빨의 발육 상태를 통해 추정된 그 개의 나이는 세 살이었다. 개에게는 이름보다 공고번호가 먼저 붙었다. 그 개의 공고번호는 '경기-파주-2013-00414'로 품종은 진도견, 색상은 흰색, 성별은 암컷, 체중은 28kg였다. 특징란에는 '특징없음'이라고 남겨진 개는 곧 파주의 한 보호소로 구조됐다. 보호소에서 붙은 개의 이름은 '진희'다.

진희는 진돗개 특유의 깔끔하고 예민한 성격 탓에 실외배변을 고집했다. 보호소 행동사(행동하는 동물사랑) 홈페이지에는 2013년 무렵 진희에 대해 이런 메모가 남겨져 있다. "실외배변 필수. 실외배변 빠질 시 다음날까지 대소변을 참음." 비록 견사가 흙바닥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진희는 생활하는 공간과 아닌 공간을 엄격하게 구분하며 산책을 나가서만 하는 배변을 고집했다. 그런 이유에서 진희는 보호소의 봉사자들을 애타게 기다렸다.

"드디어 집밥을 먹네요"... 사람 좋아하던 진희의 입양
 
 보호소에서 진희가 머물던 견사. 진희는 견사 밖에서만 배변을 하려고 했다.
ⓒ 행동사
봉사자들이 오는 날이면 진희는 산책을 나가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러다 진희는 그 찰나의 달콤한 산책이 끝나는 것이 무서운지 견사 앞에서 1시간 이상을 버티면서 몇 번이고 들어가지 않겠다고도 투정을 부려보았다. 그러나 봉사자들은 적고 산책을 기다리는 개는 많은 현실이 언제나 진희를 견사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보호소 생활을 한 지 6년이 지나고, 당시 9살(추정)이 된 진희에게는 별명이 생겼다. 보호소에서 가장 오래 머문 축에 속하는 진희다 보니 이른바 "행동사 안방마님" 혹은 "터줏대감"으로 불렸다. '신참'인 봉사자들은 보호소에 오면 가장 먼저 진희를 산책시키는 것으로 일을 시작하기도 했다.

6년간 수많은 봉사자가 진희를 스쳐 지나갔다. 이들은 물었다. "이렇게 사람을 좋아하는 진희의 가족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그 바람이 하늘에 닿은 걸까? 진희에게도 희망이 찾아오는 듯 보였다. 2019년 3월, 입양을 전제로 진희를 임시보호 하겠다는 가족이 나타난 것이다.

진희에게 가족이 생겼다는 게시글에 봉사자들은 앞다퉈 축하의 인사를 남겼다. "어떤 말로도 이 기쁨을 표현 못 하겠다", "우리 진희가 드디어 집밥을 먹네요", "이런 일이 가능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 바람은 무참하게도 그로부터 9개월 뒤인 12월 19일, 진희는 보호소의 흙바닥이 있는 견사로 돌아왔다.

보호소의 봉사자는 당시 진희의 입양자가 "동네 사람들이 (진희를) 보기만 해도 놀라고, 진희 문제로 가족들이 너무 불화가 심해서 돌려보내야겠다"라고 했다고 전했다. 진희 입양자는 보호소 봉사자에게 연락해 '진희를 구정 전까지 보호소로 보내겠으니 (진희) 자리를 만들어달라고, 자리가 없더라도 구정에는 무조건 보내야겠다'고 데리러 오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황당하게도, 진희가 보고 싶으니 진희 사진을 종종 보여달라는 당부까지 덧붙였다.

하늘색 후드티를 입은 채 고개를 숙인 진희가 경기도 위례의 입양처에서 파주의 보호소에 온 날, 보호소는 온통 눈물바다가 됐다. 차에서 내린 진희는 보호소 앞에서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2019년 12월, 보호소로 돌아온 진희 모습. 이 사진은 온라인에서 '파양되어 돌아온 강아지의 표정'이라는 설명과 함께 사람들의 공감을 샀다.
ⓒ 행동하는동물사랑
"'빠방'(이동차) 온다." 늘 짧아서 아쉽기만 하던 산책을 끝마치고 진희가 견사에 들어가기 전 매번 들어야 했던 봉사자의 한 마디. 진희는 이 말을 9개월만에 또 들을 줄 알았을까? 하지만 '보호소에서 가장 똑똑했던 개'답게, 진희는 이내 익숙하게 발을 내밀어 이전에 머물던 견사를 알아서 찾아간다.

그러나 진희는 흙바닥인 견사에 차마 앉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서 있다. "아이들 짖는 소리에 세상을 다 잃은 듯한 얼굴을 하고 다시 여기 왔구나. 따뜻한 봄에 나가 다시 추운 겨울 이곳으로 왔구나."(행동사 캔디맘님) 진희가 슬픈 얼굴을 하고 고개를 숙인 사진은 인터넷 상에서 "파양되어 돌아온 강아지 표정"으로 한동안 화제를 모았다. 그리고 진희에게는 삶이 남았다. 진희는 아주 짧은 집밥의 기억을 안고 보호소 생활을 시작했다.

꼬박 4년이 흘렀고 진희는 그 사이에 보호소에서 13살이 됐다. "오랜 시간 지켰던 그 자리에 하루종일 앉았다 누웠다, 설거지하는 이모 삼촌을 보다가 잠들었다 깼다 그렇게 하루를 보냅니다."(행동사 베리굿님)

기적같이 찾아온 마지막 기회

이것을 기적이라 불러도 좋을까. 진희에게 마지막 기회가 찾아왔다. 지난 11월 12일 진희는 독일어로 백일초라는 뜻의 '지뉘(zinnie)'라는 이름으로 입양 가족을 만났다. 입양자인 나무(가명, 36)씨는 진희가 파양당해 보호소로 돌아왔을 때, 보호소의 봉사자 신분으로 진희를 처음 만났다고 한다. 지뉘를 입양하자마자 병원부터 데려갔다. 지뉘에게는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나무씨는 말했다.

"애교도 많고 잘 웃고 사람도 좋아하던 진희인데, 파양되고 돌아와서는 몸에 손만 대면 물려고 하고 슬픈 얼굴을 자주 보였어요.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표정으로 돌아온 아이를 잊을 수 없죠. 파양의 아픔을 겪은 진희가 이대로 가족도 만나지 못한 채로 덥고 추운 흙바닥에서 떠나는 게 저에게는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진희는 노견이고 아팠고, 그래서 가족을 만날 확률이 적었어요. 모두를 구할 수는 없지만 마음에 가는 한 마리라도 진심을 다해서 행복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어요." 

지뉘에게는 요즘 강아지마다 하나씩 있다는 인스타그램 계정(@zinnie_blessing)도 생겼다. "11월 12일. 우리 지뉘 집으로 가는 길."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여섯 글자가 무겁다. 집으로 가는 길이 이토록 멀고 험난할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다섯 걸음 걷고 쉬어야 다시 걸을 수 있는 진희는 몇 년 사이 체중이 늘었다. 나무씨는 병원을 오가며 밤낮없이 지뉘를 돌봤다. 하루에 평균 4건씩 인스타그램에 지뉘의 사진을 올리며 일상을 기록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2023년 11월 '지뉘'라는 이름으로 입양된 진희.
ⓒ 지뉘 입양자 나무
지뉘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가족들과 바다를 보러 떠났다. 나무씨는 그간 입양하거나 임보(임시보호)를 했던 개들에게 기회가 되면 바다를 보여주었다고 했다. 혹시나 보호소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일까, 지뉘는 차를 오래 타면 자주 불안해 한다. 

호텔 침대에 올라간 지뉘는 꼬리를 흔들면서 웃었다. "제가 지뉘에게 베개를 건네줬더니 마치 지뉘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요, 내가 기다려 왔던 게 바로 이거예요'라고요." 지뉘가 침대에서 새벽 3시까지 잠들지도 않고 나무씨를 쳐다보았다. 지뉘에게는 그날이 마지막 밤이었다.

입양된 지 43일만에 지뉘는 떠났다. 지뉘가 다음날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고 목을 못 가누며 침을 흘리자 나무씨는 바닷가 근처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다. 수의사는 나무씨에게 '가족들이랑 바다에 오고 싶어서 마지막으로 힘을 낸 것 같다. 해드릴 수 있는 게 지금으로선 없다'라고 전했다. 병원에서 나와 호텔로 돌아가는 길, 지뉘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도 좋아하던 푹신한 침대에 지뉘를 눕히고 지뉘는 잠들 때까지 계속 눈물을 흘렸다.

"더는 파양 당하고 상처받는 일 없었으면" 

눈이 펑펑 내리는, 8년만에 찾아온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지뉘는 보호소가 있었던 파주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화장됐다. 이것은 한 평범한 한국 진돗개의 이야기다. 아니, 사실은 운이 좋았던 진돗개의 이야기다. 한국에는 가족이 머무는 침대에서 눈을 감는 10살 넘은 진돗개가 많지 않다. 동물자유연대에 따르면 동물보호소의 보호 기간이 끝나 안락사에 처해지는 믹스견이 열 마리 중 셋, 33.3%(2020년 기준, 2만 3944건)이다.

나무씨는 기자에게 당부했다.

"저는 기사를 아름다운 이야기로만 포장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더 이상 죄 없는 강아지가 파양 당하고 상처받는 일이 없도록 정말 강아지를 키울 수 있는 결심을 한 분들만 강아지를 키웠으면 좋겠어요. 한국이라는 나라가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섰다고 해도 한국에서 강아지들이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고 동물권이라는 것이 얼마나 멀리 있는 일인지를 우리는 고민해야 합니다."
 
 지뉘의 마지막 모습.
ⓒ 지뉘 보호자 나무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