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관극' 논란? 내가 '열정 관극자' 선호하는 이유

윤용정 2023. 12. 26.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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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꼬기 전에 기본 에티켓 장착은 우선... 주변 배려하면서 공연 즐기는 문화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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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정 기자]

최근 초등학교 3학년 딸과 함께 어린이 뮤지컬을 보러 갔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좋아서 목소리가 커지고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놀란 건 아이들 때문이 아니었다. 타인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어른들의 관람 에티켓 때문이었다.

우리 앞쪽에 한 아이와 엄마가 앉았다. 아이 엄마는 아이 손을 잡고 몸을 앞쪽으로 숙인 자세로 앉아 있어 내 시야를 많이 가려 방해가 됐지만, 아이를 챙기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라서 내가 옆으로 허리를 꺾어 보고 있었다. 아이 엄마는 중간중간 아이에게 말을 걸기도 했는데, 공연장이 전체적으로 조용한 분위기는 아니라서 거기까지도 이해를 했다.

잠시 뒤에 지각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비어있던 앞쪽 자리가 채워지자 아이의 시야가 막혔는지 갑자기 이 사람이 아이와 자신의 자리를 바꿔 앉았다. 그로 인해 키가 작은 내 딸의 시야가 막혀 버렸다. 할 수 없이 나도 딸과 자리를 바꿔야 했다. 

수십명 지각한 입장객들에게도 화가 났지만, 주변은 전혀 배려하지 않은 채 마치 자기 아이를 따라 아이가 된 듯한 앞자리 부모의 태도에도 살짝 화가 났다. 아무리 어린이를 위한 공연이라지만 에티켓까지 어린이가 될 필요는 없지 않나.

'시체 관극' 단어를 아시나요

요새 여기저기서 화제가 되고 있는 '시체 관극' 관람 문화는, 어쩌면 이런 일들을 너무 많이 당해서 예민해진 사람들에 의해 생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체 관극은 말 그대로 움직이지 말고 숨소리도 내지 말고 시체처럼 앉아서 공연을 관람해야 하는 비싼 뮤지컬 공연장 분위기를 비꼰 말이다(관련 기사: '시체관극' 논란 부른 기자의 노트 필기, 대체 뭐길래 https://omn.kr/26rv7 ).

뮤지컬을 좋아하는 나는 한 달에 한번 정도 공연을 보러 간다. 세종문화회관, 예술의 전당, 블루스퀘어 등 대형 극장에서 공연하는 뮤지컬의 vip석은 15~18만 원의 비싼 가격임에도 티켓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 최근 본 뮤지컬 티켓 유명 배우가 나오는 공연 티켓은 비싼 돈 주고도 사기 힘들다
ⓒ 윤용정
 
내가 꼭 앞자리에서 보고 싶었던 웃는 남자 박효신, 오페라의 유령 조승우, 지난주에 본 레미제라블 최재림의 공연 티켓을 사기 위해 티켓 오픈과 동시에 예매 사이트에 접속한 경험이 있다. 주변 지인들까지 동원해 티켓팅을 했지만 1층 중간이나 측면 쪽 자리가 내가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였다.

큰돈 내고 어렵게 구한 티켓이니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무대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이런 대형 뮤지컬의 경우 관객의 호응과 공감을 유도하는 장면은 거의 없다. 내가 원하는 것 역시 공감보다는 감동이다. 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춰 노래하는 배우들의 목소리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조용히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샤롯데 시어터에 <오페라의 유령>을 보러 갔을 때, 공연이 시작 됐는데도 옆사람이 휴대폰을 닫지 않고 계속 문자를 했다. 함께 오기로 한 일행이 늦어지는 것 같았다. 어둠 속에 휴대폰 액정의 빛이 굉장히 거슬렸다. 몇 분 뒤에 일행이 들어왔고 그들이 소곤거려서 또 방해를 받았다.

지난주에 블루스퀘어에서 <레미제라블>을 볼 때는 앞사람이 몸을 좌우로 움직이며 보는 바람에 꽤 신경이 쓰였다. 이 공연장은 좌석 높낮이 단차가 낮아, 앞사람이 큰 키가 아니었는데도 내 앞 시야가 많이 가려졌다. 이 부분은 단지 앞사람을 탓해야 할 문제라기보다는 공연장 자체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값비싼 공연인만큼 공연장 환경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 블루스퀘어 공연장 안 무대 사진을 전혀 찍지 못하게 하는 극장이 있고, 공연 전 촬영을 허용해 주는 극장이 있다
ⓒ 윤용정
 
그런데 걱정도 조금 되는 게 사실이다. 최근 읽은 '시체 관극' 관련 기사 등을 사람들이 볼 때, 마치 모든 뮤지컬 관람객이 주변 관객들이 아예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공연을 관람하기를 원하는 것처럼 오해할까봐서다. 

통상 뮤지컬은 보통 한 시간 넘게 1부 공연을 하고, 중간에 15분을 쉬었다가 또 한 시간 이상 공연을 한다. 그 긴 시간을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목과 허리가 아파온다. 어쩔 수 없이 고개와 허리를 가끔 좌우로 움직이게 되는데 그 정도 움직임을 서로 불편하다고 하는 경우는 적어도 내 주위에선 보거나 들은 적이 없다. 옆에 앉은 관객이 박수도 치는 둥 마는 둥 할 정도로 너무 조용히 앉아 있으면 그게 오히려 불편하다. 

'시체 관극'이라고 비꼰다지만, 기본 에티켓을 지킨다는 전제만 있다면 나는 사실 그 반대를 더 선호한다. 주로 혼자 공연을 보러 다니는 나는 주변에 박수를 많이 치고 크게 웃는 사람이 앉는 게 좋다는 얘기다. 공연 중 대화나 휴대폰을 사용하거나 몸을 앞으로 숙이고 자리를 옮기는 등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싫지만, 공연을 즐기는 모습은 주위 사람들도 덩달아 즐겁게 만들기 때문이다. 

서로를 같은 공연을 보는 최소한의 동료애로 대하면 어떨까. 다음번 갈 공연에서는 시체 관극자, 무매너 관극자가 아닌 '열정 관극자'가 내 주변에 앉아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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