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 전투에서 승리하고 죽은 이순신의 노량해전
[이병록 기자]
▲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스틸컷 |
ⓒ 롯데엔터테인먼트,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해군사관학교 시절에 어떤 상급생은 "군인은 마지막 전투에서 승리하고 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많은 특출한 장군들이 최후 전투까지 승리한 경우는 드물다. 한니발과 나폴레옹도 마지막 전투에서 졌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이겼다. 그러고는 돌아가셨다.
더 불행한 것은 용맹한 장군들이 중도에 잘리거나 모함 등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는 것이다. 임진왜란 의병장 김덕령, 백제계 장군 흑치상지, 백제 부흥군 복신과 도침, 송나라 장군 악비는 모함을 받고 죽거나 정쟁으로 죽었다. 이순신 장군도 정탁의 구명이 없었으면 그런 길을 갈 수 있었다.
이순신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그동안 연속극이나 영화에서 수없이 다루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영화 제작을 만류했을 것 같은데, 이순신 영화 3부작이 모두 성공했다. 노량은 이제 시작했지만 예매율 1위에 벌써 이백만 명 넘게 봤다고 한다.
김한민 감독은 영화 순서, 배역, 전쟁 장면 등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 주었다.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며 자신이 만든 함대 대부분이 사라지고 기세가 등등한 적에 맞서 승산이 없던 전투를 치르는 명량 해전의 이순신은 최민식이 맡았다. 연전연승의 자신감과 패기에 찬 한산도 해전은 박해일이 맡았다. 최후 전투는 김윤석이 맡았다.
최초 명량 해전을 만들 때 김한민 감독이 도움을 받고자 찾아왔다. 공식적으로 요청하면 국방부나 해군에서 지원할 것이라고 조언하였다. 명량해전에서 고뇌하는 이순신을 그리라고 얘기했다.
김 감독의 작품 <최종 병기 활>에서 호랑이의 역할이 너무 컸다, 위기에서만 구해주고 나머지는 주인공의 활약에 맡겼다면 더 좋았을 거라 말했더니, 감독은 같은 지적을 많이 당했다고 웃었다. 그러면서도 <명량>의 회오리 물줄기나 <한산>의 거북선이 호랑이 역할을 그대로 하였다. 위기만 구하는 식으로 비중을 낮췄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노량>에서 호랑이 역할을 뭐가 하나 궁금했는데 다행히도 없었다.
<한산>에서 아쉬운 점은 한니발의 칸네 전투처럼 유인과 매복, 조선 선박의 빠른 회전 능력 등 기동전을 부각해야 했다. <노량>에서 보인 기동성이 <한산>에서 나왔으면 더 좋았겠다는 뜻이다. <노량>에서 아들 죽음 장면은 너무 길고, 연합 작전에서 작전권이 없는 조선군 지휘관으로서 한계를 느끼는 내용이 나오길 바랐다. 발포 만호 때 상관이 오동나무를 베어 오라던 명령을 거부했던 강직한 이순신이 진린 포섭에 많은 공을 들인 부분이 아쉽게도 없다.
영화 시작에서 선조가 '재조지은'을 언급하는 장면이 나온다. 장병들이 열심히 싸워서 이긴 것이 아니고 명나라가 선조를 위해서 군대를 보냈기 때문에 이겼다는 논리이다. 선조가 도망갈 때 옆을 지키며 호종하면서 따라갔던 120명이 공신이 되었고,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공을 세운 선무공신은 겨우 18명이다. 당시 선무일등공신이 권율, 이순신, 원균이다. 2등 공신으로 올라온 원균을 선조가 1등 공신으로 올렸다.
영화 마지막에 상 지내는 모습이 나오고 이어서 선조가 이순신 죽음 소식에 슬퍼하지 않고 (그런 하찮은 보고를 밤늦게 하지 말고) 내일 보고하라고 무시하는 장면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왕보다 백성에게 인기가 많았던 이순신이고, 유성룡이 자리를 물러나자마자 그를 죽이라는 상소까지 난무한 상황에서 전쟁에서 살아남은 들 그 후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죽었다는 설이 남아있다.
일본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이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조선 수군의 활약으로 왜군은 수륙병진에 실패해 보급과 후속 증원이 없는 상태에서 싸워야 했다. 둘째가 왕이 성을 버리고 도망친 상황이다. 서울은 몰라도 평양성에서는 싸워볼 만했으나 도망치면서 군량미와 화약을 적에게 넘기고 말았다. 셋째가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 후방을 교란하고 전장에서 함께 싸웠다.
명량 해전에서 시작하여 노량 해전까지 영화 세 편, 서울의 봄에서 시작하여 나폴레옹과 노량 해전까지 세 편을 마치면서 한 해를 마무리한다. 성탄 연휴에 순천 왜성에서 여수 좌수영까지 걷고 여수에서 영화를 보려고 하였으나 감기와 추위 때문에 포기한다. 최후 전투에서 최후 죽음을 얘기하던 그 상급생은 전투 병과를 택하지 않고 지원병과를 택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병록은 예비역 해군 제독으로 정치학 박사이자 덕파통일안보연구소장입니다. 전) 서울시안보정책자문위원, 전)합동참모본부발전연구위원을 지냈으며 저서로 <관군에서 의병으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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