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살아야 하니까요, 일단 사랑을 합니다"
[이슬기 기자]
사랑 많은 배우가 되기 위해 글을 쓰는 배우가 있다. 윤로빈이다. 그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 <세상이 미워질 때 글을 씁니다>와 책 <속이 허해서 먹었어요>의 작가다. 동시에 부산국제영화제 '리퀘스트 시네마 - 연출할 결심' 기획 선정작 <귀여운 할머니>의 감독 겸 배우다. 모든 걸 잇는 키워드는 '사랑'이다.
▲ 공롱등의 한 카페에서 배우 윤로빈을 만났다. |
ⓒ 이슬기 |
영화는 예술가를 꿈꾸는 젊은 여성의 이야기다. 집에서 쫓겨난 한 가난한 여성이 길거리를 떠돌다 버려진 화분을 발견한다. 우연히 마주한 화분을 사랑하게 된 여성은 시들한 화분을 살리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추위를 피해야 하는 이유가 생긴 것이다.
뉴스레터 <세상이 미워질 때 글을 씁니다> 역시 세상을 사랑하기 위한 기록이었다. 그는 작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하루 한 편 메일을 보내왔다. 저서 <속이 허해서 먹었어요>에서는 스스로에게 "세상 곳곳엔 사랑이 있다"며 편지 형식의 글을 썼다. 꾸준히 사랑을 이야기해온 그를 지난 19일 공릉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도대체, '사랑'이 무엇인지 물었다.
세상이 미워질 때, 글을 씁니다
- 영화 <귀여운 할머니>에서 화분이 생기자 거리를 두고 담배를 펴요. 어떤 의미인가요.
"화분을 만나기 전에는 캐리어 바로 옆에서 담배를 피거든요. 근데 화분을 만난 후에는 캐리어 위에 화분을 올려놓고, 멀리 떨어져서 담배를 피워요. 여자에게는 담배가 유일한 삶의 낙이었지만 화분에게는 유해하니까요. 화분을 지키기 위해 거리를 둬요. 당시에는 거리를 두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너무 가까워지면 어느 순간 사랑이 집착으로 변하더라고요. 최근에는 무조건적으로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사랑들을 접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여전히 의심은 들지만요. 사랑은 마음의 여유나 자신을 믿는 힘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 화분은 어떤 존재인가요.
▲ 부산국제영화제에서 GV를 진행하고 있다. 가운데가 배우 윤로빈이다. |
ⓒ 윤로빈 |
"불만과 의문도 관심과 애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관심과 애정이 없는 삶. 그건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시 글을 쓰기로 했다. ··· 이제 세상이 미워질 때 글을 쓰는 나로 돌아갈 시간이다." 뉴스레터 '세상이 미워질 때 글을 씁니다' 가운데
- <세미글> 연재가 종료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세상이 덜 미운가요.
"여전히 글을 쓰고 있어요. 세상을 사랑하는 배우를 꿈꾸지만, 말 그대로 꿈이거든요. 세상을 사랑하고 싶은데 세상에 불만이 많으니 사랑을 계속 언급하면서 사랑으로 나아가보려고 해요. 초등학생 때부터 꾸준히 일기를 써왔어요. 일기를 쓰면 하루를 돌아보면서 자기 객관화를 할 수 있더라고요. 걱정했던 일이 돌이켜보니 별게 아니었던 날도 있고, 무심코 넘어간 일이 생각보다 큰일인 날도 있었어요. 일기를 쓰면서 안심하기도 하고, 바로잡기도 했죠. 연기와 사랑 모두 나 자신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믿어요. 나를 알아야 세상을 알게 되고,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도 알 수 있더라고요."
- 계속해서 '사랑'을 얘기해요, 세상을 사랑하고 싶은 이유는 뭔가요.
"세상은 정말 평생의 숙제가 될 것 같아요. 미운데 사랑하고 계속 안고 가야 해요. 세상이 밉다고 해서 여길 떠날 수는 없잖아요. 세상은 그대로 흘러가는 거고, 나는 세상에 속해 있는데. 세상과 잘 공존해서 잘 살아가기 위해서 세상을 사랑하고 싶어요. 어쨌든 난 살아야 하니까."
- 그런 원동력은 어디에서 오나요.
"제 삶이요. 내가 나를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해야 내가 살 맛이 나더라고요. 관성의 법칙이라는 게 있어서 세상이 한 번 미워지면 계속 밉고 싫은 것만 보이잖아요. 그럼 계속 살 맛이 안 나는 거죠. 사소하게라도 좋았던 일을 되새기면 사랑하는 힘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아요."
- 그럼 어제 좋았던 일이 있다면 뭔가요.
"세상 곳곳엔 사랑이 있다는 걸, 그 사랑에 가끔은 기대도 된다는 걸 네가 더 어서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너 역시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 윤로빈의 책 <속이 허해서 먹었어요> 가운데
"미운 마음조차 정화해서 돌려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 단편영화 '사랑니'를 촬영 중인 모습이다. |
ⓒ 윤로빈 |
- 세상이 미워질 때 글을 쓴다면, 세상이 좋아질 때는 무엇을 하나요.
"오히려 좀 쉬어요. 세상이 좋아지면 여유가 생겨요. 세상이 미워질 때 보통 불안해지는데, 그럴 때면 몸을 움직여야 해요. 세상이 밉고 세상이 싫으면 내가 사랑받을 거란 보장이 없잖아요. 그럼 난 사랑받기 위해서 무언가 해야할 것 같아져요. 그래서 세상이 좋아지면 오히려 힘을 풀 수 있는 것 같아요.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거죠."
- 최근에 세상 곳곳의 사랑을 발견한 적이 있나요.
"사람들이 되게 귀엽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정말 곳곳에 사랑이 있는 것 같아요. 카페 하나를 가더라도 카페에서 사장님이 나를 자주 만났다고 웃으면서 인사해 줄 때, 비가 갑자기 온다고 분식집 사장님이 우산 하나 챙겨줄 때 사랑을 발견했어요. 그래도 세상 사람들이 다 서로를 위해주면서 사는구나 싶고요. 일종의 부채감을 가지고 주변에 좋은 영향을 주려고 노력해요. 어떤 글을 내면 어떤 사람은 그 글을 읽고 위로를 받고 힘을 내서 또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나눠주겠죠. 그렇게 사랑이 점점 커지고, 세상이 순환하는 거 아닐까요."
- 미운 마음까지도 사랑하나요.
"미운 마음까지 사랑하지는 않죠. 예민한 기질이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에요. 스트레스를 꾹꾹 눌러 담으면 언젠가는 터지거든요. 현명하게 좀 대처할 수 없을까, 현명한 대처를 넘어서 좀이걸 이용해서 뭔가를 할 수 없을까 고민했어요. 저는 그게 글이나 영화라는 답이 나오더라고요. 미운 맘이 되도록이면 안 들었으면 좋겠지만, 그런 마음이 들었을 때 현명하게 쓰고 싶어요. 미운 마음조차도 선한 영향력으로 정화해서 돌려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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