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된 인물을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한 윤석열 정부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기자]
▲ 국가보훈부는 25일 '세계 속의 독립운동'을 주제로 조국 대한민국의 독립을 세계에 호소하며 헌신한 독립운동가 38명을 '2024년도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발표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승만, 김원식, 김창환, 데이지 호킹, 마가렛 샌더먼 데이비스, 플로이드 윌리엄 톰킨스, 프레드릭 에이 맥켄지, 루이 마랭, 채찬, 이사벨라 멘지스. |
ⓒ 국가보훈부 |
국가보훈부는 "이승만은 1919년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했고 주미외교위원부 위원장으로서 한인자유대회 개최와 한미협회 성립 등의 활동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승만의 임시대통령 역임과 재미 외교활동이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의 핵심 사유가 됐음을 보여주는 설명이다.
이승만의 50회 생일 사흘 전인 1925년 3월 23일, 임시정부는 그를 임시대통령직에서 탄핵했다. 왕조시대를 체험한 당시 사람들한테 나라의 명은 하늘의 명처럼 지엄했다. 임시정부의 '명'도 마찬가지다. 이승만이 받은 '천명'은 '임시정부에서 나가라'라는 것이었다.
임시정부 '임시대통령 이승만 심판위원회'가 작성한 탄핵서는 "이승만은 외교를 빙자하고 직무를 떠나 5년 동안 원양일우에 편재해서 난국 수습과 대업 진행에 하등 성의를 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라고 지적했다.
1919년 9월에 대통령으로 선출된 그가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에 첫 출근한 날은 1920년 12월 13일이다. 1925년에 탄핵되기 전까지 상하이에 체류한 기간은 6개월 밖에 안 된다. 그나마 그 6개월 동안에도 툭하면 상하이 밖으로 관광을 떠났다. 대통령 재임 기간에도 주로 하와이에 체류한 그는 독립운동가들의 눈에는 '원양일우에 편재'한 사람이었다.
임시정부가 그를 탄핵한 것은 출근 일수가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성의가 없다는 게 핵심 사유 중 하나였다. "대업 진행에 하등 성의를 다하지 않을 뿐 아니라"라고 말했다. 임시정부의 대업은 독립운동이다. 독립운동에 대한 성의가 없다는 것이 핵심적인 탄핵 사유였다.
이승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신뢰할 수 없다는 점도 또 다른 사유였다. 근거 없는 말을 퍼트리곤 했던 것이다. "허무한 사실을 제조·간포해서 정부의 위신을 손상시키고 민심을 분산시킨 것"도 탄핵서에 명시됐다. 사람들을 뭉치게 하기보다는 갈라놓는 캐릭터였던 것이다.
평소에 성의 없던 그가 뭔가 일을 하면 그 일은 독립운동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방해가 되곤 했다. 탄핵서는 "정부의 행정을 저해하고 국고 수입을 방해"했다고 말한다. 그런 뒤 "이와 같이 국정을 방해하고 국헌을 부인하자는 자를 하루라도 국가원수의 직에 두는 것은 대업 진행을 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 독재자 논란에도 이승만 트루먼 동상 제막식이 7월 27일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열렸다. |
ⓒ 조정훈 |
이승만은 3·1운동 직후인 1919년 5월 워싱턴에 집정관총재사무소를 개설했다. 임시대통령이 된 그해 9월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구미주차위원회를 개설했다. 구미위원부로 불린 이 조직은 탄핵 보름 뒤인 1925년 4월 10일 임시의정원의 구미위원부 폐지령에 의해 해체됐다. 엄밀히 말하면, 이 폐지령에 의해 임시정부와 구미위원부의 관계가 끊어진 것이다.
그때 임시정부에서 쫓겨난 이승만이 임정의 중책을 다시 맡게 되는 계기가 있었다. 1931년에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켜 중국 독점의 의도를 드러내고 이로 인해 미국 등 서방세계와 일본의 관계가 나빠진 것이 그 계기였다. 대미 외교가 대일 압박의 유용한 수단으로 부각되는 이 시점에 이승만이 다시 떠올랐다.
임시정부는 1932년에 이승만을 국제연맹과 교섭할 전권대사로 임명하고 1933년에 국무위원으로 임명했다. 일본의 하와이 진주만 기습 6개월 전인 1941년 6월에는 주미외교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이로써 이승만은 근 20년 만에 임시정부의 대미외교 당국자로 다시 떠오르게 됐다.
보훈부는 "주미외교위원부 위원장으로서 한인자유대회 개최와 한미협회 성립 등의 활동을 했다"며 이승만을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한인자유대회 또는 한인자유회의는 이승만이 이 시기에 지지자들을 묶어서 결성한 조직이고, 한미협회는 대미 활동을 지원해줄 미국인들을 중심으로 결성한 조직이다.
주미외교위원장이 된 이승만은 임시정부에 대한 승인과 군사 지원을 받아낼 임무를 맡았다.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도리어 해를 끼쳤다. 해방 직전에 임시정부가 광범위한 국제적 지지를 획득할 기회를 무산시킨 장본인이 바로 그다.
8·15 해방 전인 그해 4월 2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국제연합을 창립하기 위한 회의가 열렸다. 독일의 점령하에 있는 망명정부들도 회의에 초대됐다. 일본·독일·이탈리아에 맞서 싸운 국가나 망명정부는 회의에 참여할 수 있었다.
중국 국민당 정부는 한국 임시정부의 참여를 지지했다. 미국은 조건부 지지를 밝혔다.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이 2011년 8월 12일 자 <한겨레>에 기고한 '[왜냐면] 이승만은 독립의 훼방꾼'이라는 기사에 따르면, 미국이 내건 조건은 재미 한국인들이 한국 대표단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이 그 조건을 제시한 이유가 있다. 김자동 회장은 열렬한 이승만 지지자이자 경무대 고문관이었던 로버트 올리버가 쓴 <이승만과 미국의 한국 참여 1942~1960>의 일부를 원문 그대로 소개했다. 미국이 재미한국인들을 참여시키려 한 의도가 여기서 설명된다.
"한국의 여러 민족주의 분파는 국무부의 고무와 실제적 협조하에 통합한인위원회로 편입되도록 한다. 여기서 기대하는 바는 전 한국의 연립정부를 수립하는 데 있어서 공산주의자들의 협력을 얻는 데 있다."
▲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이승만 트루먼 동상 제막식이 열린 7월 27일 시민사회단체들이 동상 건립을 비판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
ⓒ 조정훈 |
이 조건을 반대한 것이 이승만이다. 이승만은 이 문제를 놓고 미국 국무부와 마찰을 일으켰다. 이는 이승만이 임시정부의 국제연합 회의 참가 문제를 방기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올리버의 책은 "이 박사는 미 국무부의 비난과 한인 반대자들의 심한 질타를 받으며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워싱턴으로 귀환했다"고 설명한다.
임시정부의 대미외교를 책임진 이승만의 이 같은 행동은 임시정부가 국제연합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박탈시켰다. "이승만의 이런 고집 때문에 미주 지역 한인 전체의 지지를 받는 임시정부 대표단이 유엔 창립총회에 참가할 기회가 박탈되고 말았던 것"이라고 김자동 회장은 <한겨레>에 썼다.
8·15 해방은 미·소 양군의 일방적 주둔으로 인해 불완전한 해방이 됐다. 임시정부가 국제연합 결성에 참여했다면, 그 같은 일방적 주둔이 제약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 가능성을 날려버렸으니, 1925년에 이어 1945년에도 이승만이 민족에 중죄를 지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죄과를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일제강점기하에서는 독립운동을 훼방하고, 해방 뒤에는 분단을 조장하고 민족통일을 방해했다. 대통령이 된 뒤에는 민간인 학살을 자행하고 친일청산을 방해했다. 또 민주공화국 이념을 파괴하고 장기 독재와 선거부정을 저질렀다. 그런 뒤 국민들이 궐기하자 하와이로 달아났다.
그런 이승만이 임시대통령과 대통령을 지냈다는 이유로, 또 형식적인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이승만기념관 및 이승만 동상 건립을 추진하고 그를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는 것은 윤석열 정부의 가치관을 의심하게 만든다. 이승만이 벌인 죄악들을 윤석열 정권도 싫어한다면, 이처럼 그를 미화하고 찬양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승만을 쫓아낼 때 임시정부는 "하루라도 국가원수의 직에" 둘 수 없는 자라고 규정했다. 임시정부는 그를 단 하루도 더 이상 둘 수 없다고 했는데, 윤석열 정부는 2024년 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그를 임명했다. 국민들에게는 고역스런 한 달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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