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교사인 내가 영화 '노량' 보고 실망한 까닭
[서부원 기자]
부러 조조를 선택했는데, 스크린 바로 앞줄을 제외하곤 관객들로 가득 찼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부터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앳된 아이들까지 남녀노소가 뒤섞여 있었다. 지난 성탄절 아침, 개봉한 지 6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영화 <노량 : 죽음의 바다>를 관람했다.
"이보다 더 웅장하고 입체적인 해상 전투 장면을 담은 영화를 본 적이 없다."
"가슴을 때리는 음향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마치 3D 게임을 보는 것 같았다."
"노량대첩의 역사적 사실 외엔 그 어떤 내용도 담기지 않은 밋밋한 영화였다."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모가 지나치게 강조되다 보니, 신파극이 가미된 어중간한 '국뽕' 영화가 되고 말았다."
▲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스틸컷 |
ⓒ 롯데엔터테인먼트,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함께 영화를 본 이들의 소감이 극단적으로 갈렸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기술적으로는 단연 최고였지만 내용 면에선 적잖이 아쉽다는 거다. 혹자는 2시간 반 동안 눈은 호강했지만, 가슴 한구석은 내내 허전했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러닝타임 대부분을 해상 전투에 할애했다.
며칠 전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서울의 봄>처럼 이 작품 역시 '역사가 스포일러'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철수를 명하는 첫 장면과 이순신이 적의 총탄에 쓰러지는 마지막 장면은 누구든 예측할 수 있다. 실제 역사로 치면, 그사이 석 달 동안 벌어진 일들을 어떻게 묘사하느냐가 관건일 뿐이다.
영화에 등장한 실제 역사 인물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등 '옥에 티'가 없진 않지만, 스치듯 언급되어 딱히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삼척동자도 아는 역사를 소재로 한 만큼 되레 역사적 상상력의 부족이 아쉬울 따름이다. 상상력의 나래를 펼치려면 덜 알려진 역사일수록 유리한 법이다.
역사든 영화든 노량대첩의 주인공은 네 사람이다. '성웅' 이순신과 적군에 매수된 명군의 도독 진린, 퇴로를 열라는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 그리고 고립된 고니시를 구하기 위해 출병한 시마즈 요시히로. 그들이 어떻게 손잡고, 의심하고, 갈등을 빚고, 전투를 벌였는지는 우리에겐 이미 상식이다.
보탤 것도, 덜어낼 것도 없어서였을까. 1598년 음력 11월 19일 새벽에 벌어진 이순신의 최대이자 최후의 전투를 실감 나게 재현하는 데에 모든 기술적 역량을 쏟아부은 느낌이다. 북소리와 함께 자막이 올라갈 때, 노량대첩의 혁혁한 전과를 소개하는 대목이 이를 짐작하게 한다.
'죽음의 바다'라는 영화의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 노량대첩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통틀어 가장 참혹했던 전투였다. 이 싸움을 끝으로 7년간의 길고 길었던 전쟁의 종지부를 찍었다. 더욱이 이순신이 이 전투에서 최후를 맞았으니, 역사 영화에는 더 없이 맞춤한 소재이긴 하다.
그러나 바로 이 점이 기회이자 위기로 작용했다. 완벽한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동원해 박수갈채를 받고 있지만, 동시에 '내러티브'의 힘을 전혀 느낄 수 없다는 혹평이 따라붙는 건 불가피해 보인다. 심지어 돌고 돌아 '국뽕'이라는 당의정을 입혔다는 조롱까지 나오는 마당이다.
셋째 아들 이면의 죽음을 결코 잊지 못하는 아비의 복수심이 전쟁의 가장 큰 원인인 양 강조되는 대목은 적이 당혹스럽다. 적들을 열도 끝까지 쫓아가 항복을 받아내야 하는 이유가 다시는 침략할 마음을 먹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이순신의 포효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해 이야기를 엮어낸 것 치곤 너무 어색하다.
차라리 수군통제사로서, 칠천량 전투 등에서 전사한 숱한 부하 장수들의 원한을 갚기 위한 싸움이었다는 것만 강조됐더라면 더 나았을 성싶다. 이순신이 출전을 앞두고 전사자 명부를 태우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그들을 향한 미안함과 결연한 의지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어서다.
특히 이 장면에선 이 영화가 김한민 감독의 전작인 영화 <명량>과 <한산 : 용의 출현>에 이은 작품임을 암시한다. 전작에서 등장한 이순신의 휘하 장수 어영담(안성기 분)과 이억기(공명 분)가 클로즈업되면서 관객들의 기억을 소환한다. 물론, 전작을 보지 않은 이들이라면 다소 뜬금없게 느껴질 법도 하다.
역사 교사로서, 처음엔 영화 <노량>이 제작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은근히 기대한 게 있다. 모두가 아는 이순신의 최후 대신, 그가 굳이 적군의 퇴로를 차단하고 불퇴전에 임한 나름의 이유를 '팩션'으로 그려낼 줄 알았다.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유언은 아무래도 식상하다.
▲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스틸컷 |
ⓒ 롯데엔터테인먼트,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한때 노량대첩이 이순신 스스로 죽기를 각오한 싸움이라는 이야기가 회자되곤 했다. 일부에선 지금도 나름의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명의 장수 진린조차 감복할 만큼 이순신의 공이 컸고 따르는 백성이 많았으므로 용렬한 선조가 그를 용납하긴 힘들었을 거라는 논리다.
적통이 아니었던 탓에 주변을 끊임없이 의심했던 선조는 어릴 적 총기를 잃고 충신과 간신을 분별하지 못했다. 왜군의 간계에 속아 이순신을 파직시키고 원균을 통제사로 앉힌 이가 바로 선조다. 광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홍의장군' 곽재우와 함께 경상우도를 방어한 나이 스물아홉의 김덕령을 옥사시키도 했다.
전란의 와중에도 동인과 서인으로 갈리어 권력 투쟁을 벌였던 지배층의 무능도 그런 의심을 낳게 했다. 국가의 녹을 먹는 무관으로서, 붕당정치의 난맥상 속에 논공행상을 기대하기는커녕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는 선택조차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조정에는 이순신의 전공을 시샘하고 모함하는 자들이 적지 않았다.
물론, 영화의 곳곳에 은근슬쩍 내비치기는 한다. "이미 승리한 전쟁"이라며 명군 편에 서서 이순신을 견제하는 좌의정 윤두수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또, "광해 저하가 옹립될 때까지 수군 병력을 유지하라"는 말에 "모두가 전쟁 후만 생각하고 있다"며 서찰을 불태우는 이순신의 모습에서도 엿볼 수 있다.
내심 이것들 모두가 복선일 것이라 여겼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이순신이 고뇌에 찬 모습으로 당시 조정의 무능과 부패를 꾸짖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렸다. 명군의 부총병 등자룡(허준호 분)이 "통제공의 원수는 곧 우리의 원수"라며 군사들을 독려하는 대목에선 더욱 확신이 들었다.
결국 헛물만 켠 셈이 됐다. 영화는 다 아는 이야기로 시작해 예상했던 대로 끝났다. 다만,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작품의 백미는 '눈맛'에 있다. 흠잡을 데 없는 해상 전투 장면은 앞으로 이 영화가 기술적 표준으로 자리매김할 듯하다. 누구 말마따나 '대작'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개인적으로 지금껏 머릿속에 잔상으로 남아있는 장면이 하나 있다. 이순신의 상여가 지나갈 때 그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백성들이 엎드려 우는 바로 그 장면. 이순신의 위대함은 23전 23승이라는 전무후무한 전공보다도 당시 부하 장수를 비롯해 장삼이사 백성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는 사실에 기인함을 보여준다. 만약 내게 이 영화의 부제를 지어보라면, '별이 된 이순신의 바다'라고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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