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하고 유쾌한 그녀! 김민경과의 한바탕 수다
Q : 코스모는 2024년 1월호부터 ‘Fun Fearless Female’을 매달 1명씩 선정해요. 그 첫 번째가 김민경 씨입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린, 유쾌하고 용감한 여성이었어요.
A : 딱 전데요? 잘 불러 주셨어요. 하하하.
Q : 김민경에게 재미있는 건 뭔가요?
A : 일 그리고 축구! 공 찰 때 너무너무 행복해요. 〈골 때리는 그녀들〉(이하 〈골때녀〉)을 촬영하면서 축구에 푹 빠졌거든요. 일주일에 세 번 모여서 연습해요. 개그우먼 선배부터 후배들까지 모여 땀 흘리면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죠.
Q : 이전에 〈골때녀〉의 다른 출연진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다들 공 차는 즐거움을 처음 맛보고 들떠 있었죠. 여자들은 어릴 때부터 축구를 해볼 일이 없잖아요. 남자애들이 운동장에서 뛸 때 여자애들은 공기놀이하곤 했으니까.
A : 맞아요! 저는 사춘기 때 괜히 가슴이 신경 쓰여 남들 앞에서 뛰지도 못했거든요. 〈골때녀〉 이후로 10대 소녀들, 어머니들, 여성 직장인들 등 여성 축구팀이 정말 많이 생겼대요. 제가 오늘 아이들 학습 만화 〈민경 장군의 수상한 운동 클럽 1:축구와 풋살〉 발매 기념 사인회를 했는데, 여자아이들도 많이 와서 사인을 받았어요. “너는 무슨 운동 좋아해?”라고 물으니 “저 축구요! TV로 언니 축구하는 거 봤어요. 저도 축구해요”라고 신나서 얘기하더라고요. 뿌듯했죠. 그러고 나서 친구와 신당동 떡볶이집에 갔는데 여자아이들이 운동복을 입고 우루루 들어오는 거예요. 물어보니 축구를 한대요.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에 몰래 계산하고 나왔어요.(웃음) 제가 이전에 나이키 모델을 할 때 슬로건이 ‘모두의 운동장’이었는데, 운동장은 누구든 다 함께 축구든 농구든 할 수 있는 곳이란 의미였죠. 여성이 설 수 있는 곳이 점점 넓어지고 있어서 너무너무 좋아요.
Q : 그렇다면 어떤 게 용기 있다고 생각해요?
A : 자기 자신을 높이 사는 것. 그렇기에 도전을 망설이지 않는 것.
Q : 김민경은 용감한가요?
A : 저는 용감하지 못한 사람이었어요. 내성적이고 자존감도 낮고 소극적이고 주변인들이 “네가 어떻게 연예인이 됐지?”라고 말할 정도로요. 안전한 걸 추구해서 늘 먹던 것만 먹고 익숙한 것만 했죠. 그런데 일을 하면서 바뀌었어요. 〈맛있는 녀석들〉을 하면서 처음 보는 음식들을 먹게 됐는데, 세상에 너무나 맛있는 게 많은 거예요. 도전하지 않았더라면 이 맛을 모르고 평생을 살았겠죠.(웃음)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이하 〈운동뚱〉)을 하면서는 마흔 살이 되도록 안 하던 수많은 운동을 해보고 재미를 알게 됐고요. “너는 이 운동 정말 잘하잖아” 같은 긍정적인 얘기를 들으면서 자존감도 높아졌어요. 그리고 깨달았어요. 용감한 사람이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요.
Q : 〈운동뚱〉으로 ‘민경장군’, ‘기억을 잃은 특수요원’ 캐릭터로 사격, 웨이트, 종합격투기, 킥복싱, 주짓수, 야구, 축구, 팔씨름, 허벅지싸움까지 어마어마한 힘과 뛰어난 운동 능력을 선보였고, 전성기를 누리고 있어요.
A : 정말 마음에 드는 별명입니다. 힘 쓰는 거 하나는 자신 있어요.(웃음)
Q : 이 방송을 하기 전까지는 운동을 전혀 안 했다는 게 믿기질 않아요.
A : 필요성을 못 느꼈어요. 왜냐하면 제가 너무 건강하거든요.(웃음) 고혈압도 당뇨도 없고 매년 건강검진 결과도 잘 나왔죠. 그런데 운동을 하니까 확실히 제 체력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좋다는 걸 느끼면서, 더 건강해지는 느낌도 확실히 받아요.
Q : 어떤 운동이든 잘해내는 김민경에겐 온갖 챌린지가 주어졌죠. 심지어 맨몸으로 27톤 트럭을 끌기도 했어요.
A : 현장에서 “말이 안 돼요, PD님. 어떻게 사람이 이걸 끌 수 있어요?”라고 했는데 남성 출연자분들이 그걸 끄는 거예요. 그런데 레슬링 선수 (장)은실이는 그걸 못 끌었죠. 승부욕이 생겼어요. 여기서 내가 못 끌면 “여자니까 괜찮아”라는 말을 듣겠구나. 그래서 죽을힘을 다해 차를 끌었죠. “어, 바퀴가 움직여!”라는 말을 듣자마자 ‘어, 이거 끌 수 있겠는데?’ 싶었어요. 절대 끌리지 않을 것 같던 27톤 차가 움직였죠. 내가 또 이렇게 뭔가 하나를 해냈구나 싶어 행복했어요.
Q : 사격 국가대표로 출전한 것도 대단한 일이었죠.
A : 정말 주변 사람들 덕을 많이 봤어요. 저 혼자였다면 절대로 그 도전을 하지 않았을 텐데, 감독님이 제게 권유하면서 절 슬쩍 긁더라고요. “국가대표 아무나 할 수 없어, 누나. 못 할 수도 있어. 자격증도 따기 힘들걸?” 이렇게요. 제가 그렇게 자극하면 한다는 걸 아니까 그렇게 말한 거죠.(웃음) 그래서 “아니, 나 할 수 있어” 하고 자격증을 땄죠. 그리고 “땄으니까 세계 대회 한번 나가볼까?” 하기에 “그건 너무 부담스러워” 했더니 “나가서 실격당할 수도 있어요”라고 해서 “내가 실격은 안 당하지!”하고 출전했죠. 하하하. 제가 언제 이런 경험을 해보겠어요? 제작진에게 감사해요. 전 혼자는 못 하지만, 누가 함께 하자고 하면 잘해낼 수 있어요.
Q : 힘과 운동신경은 타고났나요?
A : 일단 덩치를 타고났죠. 어릴 때 엄마가 슈퍼를 운영하셨는데 어린 제가 음료수 박스를 들고 배달을 가곤 했어요. 그리고 달걀을 진짜 좋아해서 어릴 때부터 많이 먹었는데 그때 쌓인 단백질이 다 근육이 된 건 아닐지.(웃음) 하지만 체력장 결과가 잘 나오진 않았어요. 저는 뭐든 느렸거든요.
Q :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하나요?
A : 누군가와 함께할 때는 강해요. 〈골때녀〉에서 같은 팀인 (오)나미나 (김)승혜 같은 친구들이 멘탈이 무너지면 제가 잡아주는 역할을 하죠. 저는 저 스스로보다 주변을 보면서 살아가는 사람 같아요. 강해지고 싶다는 생각도 ‘그래, 이들과 함께 해야지.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선 내가 강해져야지’라는 생각에서 비롯되거든요. 그게 20년 넘게 제가 일을 지속해온 힘인 것 같기도 해요.
Q : 어떤 게 강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A : 버티는 것. 저는 느리지만 끈기가 있어요. 지구력이 좋죠. 개그맨 공채에 계속 떨어질 때, 전유성 선배님이 “너 이 일을 진짜 하고 싶니?”라고 하시기에 그렇다고 했더니, “그럼 끈을 놓지 말고 붙잡고 있어”라고 하시는 거예요. 저는 빛나는 재능도 재치도 없지만 그것만큼은 잘할 수 있겠다 싶었죠. 그래, 포기 안 하면 되는 거야. 그래서 정말 포기하지 않고 일이 없을 때도 열심히 아르바이트하면서 붙잡고 있었어요. 마트 시식 코너 알바도 했고, 문제집을 만드는 알바도 했죠.
Q : 그렇게 긴 시간을 무명으로 보내고 28세에 〈개그콘서트〉(이하 〈개콘〉)로 데뷔했죠.
A : 여자들은 그 나이에 (〈개콘〉) 공채가 되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모두가 안 될 거라고 했죠. 하지만 어느 순간 기회라는 게 오더라고요.
Q : 어릴 때 꿈은 뭐였어요?
A : 대구에 살던 어린 시절, 제 꿈은 그냥 서울 가서 사는 거였어요. 사춘기 때는 모든 게 다 불만이었죠. 언니 두 명에 남동생 한 명인 가정에서 자랐는데,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다 양보해야 하고 참아야 할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자유롭게 살고 싶었죠. 내가 살지 못한 삶을 살아보고 싶어서 배우를 꿈꾸기도 했어요. 그러다 전유성 선배님이 ‘코미디시장’이라는 극단을 만들었는데, 이게 오디션을 보는 게 아니라 선착순이래요. 그래서 바로 가야겠다 싶었어요. 엄마의 반대를 무릅쓰고, 언니가 기차표값을 쥐여줬죠. 그렇게 서울에 상경했고 대학 동기 언니들의 자취방에 얹혀살면서 버텼어요.
Q : 그렇게 무대에 올라 남을 웃겨보니 어떻던가요?
A : 처음엔 심부름만 하다가 어느 순간 역할이 주어졌어요. 관객들이 저를 보고 웃는데, 그게 너무너무 행복한 거예요! 낯가림도 많고 부끄러움도 많던 저였는데, 누군가 저를 보고 웃는 걸 보면서 자신감을 얻었죠.
Q : 28세에 데뷔해 40세를 넘어 전성기를 맞았는데, 조금 느리더라도 제대로 확실히 해내고 있네요.
A : 저는 늘 그렇게 얘기해요. 제가 공채가 더 빨리 됐다면 지금의 좋은 동기들을 얻을 수 없었고, 더 빨리 대박이 났다면 〈운동뚱〉을 하기 전에 만난 귀한 인연들을 만나지 못했겠죠. 이렇게 급하지 않게 천천히 온 게 전 좋아요. 다시 태어나도 똑같이 이렇게 할 거예요. 내게 온 기회를 잡을 수만 있다면, 빠르든 늦든 시기는 중요하지 않아요.
Q : 개그우먼 김민경에게 코미디란 어떤 것인가요?
A : 저는 코미디가 다양하다고 생각해요. 웃기는 것만 코미디가 아녜요. 그 안엔 비극도 있고 희로애락이 담겨 있죠. 그중에서 제가 좋아하는 건 옛날 〈개콘〉의 ‘뮤지컬’이나 ‘대화가 필요해’ 같은 따듯하고 인간미 있는 코미디예요. 요즘 유튜브를 봐도 코미디가 참 다양하다는 게 느껴져요. 이제는 코미디언이 아닌 다양한 크리에이터들도 웃음을 주고 있죠. 여러 맛을 볼 수 있어 좋은 시대예요. 자극적인 것들 사이에서 저는 소소하고 잔잔한 즐거움을 주고 싶어요.
Q : 최근 유튜브 채널에 ‘365일 24시간 폭력 피해자 지원 여성긴급전화1366, 해바라기 센터’의 광고 영상을 촬영해 업로드했던데요. 정말 보기 좋았어요.
A : 직접 센터에 찾아가 전문가분들을 만나뵙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걸 알게 됐어요. 긴급하거나 어려운 상황에 처한 여성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준비돼 있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이걸 우려하실 것 같은데, 비밀 보장도 완벽하게 됩니다. 이 영상을 올리고 나서 많은 분들이 좋은 일에 동참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연락을 주셨어요. 제가 저의 영향력을 바르게 썼다는 생각에 되게 뿌듯했고, 앞으로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
Q : 저는 누군가가 무엇에 웃는지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엔 개그와 코미디도 사회적 약자를 웃음거리로 만들거나 비하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죠.
A : 동감해요. 전유성 선배님에게 개그를 처음 배울 때 그런 말씀을 들었어요. “웃음은 약자를 비하해선 안 된다”고. 이를테면 학교를 배경으로 코미디를 만든다고 쳐요. 거기서는 학생들이 아니라, 교장선생님이 훈화 말씀을 하다가 삐끗하신 걸 웃음 포인트로 잡는 게 맞는 거죠. 저는 누군가를 깎아내리는 코미디보다 모두가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따듯한 코미디를 하고 싶어요.
Q : 개그우먼이라 받는 편견도 있나요?
A : 밝고 억세고 강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역시 상처도 받는 똑같은 사람이에요. 개인적으로 오해를 받는 점이라면 김민경은 대장부처럼 리더십도 있고 화끈할 거라고 많이들 생각하시는데, 저는 손 떨려서 주식도 못 하는 사람입니다.(웃음)
Q : 사람들은 김민경을 어떤 사람이라고 말해요?
A : 주변에서는 좋은 사람이라고 해요. 저는 가까운 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달려가는 사람이거든요. 의리를 중시하죠. 대중분들은 어떨까…. 최근에 어떤 식당에서 팬분을 만났는데, “민경 씨는 진정성이 보여서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Q : 스스로 생각하는 김민경은 어떤 사람인가요?
A : 많이 부족하지만 많이 사랑받는 사람.
Q : 김민경은 무엇을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A : 저는… 마음이요. 그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고 생각해요. 인간은 절대로 혼자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제가 좌절할 때마다 저를 일으켜 세워주려고, 다시 나아가게 해주려고 내민 손길이 많았어요. 그렇기에 저도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려고 해요.
Q : 곁엔 누가 있나요?
A : 동기인 오나미, 박소영, 허민, 조승희, 그리고 정경미·김경아·성현주·권진영·송은이·김숙 선배…. 개그우먼들끼리는 되게 끈끈해요. 서로 많이 배우고, 저도 후배들에게 선배들이 베풀어준 것처럼 하려고 해요.
Q : 미래의 김민경에게 바라는 것 있어요?
A : 내가 마흔에 뭘 하고 있을까? 과거엔 이것 또한 두려움이었어요. 서른 살의 저는 마흔 살의 제가 결혼해서 애 낳고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 저는 또 다른 내 삶을 살고 있더라고요. 지금은 내가 50대가 됐을 때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도 두렵지 않아요. 분명 열심히 살고 있을 거거든요.
Q : 김민경을 보면서 꿈을 꾸는 소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 저의 장점은 끈기예요. 꿈을 꾸고 있다면, 끈을 붙잡고 있어요. 간절하게 바라면 기회는 옵니다. 그리고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하는 친구를 가까이 두세요. 저는 “너 이거 잘하잖아”, “이건 너밖에 못해”라고 말해주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일어설 수 있었어요. 제가 댓글 때문에 힘들어했을 때, 김준현 선배가 해준 말이 있어요. “너는 왜 너한테 안 좋은 얘기하는 사람만 봐? 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못 보고.” 그 얘길 듣고 큰 용기를 얻었어요.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친구를 곁에 두세요. 그리고 나 자신도 그런 말을 해줄 수 있는 친구가 돼주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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