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사랑한다’는 속삭임… 지금보다 좋을 때는 없습니다[아미랑]
암 치료를 끝낸 환자분의 사례를 들려드립니다. 70대 남성 A씨는 폐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A씨가 유난히 기억나는 이유는 언제나 결혼식장이라도 오듯 정장을 갖추고 진료실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힘든 항암 치료를 받으러 오는 날에도 양복에 넥타이까지 차려입고 오셨습니다. A씨 옆에는 그에 못지않게 멋진 차림새로 다정하게 함께 들어서던 부인도 있었습니다. 폐암 수술이 끝난 몇 년 후, 재발을 진단받았던 A씨는 4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잘 견뎌냈습니다. 5년 이상 꼬박꼬박 받은 검사에서 다행히 재발은 없었습니다.
한동안 발길이 끊겼던 그를 다시 만난 것은 어느 날 타과에서 온 협진에서였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그가 양복이 아닌 환자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저에겐 어딘가 어색했습니다. 항상 같이 오시던 부인은 안녕하시냐며 인사를 건네자 그분이 갑자기 목 놓아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수개월 전 사별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환자보다 건강해 보였던 부인이었기에 저도 놀라고 당황했습니다. 재발한 폐암도 이겨낸 대단한 의지와 긍정적 능력도, 평생의 동반자를 잃은 후부터는 그 힘이 사라지는 듯 보였습니다. 명랑함과 생기를 잃고 힘없이 휠체어에만 앉아 계셨습니다.
60대 여성 B씨는 재발한 유방암 4기를 진단받은 분이었습니다. 이전에 앓았던 뇌졸중 후유증으로 거동이 온전치 않아 휠체어를 주로 사용하시던 그 분은 아주 열성 넘치는 배우자와 함께였습니다. 자녀가 없어 서로를 더 애틋하게 아끼던 부부였습니다. 아내가 입원해 있을 때면 남편은 고령이라 힘들 텐데도 병동에 상주하며 아내를 극진하게 보살폈습니다. 병동 간호사들에게 “이게 필요하다, 저게 필요하다”며 잔소리를 톡톡하게 하시던 분이셨죠.
코로나가 휘몰아치던 계절의 어느 날, 진료실에 온 B씨의 옆에는 남편이 아닌 다른 여성 분이 계셨습니다. B씨는 “선생님, 저희 남편이 열이 나고 몸살이 났는데, 자기가 하루라도 더 일해야 내가 치료를 받는다며 기어이 일을 하러 나갔어요. 그날 일하고 와서 앓아눕더니 갑자기 숨쉬기가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응급실로 오자마자 돌아가셨어요”라며 그동안의 속사정을 말했습니다. 환자의 전이성 유방암은 치료제에 잘 반응하며 전혀 나빠지지 않았지만, 이후로 점차 이유를 모르게 시름시름 앓았습니다. 병도 치료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밥맛도 없고 기운도 없다던 그 분은 몇 달 못 가, 코로나19의 희생양이 됐습니다.
저에게 오랫동안 진료 받던 폐암 4기 환자인 C씨도 계십니다. 보호자 역할을 하던 형과 형수님이 계셨습니다. 환자분이 돌아가시고 수년 후에는 형이 폐암 환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 환자복을 입은 C씨의 형수를 우연히 마주쳤습니다. 그 역시 암이었습니다.
환자와 보호자는 종종 서로 처지가 바뀌기도 합니다. 의사도 진료실 밖에선 언젠가 보호자이고 환자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언제든 아플 수 있고, 그저 서로서로 보호하는 존재들이라는 의미겠지요.
인정하기 고통스럽지만 의학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치료하고 치료를 받아도 암은 완치되지 못하거나 재발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암을 이겨낸 후, 다른 병마가 우리를 덮치기도 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이해하고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현상 속에서 선물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아닐까 합니다. 유한하고 연약한 우리는 다만 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내가 육체적으로 돌봄을 받는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껴야만 하거나, 반대로 상대방의 수고를 당연하게 여겨도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보호자가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이라서 일방적인 희생을 해야 하는 것도 더더욱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내 옆에 함께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고, 나다운 삶을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아닐까요?
“당신의 보살핌을 받아 지금의 내가 있습니다.”
“내 도움을 소중하게 여겨주는 당신이 있어서 살아가는 힘이 더욱 납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사랑합니다.”
기회를 잃지 마세요. 바로 지금 이 순간 내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의 손을 꼭 잡고, 눈을 바라보고, 얘기하셔야 합니다. 고맙다, 사랑한다,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 내 삶의 의미는 당신이다 라고요.
저도 글을 통해 만나는 얼굴 모를 여러분에게 고백합니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당신 덕분에 제가 더 노력하게 됩니다. 제 삶이 의미를 가집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인생을 응원합니다!
암 환자 지친 마음 달래는 힐링 편지부터, 극복한 이들의 노하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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