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자의 V토크] 에스페호와 무라드가 만든 크리스마스 파티

김효경 2023. 12. 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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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OK금융그룹과 경기에서 활약한 에스페호(가운데)와 무라드(오른쪽), 왼쪽은 정재균 통역. 사진 한국배구연맹

대한항공에 합류한 파키스탄 출신 무라드 칸(23)이 V리그 신고식을 치렀다. 필리핀 출신 마크 에스페호(28)도 힘을 보태며 '크리스마스 파티'를 흥겹게 했다.

대한항공은 25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3~2024 V리그 남자부 3라운드 OK금융그룹과의 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3-0(28-26, 25-18, 25-22)으로 승리했다. 대한항공은 연패에 빠지지 않고, 3라운드 최종전을 승리하며 반환점을 돌았다.

대한항공은 이날 선수들이 고른 득점을 올렸다. 임동혁이 14득점, 에스페호가 11점, 김규민이 8점, 그리고 무라드가 6점을 올렸다. 에스페호는 1세트에만 서브득점 3개를 올리며 OK금융그룹의 리시브 라인을 무력화시켰다. 무라드는 한국에 온 지 일주일도 안 돼서 코트를 밟았고, 교체로만 세 세트에 투입됐지만 무난한 경기력을 보였다.

25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OK금융그룹과 경기에서 서브를 넣는 마크 에스페호. 사진 한국배구연맹

에스페호는 올 시즌 도입된 아시아쿼터 제도를 통해 한국 리그를 밟았다. 시즌 초반엔 코트에 나서지 못했으나, 3라운드에선 주전 아웃사이드 히터로 꾸준히 뛰었다. 리시브는 약간 흔들리지만 강서브와 펀치력이 돋보인다.

에스페호는 강한 서브에 대해 "계속해서 틸리카이넨 감독이 '강하게 밀어부쳐라. 터트려라'고 주문한다. 상대 리시브 라인이 두려워하기 때문에 들어가기만 하면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걸 믿었다. 미스가 되던지 에이스가 나던지 5대5란 마음으로 강하게 넣었다"고 했다. 최근 꾸준히 출장해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에스페호는 "그 전과 가장 큰 차이는 기회를 얻어서라 생각한다. 오늘이 내 날은 아니었지만, 또 올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호주 출신 링컨 윌리엄스가 허리 통증으로 부상중인 대한항공은 지난 22일 일시 교체 선수로 무라드를 영입했다. 2m5㎝ 장신 아포짓 스파이커인무라드는 지난 8월 아시아선수권과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파키스탄 국가대표로 한국을 상대했다. 당시 득점력을 뽐냈고, 불가리아 리그에서 뛰던 그를 대한항공이 점찍었다. 대한항공은 비자 문제 등으로 험난한 과정을 겪었지만 빠르게 수습해 24일 선수 등록까지 마쳤다.

25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OK금융그룹과의 경기에서 공격을 시도하는 대한항공 무라드. 사진 한국배구연맹

불과 팀에 합류한 지 일주일도 안 됐다. 틸리카이넨 감독도 "아직 우리 전술에 익숙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임동혁이 후위, 한선수가 전위로 갈 때 무라드는 세터 유광우와 짝을 지어 더블 스위치(세터와 아포짓을 동시에 교체하는 전술)로 1·2·3세트에 모두 투입됐다. 8회 공격을 시도해 5회 성공(1범실)하고, 블로킹 하나를 포함해 6점을 기록했다. 높은 타점을 살린 공격이 눈에 띄었다.

무라드는 "경기에 뛰어서 좋고, 이겨서 좋다. 대한항공에 힘을 주고 싶다. (파키스탄 출신 선수로는)첫 역사이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했다. 연습 과정에선 다소 힘들어했던 무라드는 "최선을 다 해서 보여줄게 많다고 생각한다. 100%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라고 했다.

25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OK금융그룹과의 경기 전 연습하는 대한항공 무라드. 사진 한국배구연맹

대한항공은 무라드와 일단 8주 계약을 맺었다. 링컨은 이날 가족과 함께 경기장을 찾아 경기를 지켜보기도 했다. 대한항공은 링컨의 부상 부위 회복과 무라드의 리그 적응을 지켜본 뒤 둘 중 한 명을 고를 계획이다. 무라드는 "경기를 뛰는 것이야 부담이 있지만, 그냥 뛰는 것에 집중한다"고 했다. 무라드는 "한국 배구는 빨랐다"며 "한선수와 같은 팀이 되어 행복하다"고 했다.

필리핀에서 온 에스페호는 눈을 처음으로 맞았다. 그는 "한국의 추위는 미친 것 같다"며 "필리핀에서 한 번도 한 번도 눈을 본 적이 없다. 놀랍다"면서도 "신기하긴 한데, 방에만 있기 때문에 특별하지 않다"고 웃었다.

25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OK금융그룹과 경기에서 공격하는 마크 에스페호. 사진 한국배구연맹


무라드는 아직 영어가 익숙하지 않다. 구단에서도 파키스탄어를 쓸 수 있는 통역을 구하는 중이다. 무라드가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자 에스페호가 직접 나서기도 했다. 무라드에게 조언을 해달라고 하자 "생각하지 말고, 세게 때리면 된다.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경기를 즐기라고 하고 싶다"고 했다.

대한항공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특별한 유니폼을 선보였다. 유니폼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그려넣었다. 에스페호는 "내가 트리가 된 것처럼 점프하고 블로킹했다. 별 모양이 고귀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무라드는 "해피 크리스마스다. 즐겁다. 다만 나는 무슬림"이라며 성탄절을 100% 즐길 수 없는 사정에 대해 설명해 웃음을 자아냈다.

인천=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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