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신 1.8등급인데 자퇴…검정고시 치르는 10대 늘어난다 [입시에 뒤틀리는 학교]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선 ‘자퇴 후 검정고시’가 답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어려운 결정도 아니었고요.”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본 이모(18)양은 고1이었던 2021년 말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내신 성적을 잘 받기 위해 외국어고 대신 선택한 일반고였는데, 중간고사 성적이 기대와 달랐다. 이양은 “이대로는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할 것 같아 수능에 '올인'하려 했는데, 수업 중 수능 공부를 하면 선생님이 책을 뺏어갔다”며 “자퇴 후 지난해 검정고시를 보고, 올해 수능을 봤는데 후회 없는 선택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지역 외고에 다니던 송모군도 2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보기 전인 지난 4월 자퇴를 선택했다. 1학년 내신 성적은 평균 1.8등급으로 높은 편이었지만, 이 성적으로 원하는 의대에 수시모집으로 합격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송군은 자퇴 후 서울의 학원에 다니면서 수능에만 전념해 정시모집으로 의대에 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송군은 “자퇴 후 6개월이 지나야 검정고시에 응시할 수 있기 때문에 내년 4월 검정고시를 본 뒤 수능에 응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검정고시, 이제는 대입 직행 루트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10대 검정고시 응시자(13~19세)는 총 3만45명으로 전체 응시자(4만189명)의 74.8%에 달했다. 2021년 2만4498명(67.8%), 2022년 2만5329명(71.5%) 등으로 꾸준히 증가한 결과다. 서울시만 놓고 보면 올해 고졸 검정고시 응시자 6253명 중 4664명(74.6%)가 10대 응시자였다. 지난해(70.4%)보다 늘었다.
서울의 한 검정고시 학원 관계자는 “학생 스스로 어쩔 수 없는 힘든 사정에 의해 자퇴 후 다시 공부하고자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경우가 여전히 다수지만, 입시 문제 때문에 검정고시를 선택하는 학생이 과거보다 부쩍 늘어난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자퇴를 이유로 한 고등학생의 학업중단율은 2019년 1.31%에서 코로나19 시기인 2021년 0.94%로 급감했지만, 2022년 1.29%, 2023년 1.58%로 다시 오르고 있다. 한 학교 관계자는 “학업중단 학생이 늘어난 이유 중 하나는 입시를 위해 학교를 떠나는 학생들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교육열이 높은 강남권에서는 이탈율이 높게 나타난다. 주로 고1 내신 성적이 기대 이하일 때 자퇴를 하는 경우다. 검정고시에 빠르게 합격하면, 고교 2학년 나이부터 수능에 응시하는 게 가능하다. 종로학원이 학교알리미를 통해 서울시 고교 1학년의 학업중단율을 분석한 결과 강남구의 올해 학업중단 비율은 4.1%로 서울시 자치구 중 가장 높다. 송파구(3.7%)·서초구(2.9%)도 서울시 평균(2.5%)보다 높았다. 지난해 가장 중단율이 높았던 자치구는 서초구(4.0%)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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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에서도 검정고시생 늘어…“현행 제도가 부추겨”
수능에서도 검정고시 수험생 수는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 수능 지원자는 50만4588명으로 지난해(50만8030명)보다 소폭 줄었지만 검정고시(기타) 지원자는 2712명 늘어난 1만8200명(3.6%)이다. 2023학년도는 1만 5488명(3.1%), 2022학년도는 1만4277명(2.8%)이었다. 배영준 보성고 진로진학상담 교사는 “의대 입학을 위해 검정고시를 응시하고 정시에 집중하겠다는 상담이 많이 들어온다. 의대 이외에도 자퇴 후 정시에 집중하겠다는 상담도 많다”며 “희망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자퇴하는 게 정상이라는 문화가 학생들 사이에 형성되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학원가에선 대입을 준비하려는 10대 자퇴생을 대상으로 입시컨설팅을 진행하는 검정고시 학원들도 성업 중이다. 13일 방문한 서울의 한 검정고시 학원은 ‘정시 완벽대비’, ‘내신 포기자 모여라’ 등의 홍보 문구를 내걸고 있었다. 이 학원 관계자는 “검정고시반이랑 수능준비반이 연계돼 있어서 같이 준비하려는 학부모, 학생들이 상담하러 많이 찾아온다”며 “요즘엔 중학생들도 상담하러 오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교육계에서는 현행 제도가 학생들이 학교 공부를 포기하게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현재 입시 제도가 학생들을 자퇴로 유도하고 있다”며 “검정고시에 응시한 뒤 수능으로 대학에 간다면 고등학교에서 길러야 할 제반 역량을 갖추기 어려운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은 “초·중·고 교육이 대학 입시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지만 대학 입시 만능주의로 귀결되고 있다”며 “공교육을 정상화하면서 공교육이 신뢰받을 수 있는 정책과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이후연·이가람 기자, 송다정 인턴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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