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정치 9단도 어려운 난제"…한동훈호 '특검 딜레마'

김준영 2023. 12. 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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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한동훈’의 시간이 ‘김건희 특검법’ 정국과 맞물려 시작된다.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26일 국민의힘 전국위원회에서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공식 임명된 바로 이틀 후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특검법을 강행 처리할 계획이다. 여권에선 “한동훈 비대위가 시작부터 정치 9단도 풀기 어려운 난제에 맞닥뜨리게 됐다”는 말이 나왔다.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 사진은 지난 21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법무부 장관 이임식에서 이임사를 하는 모습. 뉴스1

일단 폭풍우가 닥치기 전 ‘한동훈 효과’는 여권에 긍정 작용했다. 25일 공개된 리얼미터·에너지경제신문 정당 지지율 조사(21~22일)에서 국민의힘은 전주 대비 2.3%포인트 오른 39.0%, 민주당은 3.1%포인트 내린 41.6%를 기록해 격차(2.6%포인트)가 오차범위(±3.1%p) 내로 좁혀졌다. 9개 월만의 가장 작은 격차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하지만 출범과 동시에 김건희 특검법을 직면할 한 전 장관의 행보는 가시밭길에 가깝다. 수직적 당정관계 쇄신, 개혁 공천 등 한 전 장관의 정치력을 시험할 무대가 특검 정국과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①찬성 여론 어떻게 잠재우나=28일 국회 본회의에서 민주당이 특검법을 밀어붙이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는 불가피하다는 게 여권 입장이다. 이관섭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4일 KBS에 출연해 “(특검법은) 총선을 겨냥해 흠집 내기를 위한 의도로 만든 법안”이라고 했다.

이처럼 여권은 “특검은 악법이고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 분명하다. 2009년~2012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범죄에 김 여사가 가담했다는 의혹을 규명하겠다는 특검법 내용에 대해선, 이미 문재인 정부 검찰에서 2년 가까이 수사했지만 김 여사 관련 혐의를 전혀 밝히지 못했다는 점을 주요한 반대 논거로 든다.

민주당이 특검법을 지난 4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해 240일(8개월)간의 숙려기간을 거쳐 본회의 자동 상정이 가능하게끔 스케줄을 짠 것 역시 “총선에 악용하기 위한 의회 폭거”(이철규 의원)라는 시각이다. 25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비공개 고위 당·정·대 회의에서도 조건부 수용 불가론을 비롯한 특검법 수용 불가 원칙을 재확인했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오른쪽)과 김건희 여사. 사진은 지난 1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국빈 방문 일정을 마친 윤 대통령과 김 여사가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에서 귀국하기 전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서 인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문제는 특검법 찬성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특검법 찬성’과 ‘대통령 거부권 행사 반대’는 60%를 웃돌고 있다. 명품백 수수 의혹 등으로 김 여사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시선이 더 많아진 탓이다.

이 때문에 한 전 장관이 대통령 거부권은 요청하되, 이와 동시에 특별감찰관 임명, 제2부속실 설치 등을 건의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아울러 “특검과 명품백 의혹을 분리해, 명품백 의혹은 국민권익위나 검찰에 조사 의뢰한다”는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여권 관계자는 “‘김건희 특검법’은 내용·방식·시기 등에서 철저히 기획된 정쟁용 특검이기에 도저히 수용할 수 없지만, 김 여사와 관련된 다른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후속 조치를 취해야 국민도 어느정도 수긍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지난 4월 26일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원내수석부대표(왼쪽)와 정의당 장혜영 원내수석부대표가 국회 의안과에 김건희 특검법·50억 클럽 특검법 신속 처리 안건 지정 발의서를 제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②당정 불협화음 터지나=특검 해법을 둘러싸고 대통령실과의 미묘한 의견 차이를 조율해야 한다는 점도 한 전 장관의 과제다. 한 전 장관은 ‘대통령의 최측근’인 동시에 대통령과 차별화해야 총선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희숙 전 의원은 지난 19일 SBS라디오에서 “한 전 장관의 딜레마는 ‘어떤 식으로 아름다운 뒤통수’를 칠까’다. 지금 머리가 터질 것”이라고 했다.

이미 한 전 장관이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다음 총선에서 민주당이 원하는 선전·선동을 하기 좋게 시점을 특정해 만들어진 악법이다. 그런 점을 고려해 국회 절차 내에서 고려돼야 한다”고 밝힌 것을 두고 일각에선 ‘총선 후 김건희 특검 수용’을 시사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이와 관련해 여권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김건희 특검법 자체가 반헌법적 선거공작인데, 한 전 장관이 이를 명확히 지적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시기의 부적절함을 꺼내 대통령실이 상당히 당혹해 했다”고 말했다. 자칫 특검의 실시 시기만이 쟁점으로 부각되면 특검의 부당성을 설파하기 어려워진다는 논리다. 국민의힘 원내지도부 관계자도 “한 전 장관 발언에 대한 당내 해석이 분분했다”며 “수직적 당정관계는 극복해야 하지만 반대로 ‘당정 파열’은 더 최악의 경우”라고 전했다.

③공천쇄신 가로막나=거부권 행사 이후도 변수다. 재의결은 의결 정족수(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 허들이 높아 통상 폐기 수순이었다. 앞서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과 간호법 등은 국회 재표결 과정에서 부결됐다.

오는 28일 국회에서 특검법이 통과돼 정부로 송부되면 윤 대통령은 15일 이내에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법령상 재의결 시한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즉 국민의힘 상황에 따라 민주당이 재의결 시점을 조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동훈 비대위’는 내년 초 공천관리위를 구성하고 실질적인 공천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이미 한 전 장관은 보수 정당 최연소(50) 비대위원장으로 개혁 공천을 주문받고 있다. 이에 따라 개혁 공천이라는 명분 하에 영남권이나 일부 중진 의원이 컷오프(공천 탈락)될 가능성도 높다. 문제는 이런 '공천 학살' 시기에 민주당이 '김건희 특검법' 재의결에 나선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공천에서 탈락한 국민의힘 의원은 실제 본회의에 불참하거나 아예 찬성으로 돌아설 수도 있다. 게다가 재의결 표결은 무기명 투표다. 수치상으론 국민의힘에서 15~20명가량 이탈하면 김건희 특검법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이같은 이탈표를 단속하려 공천 작업에서 눈치를 보게 되면 ‘한동훈 비대위’의 개혁성은 금이 가게 된다.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한 전 장관이 첫 정치 행보부터 난제를 맞이하게 됐다”며 “데뷔전을 어떻게 치르느냐에 따라 ‘정치인 한동훈’의 앞날도 좌우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오는 29일 출범을 목표로 진행 중인 비대위원 인선엔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 합류가 유력하다. 이 교수는 “지난주에 한 전 장관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며 “거절할 군번도 아니라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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