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김건희 특검법 공방… 野 과도한 발의, 與 궁색한 반박
수사 인력·기간은 거의 같아
처리 전부터 연말정국 ‘꽁꽁’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규명하라는 특별검사(특검) 도입 법안은 과도한 총선용 흠집내기일까, 더는 미룰 수 없는 진상규명일까. 야권은 28일 처리를 예고하고 대통령실은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명확히 하면서 ‘김건희 특검법’은 처리 이전부터 연말 정국을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문재인정부 검찰이 충분히 수사했지만 기소하지 못한 사안을 두고 또다시 정쟁을 부추긴다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국민적 의혹 해소를 위해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특검법을 거부하지 않아야 한다는 여론도 있다.
국민일보는 2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올라온 2000년 이후 국회를 통과한 12개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을 수사항목, 수사인력, 기간, 특검추천 주체, 인지사건 수사 및 언론 브리핑 허용 등의 기준과 함께 비교·분석했다. 김건희 특검법은 의혹 크기에 비해 과도한 수사가 가능하게끔 규정된 측면이 있었다. 예컨대 김건희 특검법의 수사항목 숫자는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의 5분의 1 수준이지만 수사인력 규모나 수사기간은 거의 동일하게 규정돼 있었다.
김건희 특검법은 동시에 ‘독소조항’으로만 구성됐다고 치부할 만큼 다른 특검법에 비해 현저히 이례적인 형태는 아니었다. 수사 과정에서 발견되는 인지사건 수사, 언론 브리핑의 허용 등 조항은 과거 국회를 통과한 다른 특검법에서도 발견됐다. 특검추천 주체에 여당을 배제한 것 역시 과거 다른 특검법에서 비슷한 사례가 없지 않았다.
‘김건희 특검’이 그대로 출범할 경우 이 특검에는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과 함께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수사인력이 투입된다. 김건희 특검법에는 특검 1명과 특검보 4명에 파견 검사 20명까지 받을 수 있도록 돼 있다. 검사를 제외한 파견공무원은 40명, 특별수사관도 40명까지 둘 수 있어 최대 105명의 인력이 투입될 수 있다. 이는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과 같은 규모다.
문제는 수사팀의 규모와 수사 대상의 크기가 어느 정도 비례하는지 여부다. 김건희 특검법에 규정된 수사항목은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와 가족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기타 주식 특혜 매입 관련 의혹’ 이외에는 관련자의 불법행위,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사건으로 3건이 전부다. 김건희 특검법과 같은 수사인력을 규정한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은 ‘청와대 관계인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대한 국가기밀 유출 사건’부터 ‘박근혜 청와대의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을 통한 기업 기부금 출연 강요 의혹’ ‘정유라의 대학 입학 등에서의 특혜 의혹’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직무유기 의혹’ ‘최순실 일가의 불법적 재산 형성 의혹’ 등 모두 15건을 수사항목으로 명시했다.
특별검사로 임명돼 일한 이력이 있는 한 법조인은 “수사의 규모나 복잡성, 난이도 등을 종합해볼 때 김 여사 사건을 국정농단 당시 특검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지 다소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역대 특별검사(특검) 법안 중 가장 많은 인원의 투입을 규정한 건 2007년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BBK 주가조작 의혹을 겨냥한 ‘BBK 특검법’이었다. BBK 특검은 특검 1명에 특검보 5명, 파견검사 10명, 특별수사관 40명 등 총 106명의 수사 인력을 둘 수 있었다. 지원 인력을 제외하고 검사와 수사관 인력만 계산하면 ‘김건희 특검법’이 65명으로 56명이었던 BBK 특검법보다 많다.
BBK 특검은 수사기간도 준비기간 7일, 수사기간 30일에 최장 10일까지만 연장할 수 있도록 규정해 다른 특검에 비해 짧았다. 김건희 특검법은 이에 비하면 준비기간 20일, 수사기간 70일을 규정해 제법 긴 수사 시간을 보장했다. 수사가 더 필요하거나 공소제기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면 최장 30일 연장 가능해 최대 120일의 활동 기간을 보장한다.
야권이 김건희 특검법을 28일 처리한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특검 수사는 내년 4월 10일 총선 전에 본격적으로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이관섭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지난 24일 한 방송에 출연해 “총선을 겨냥한 흠집 내기 의도의 법안”이라고 밝힌 점은 바로 이런 부분을 의미한 것으로 풀이된다.
함께 추진되는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은 최장 수사기간 기록을 깰 전망이다. 50억 클럽 특검법은 준비기간 30일에 수사기간 150일을 보장하고 활동기간도 최대 90일까지 연장할 수 있는 형태로 마련돼 있다. 최대 270일까지 활동이 가능하다. 여권은 50억 클럽 특검법을 ‘이재명 민주당 대표 방탄특검’으로 규정했다. 국민의힘 원내 관계자는 “특검법 수사 대상에 ‘사건 관련자의 불법행위’나 ‘인지된 관련 사건’이 들어 있어 대북 송금 의혹 등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인 이 대표 관련 사안이 전부 특검으로 넘어간다”고 말했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김건희 특검법 쟁점 중 하나는 ‘특검 후보자 추천권’ 문제다. 이는 역대 주요 특검들도 치열하게 대립했고, 통과된 법안마다 많은 차이점이 나타나는 대목이다. 김건희 특검법의 경우 추천 주체를 ‘대통령 자신이 소속된 교섭단체를 제외한 교섭단체와 교섭단체 아닌 원내정당’으로 규정해 국민의힘을 배제했다. 다만 의혹 대상과 특검 추천 주체를 분리시킨 것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 특검,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 2018년 드루킹 특검도 야당만 특검 추천권을 가졌다. 다만 중립성을 기하기 위해 대법원장이나 대한변호사협회 등 법조계에 특검 추천권을 부여한 사례가 적지 않다.
여권은 김건희 특검법 중 ‘수사 대상 사건에 대해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피의사실 이외 수사 과정에 관한 언론 브리핑을 할 수 있다’는 규정을 독소조항이라 지적한다. 다만 언론 브리핑의 허용은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법 이후 국회를 통과한 모든 특검법에 동일하게 담겼다. 종전까지 ‘특별검사는 수사 완료 전 1회에 한해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할 수 있다’며 수사 내용의 거론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국정농단 특검 이후 변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특검법이 통과될 정도면 그만큼 국민적 관심이 큰 사안이기 때문에 언론 브리핑을 허용한 것인데, 이를 독소조항이라 한다면 과거 특검법도 모두 독소조항이 된다”고 지적했다. 야권은 윤 대통령이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지명자가 과거 국정농단 특검에 참여했던 것을 거론하며 “그때는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브리핑하지 않았느냐”고 비판한다.
김건희 특검법을 두고는 특검이 수사 범위를 자의적으로 넓힐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다만 2001년 이용호 게이트 특검법이나 2007년 삼성 비자금 특검법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특검법에서는 수사 과정에서 ‘인지한 사건’을 수사할 수 있게 수사 항목을 열어뒀다.
국민의힘과 정부, 대통령실은 25일 비공개 고위 당정협의회를 열고 김건희 특별법과 관련한 논의를 나눴다. 당정은 일각이 거론한 ‘총선 이후 수용’ 등 조건부 수용도 불가능하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에는 윤재옥 국민의힘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한덕수 국무총리,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참석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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