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2024년 서울의 봄은 어떤 모습일까
국민 바람 달라진 것 없지만 민주 자처 세력은 많이 변해
과거 민주세력은 고통 속에도 원칙만은 어떻게든 지켰는데
지금 민주당은 과반 의석에도 당헌 바꾸며 꼼수 부리려 해
정치적 유불리만 따지느라 과거 그토록 무너뜨리려 했던
반민주 세력 닮는 건 아닌지 스스로 돌아봐야 할 때다
영화 ‘서울의 봄’을 본 관객이 25일 오후 1069만명을 넘어서면서 올해 최고 흥행작에 등극했다. “이제라도 봐야겠다”는 이들이 적지 않으니 관객수는 더 늘어날 듯하다. 이 영화가 큰 관심을 끈 데는 젊은이들의 반응이 폭발적이라는 이유도 있을 게다. 비슷한 시대를 다뤘던 ‘변호인’이나 ‘1987’ 같은 영화들과 달리 ‘서울의 봄’은 30대 이하 연령층이 관람객 중 60% 이상을 차지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흥행 돌풍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영화 속 명확한 선악 구도다. 쿠데타를 모의하고 실행하는 세력에 맞서 쿠데타에 맞서 저항하다 장렬히 산화하는 이들에 대한 평가는 선명하다.
지방에서 학교를 다니다 서울로 진학했을 때 처음 맞은 서울의 봄에 대한 기억은 가두투쟁(가투)이 중심이다. 처음으로 가투에 나갔던 날은 1990년 4월 19일이었다. 종로1가는 항상 붐비는 곳이지만 4·19 혁명 기념일이었던 그날은 조금 더 북적였다. 전투경찰이 곳곳에 서서 행인들의 흐름을 막았고 평소라면 그곳에 없었을 젊은이들도 많았다.
가투는 한 여학생이 도로 한가운데로 뛰어들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폭력정권 타도하자”는 정도의 내용으로 기억되는 여학생의 구호 소리는 비명 소리에 곧 묻혔다. 주변에 있던 사복경찰들이 여학생을 덮쳤기 때문이다. 여성 경찰관이 여성 피의자를 양쪽에서 붙잡는 배려를 기대하긴 어려운 시대였다. 사복경찰에게 머리채와 두 팔이 잡힌 여학생은 질질 끌려 갔다. 산발적으로 이곳저곳에서 비명과 욕설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종로는 곧 언제 그랬냐는듯 차량 경적 소리만 들리는 곳으로 바뀌었다.
그러다 5월 9일을 맞았다. 그해 1월 이른바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의 창당 행사가 열리는 날이었다. 군사정권과 그에 맞서 싸웠던 야당이 악수하며 합당한다니 이해할 수 없다는 데에 대다수가 동의했다. 같은 학번 40명 중에 36명이 시위에 함께 참여했다. 교내 집회 후 시내로 가는 버스 속에서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그 넓은 시청 앞 도로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시위대가 시청과 을지로, 서울역 주변을 뒤덮었고 “해체 민자당”이란 구호가 울려퍼졌다.
1980년 서울의 봄을 경험한 이들은 “1987년 이후는 그 전과 전혀 다르다”고 평가할 수 있겠지만 1990년 봄에도 구도는 분명했다. 그때는 시위대의 모습을 뒤에서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같은 세력이라고, 뜻을 같이한다고 느꼈다. 기억 속 서울의 봄은 두려움 속 희망 같은 것이었다.
다가오는 2024년 봄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쳐질까. 영화의 흥행에 힘입어 총선을 앞두고 1980년 서울의 봄 같은 정치 구도가 형성되기를 기대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선과 악,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로 다가오는 총선을 규정지으려 하는 것이다. 그런데 30여년, 40여년 전의 서울의 봄과 곧 우리가 맞게 될 서울의 봄에 새로운 희망이 움트기를 기대하고 기대했던 국민들의 바람은 달라진 게 없지만 민주세력의 역할을 자임하겠다고 나선 이들의 모습은 퍽 많이 변한 것처럼 보인다.
과거 선악 구도에서 선한 자들은 대체로 약자였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반민주세력은 강력한 물리력을 갖추고 있었고, 목적을 위해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리는 비열한 이들이었다. 민주세력은 항상 피해를 보고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원칙을 지키는 이들이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만들어진 민자당은 국회 의석수 299석 가운데 217석을 차지했다. 당시 국회 속 민주세력은 개헌 저지선조차 확보하지 못한 소수였지만 지금 민주세력을 자처하는 이들은 국회 과반을 훌쩍 넘긴 의석수를 갖고 있다. 그런데도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는 당헌을 바꿔가며 정치개혁의 약속을 내팽개쳤다. 이번에도 비례대표제 개혁의 약속을 어기고 꼼수를 부리려 하는 모습이 감지된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편가르기를 하고 스스로를 정의라고 칭하는 것은 과거 그토록 무너뜨리고 극복하고자 했던 1980년대 반민주세력의 모습, 바로 그것 아니었던가.
니체는 권력이나 이데올로기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향해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새로운 서울의 봄을 만들겠다는 이들이 가슴에 새겨야 할 경고가 아닐 수 없다.
정승훈 디지털뉴스센터장 s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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