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빼앗긴 봄

2023. 12. 26.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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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아버지가 가끔 한국전쟁에 관한 말씀을 하곤 하셨다.

아버지가 17살 되던 해 인민군에 부친과 고향을 잃으셨다.

일생 정신적 트라우마와 무거운 경제적 짐을 지고 사셨으니 빨갱이에 대해 한이 맺혔을 것이다.

참모총장을 연행하는 과정에서의 물리적 충돌인 것으로 짐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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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아버지가 가끔 한국전쟁에 관한 말씀을 하곤 하셨다. 아버지가 17살 되던 해 인민군에 부친과 고향을 잃으셨다. 일생 정신적 트라우마와 무거운 경제적 짐을 지고 사셨으니 빨갱이에 대해 한이 맺혔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경험담은 내게는 상관없는 아득한 먼 옛날이야기로 들렸다. 그때로부터 고작 30년밖에 안 된 과거였는데 말이다.

얼마 전 막내딸과 함께 영화 ‘서울의 봄’을 보았다. 그 사태가 일어난 게 44년 전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당시 고3이던 나는 이른 밤 귀갓길에 총성과 함께 연이어 날아가는 총알의 빨간 섬광을 직접 목격했다. 참모총장을 연행하는 과정에서의 물리적 충돌인 것으로 짐작한다. 버스에 탄 모든 이들이 전쟁 난 줄 알고 놀라며 두려워했다. 내게는 아직도 생생한 이 경험을 딸에게 들려주자 그는 아득한 먼 옛날이야기를 듣는 듯 신기해했다.

서울의 봄, 맨 앞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던 친구들이 술 마시며 부르던 노래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빼앗기겠네.” 일제강점기 시인 이상화(1901∼1943)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1926)에 곡을 붙인 노래다. 가사도 악곡도 처연하기 이를 데 없다. 비 오는 날 막걸리에 파전 하나 시켜놓고 부르면 어울릴 것 같다. 이 시를 지은 시인은 때로 서러워 울다가 때로 희망에 웃기도 하며, 빼앗긴 들판 사이를 휘적휘적 걷는다. 필시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 ‘봄 신령’이 50년도 더 지나 우리 동년배 86세대 친구에게 옮겨붙었다. 신군부의 군홧발에 빼앗긴 봄, 그들은 밝은 미래를 포기하고 차디찬 감방에서 뒹굴기도 하고 때로 스스로 산화(散華)하기도 했다. 신령이 들렸다고 하지 않고서는 설명하기 어렵다. 절박한 정의감과 순수한 연대 의식, 한 시대를 짊어진 소명 의식과 미래의 소망이 그들의 영혼을 지배했었다. 그 봄을 멀리서 지켜만 보던 나는 일생을 빚진 마음으로 살고 있다.

영화 ‘서울의 봄’은 이미 1000만 관객을 돌파했고 20, 30대 젊은이도 많이 관람했단다. 젊은 관객이 많이 든 이유는 단지 이 영화의 작품성이 뛰어나거나 우리 근대사의 재연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들도 봄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저성장의 막다른 골목, 사회 지도층의 위선, 버둥대봐도 빠져나갈 길 없는 무력감이 그들의 깊은 무의식을 형성하고 있다. 생명의 기운은 소진되고 죽음에의 본능이 영혼을 지배한다. 자기도 살기 어려운 세상에 자식 낳지 않는 것이 합리적 선택으로 보인다. 이게 합계출산율 0.7명의 원인이다.

2024년 봄, 나는 소망한다. 젊은이의 가슴에 다시 봄기운이 아른거리기를. 일제강점기 얼어붙은 땅 26세 시인에게 불었던 봄의 신령, 앞세대 젊은이에게 불었던 바람이 그들 사이에 다시 일렁이기를. 빼앗긴 봄을 되찾고 빼앗긴 들을 되찾아라. 젊은이를 가두고 제한하는 역사의 차꼬를 부수고 집단 무기력을 떨쳐내며 사랑과 생명의 영이 약동하게 하라. 그들 속에서 탄식하며 신음하고 기도하며 생기를 주는 성령의 바람이다.

우리 어른은 그들을 재단하거나 훈수 두려 하지 말고 바람이 시키는 대로 가도록 놓아두자. 무슨 조언을 하려거든 먼저 회개부터 하시라. 일제로부터의 해방이 주어졌을 때 이를 혼란으로 바꾸고 산업화를 탐욕으로, 민주화를 방종으로 바꾼 장본인이 바로 우리이기 때문이다.

결국 불임(不姙)의 세대를 만든 것은 기성세대의 탐욕과 오만이 아닌가. 젊은이에게서 들을 빼앗고 봄을 빼앗은 게 바로 우리가 아닌가.

장동민 교수(백석대·흥광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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