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근의 세사필담] 꿈을 엿보다
뉴욕 동물원을 탈출한 수리부엉이가 인간 사는 모습이 궁금했나 보다. 아파트 창틀에 앉아 집안을 들여다보는 기사가 났다. 그곳은 우연히 시인의 집이었다. 바람 일렁이는 창공을 유유히 날거나, 참나무 가지에 앉아 어둠을 두리번거리는 원색의 꿈, 상상 속에서나 그리는 시인의 그런 꿈을 몸소 보여주겠다는 귀띔을 하러 왔던 게다. 이룰 수 있는 꿈과 이루고 싶은 꿈이 접속하는 자리에 꿈의 본질이 있다. 이뤄진 꿈은 현실이 된다. 현실은 또 다른 꿈을 잉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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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은 잠재된 능력과 욕망의 뇌관
철창에 갇히면 타인의 꿈을 못 봐
정치는 꿈을 읽는 사람들의 직업
새해엔 공감의 연대가 이뤄지길
」
2주 전, 가왕 나훈아와 조용필이 연말 콘서트를 했다. 칠십을 훌쩍 넘긴 나이에 젊은 시절의 히트곡을 변함없이 불렀다. 목청은 조금 사위였어도 열정과 감성은 그대로였다. 아니 더 원숙해졌다. 자신들도 젊은 시절의 가창력을 아쉬워했을 텐데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에 청중들은 더 찐한 감동을 받았을 터다. 꿈이 얼마나 서러웠으면 ‘테스형’을 생각해 냈을까. 테스형도 그 질문엔 유구무언일 테지만 ‘세상이 왜 이래, 사랑은 또 왜 이래~’라고 절창하는 순간 가수도 청중도 꿈의 본질을 알아차린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사랑, 우정, 꿈’이라고 조용필이 언젠가 말했다. 모두 이루기 어려운 것들이다. ‘슬픈 베아트리체’는 안타까운 사랑, ‘친구여’는 스러진 우정을 그리는 노래다. ‘추억 속의 재회’에서만 이뤄진다. 조용필이 가장 좋아한다는 노래 ‘꿈’은 그야말로 홀로 고립된 청춘의 서글픈 서사다.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온 청년이 골목길을 서성거리는 장면에서 꿈의 서러운 본질이 삐져나온다. 누가 뭐래도 가왕들은 꿈을 이뤘다. 가요무대에서, 노래방에서, 동료들 모임에서 선남선녀가 감정을 싣는 오솔길을 터줬다. 그래도 가왕들은 여전히 변신을 꿈꾼다. 고락에 젖은 선남선녀들에게 또 다른 감정선을 뚫어주는 일, 자신이 끝내 진입하지 못한 장르에 대한 도전이 그것이다.
1970년대의 정서를 아침 햇살처럼 보여줬던 산울림의 김창완이 실의에 빠졌었다는 기사를 접했다. 암울했던 시절, 경쾌한 록 음률과 반전(反轉) 가사로 묘한 의욕을 자아냈던 산울림이 아니었던가. K팝과 아이돌에게 집중된 대중적 열광에서 속수무책 밀려나는 처지에 무력감을 느꼈다고 했다. 대중음악의 한 챕터를 넘기고 새로운 역사를 썼던 김창완도 꿈의 소실점에서 다시 일어서고 싶었던 게다. 전성기 대중적 인기를 되살리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꿈을 꿨던 나처럼 꿈을 꾸는 그대들이 있어 행복하다는 깨달음, 그래서 새 앨범 타이틀이 ‘나는 지구인이다’다. 꿈을 꾸는 자들의 연대(連帶)이자 시간에 따라 변신하는 꿈의 연대(年代)다.
나이가 들어보면 비로소 안다. 꿈을 좇아 줄달음쳤던 기억을 남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꿈의 유형은 다르지만 너의 꿈도 내 것처럼 비바람 치는 골짜기를 거쳐 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특수에서 보편으로의 전환이다. 내 청춘의 골짜기는 푸르러야 했다는 나만의 특수한 소망이 너의 골짜기에 와 닿을 때 ‘나는 지구인이다’는 동지애적 공감이 싹튼다. 플라코로 호명된 뉴욕 부엉이는 여기저기 내려앉아 창문 안에 비친 선남선녀들의 희로애락을 목격한다. 왜 사람들이 웃고 슬퍼하는지를 의아해하다가 날개를 펴고 창공을 날아오를 때 뭔가를 깨달았을지 모른다. 철창에 갇힌 채로는 사람들의 낙심과 실의가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꿈을 엿보는 것은 ‘공감의 연대’로 승화하는 계단이다.
성탄절이 연말 즈음에 다가오는 것은 우연이지만 필자 같은 무종교인에게는 또 다른 축복이다. 성탄절 즈음 쨍쨍 울리던 캐럴에 발걸음이 괜히 경쾌해졌었다. 음악다방과 조촐한 백화점에 깜빡거리던 크리스마스트리와 조명이 마음을 들뜨게 했던 시절이 있었다. 들뜬 마음은 꿈의 표상이고 설레는 마음은 꿈의 형식이다. 꿈은 잠재된 능력의 재발견이자 삶의 의욕을 점화하는 욕망의 뇌관이다. 세월이 흘러 그 꿈의 기억으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강물이 되었을지언정 이제는 타인의 꿈을 엿볼 줄 안다. 뭇사람의 꿈의 농도가 나와 같았다는 것을. 필자는 무종교가 아니라 범신론자다. 불교든 개신교든 불성(佛聖)과 성령의 은총을 느낀다. 불교인이 상처받은 마음을 설법에 의탁하듯이, 개신교 신자들은 꿈의 상흔을 성탄절 교회 종소리에 씻는다. 깨어진 꿈들이 종소리에 실려 새벽 여명을 불러오는 공감의 시간이 왜 흐뭇하지 않으랴.
이 흐뭇한 시간이 계속되면 좋으련만 새해와 함께 혼탁한 시간이 대기 중이다. 자기 꿈의 정당성과 우월성을 주장하는 자들의 불협화음이 보편적 승화의 계기를 아예 고사시킬 것이다. 정치는 꿈의 보편성을 읽는 사람들의 직업이다. 그들이 아집의 철장 속에 갇히면 우리 마음속 부엉이는 결코 탈출하지 않는다. 뉴욕 부엉이 플라코는 어둠이 내리면 날기 시작할 테지만, 우리의 부엉이는 메마른 마음 밭에 내려앉은 채 날개를 접었다. 꿈을 엿보는 시선을 잃어버린 사회에서 공감의 연대는 형성되지 않는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한림대 도헌학술원 원장·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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