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참새를 무시하는 고니
12월 나만의 하루를 찾아 한강변에 있는 서울숲을 산책했다. 원래 뚝섬경마장이 있던 자리를 개발해 만든 시민공원인데 서울에선 월드컵공원과 올림픽공원에 이어 세 번째로 크다. 공원 안에 들어서면 여섯 마리 말이 경주하는 모습의 군마상(群馬像)이 보인다. 군마상 좌우에는 같은 수종의 나무들이 좌우 대칭으로 서 있어 프랑스풍을 뽐낸다.
서울숲은 나무와 호수, 풀과 습지가 잘 어우러져 공원 안으로 들어오면 이내 자연 속으로 빠져든다. 또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곤충식물원과 사슴을 사육하는 우리를 만나게 돼 동식물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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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과 가까이서 살아온 참새
천적을 피하는 독특한 생존법
작다고 참새를 깔보는 정치인
참새의 지혜를 알고나 있는가
」
공원 근처에서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주전부리로 사 온 새우깡 봉지를 뜯었다. 주변에서 놀던 참새들이 새우깡 냄새에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눈치 보는 참새들에게 몇 조각을 토막 내 던진 후 일부로 시선을 딴 데 두었다. 곁눈으로 보니까 가슴에 검은 털이 진한 수컷 참새 한 마리가 조각을 입에 물고서 이내 자리를 비우는데 멀리 떨어져 있는 새끼들에게 그 조각을 매번 물어다 주는 게 아닌가.
수컷 참새는 안심해도 좋다는 생각을 했는지 양다리를 모아서 통통 튀는 모습으로 아예 암컷 참새와 새끼들까지 데리고 왔다. 조금씩 던져주는 게 참새들을 애태우는 것 같아 한 움큼을 집어서 뿌려준 후 자리를 떴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뒤돌아다 보니까 주변 마른 덤불에서 재잘거리던 참새 수십 마리가 삽시간에 땅에 퍼지듯 내려앉았다.
그 모습을 보자 3000년 전 생겨나 오늘날에도 인기인 마작(麻雀) 놀이가 불현듯 생각났다. 참새를 의미하는 마작(麻雀)과 놀이 마작(麻雀)의 이름이 같아서다. 놀이에 마작이란 이름을 붙인 건 놀이 테이블에서 패를 뒤섞는 소리가 겨울철 마른 마(麻)밭 덤불에서 참새떼가 재잘거리는 소리처럼 들려서다.
돌이켜 보면 마른 나무색을 보호색으로 하는 참새는 사시사철 인간 가까이에 있어도 인간을 너무 가까이도, 또 너무 멀리도 하지 않는다. 참새는 인간의 곁을 떠나면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렵고 인간을 너무 가까이하면 인간의 ‘먹을 것’이 된다는 사실을 일찍이 깨우쳐서다.
참새는 큰 기러기나 고니처럼 높게 나는 재주가 있는 건 아니지만 생존을 위한 집단 반응은 어느 새보다 빠르다. 그래서 겨울철 마른 덤불 속에서 수십 마리가 한꺼번에 튀어나왔다가 덤불 속으로 일시에 빨려 들어가듯 숨는다. 주변의 기미가 조금만 이상해도 바로 흩어지듯 일시에 달아난다. ‘아! 이래서 ‘새가슴’이라고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 새가슴 덕에 참새는 천적들로부터 오랜 세월 자신을 지켜냈다.
신체 리듬을 연구하는 옥도훈 박사는 참새의 집단 반응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참새가 한꺼번에 내려앉고 날아올라 가는 건 일종의 ‘동조(同調)’ 현상이라 볼 수 있지요. 한 참새의 날갯짓이 아주 짧은 시간에 전체 참새에게 전달 돼 날갯짓을 하는 겁니다. 참새의 이런 모습을 멀리서 보면 참새들이 동시에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요.”
그는 참새들의 동조 현상이 서로 신체 리듬과 박자가 맞아야 가능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플라밍고의 군무나 물고기 떼가 몰려다니는 것 역시 같은 이치로 해석할 수 있다. 어린아이들도 리듬과 박자가 맞아야 잠을 잘 잔다. 어릴 적 할머니의 힘없는 목소리로 불러주시는 자장가에서도 리듬을 느끼고, 또 등을 토닥거릴 때 박자를 느껴서 이내 잠든 추억이 있다.
동조와 비슷한 말로 ‘울림’을 들 수 있다. 내 말이나 생각을 상대방에게 잘 전달하려면 상대방 마음과 가슴 속에 반드시 울림이 있어야 한다. 가수들도 청중 마음에 울림을 만들기 위해 온갖 표정과 제스처를 동원하지 않는가.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면서 정치인들 역시 유권자들의 뇌리에 울림과 여운을 남기려 애쓴다. 그들은 마음에 와 닿는 비유와 인용으로 늘 사람들을 설득하려 한다. 또 그들은 다른 정치인이 쓰지 않은 참신한 사자성어를 찾느라 골몰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들이 자주 인용하는 사자성어 중에 ‘연작홍곡(燕雀鴻鵠)’이라는 말이 있다. ‘제비(燕)나 참새(雀) 따위가 기러기(鴻)나 고니(鵠)의 높은 뜻을 어찌 알겠느냐’라는 의미다. 그러니 자신은 홍곡이고, 상대방은 연작이라는 말이다.
정치인들은 거대담론을 늘어놓으면서 자신은 고매한 홍곡으로 칭하고, 상대를 시시한 연작으로 비하해 왔다. 이런 식으로 포용이 아닌 구분과 구별을 일삼는 정치인들에게 연작들이 묻고 싶은 말이 있다. “낮은 곳에 사는 우리 연작은 높은 하늘을 나는 홍곡의 뜻을 모른다. 그런데 홍곡 역시 연작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다.” 하지만 홍곡은 연작의 뜻을 알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까맣게 잊기도 한다.
곽정식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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